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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전 이태리지갑도 해지는데, 찬란했던 한국 가죽문화재
고궁博, 가죽문화재 공동연구성과 공개
한국의류시험연구원과 현미경 정밀 연구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우리 국민이 해외여행을 갔다가 많이 사오는 물품 중 하나가 가죽제품이다. ‘가죽제품만큼은 외국 것’이라는 선입견은 정답일까.

우리의 가죽문화재를 살펴보면 매우 오래전부터 다양한 육·해·공 동물의 가죽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뛰어난 가죽공예품을 만들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때론 기능적 측면을, 때론 미학적(장식) 측면을 고려하며 이용했다.

가죽신.

다만 언제부터 어느 수준의 공예품, 장식품, 생활용품 들을 가죽으로 만들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문헌이 거의 없고 직역의 품계가 높지 않아 체계적으로 정리될 기회가 없었으며, 이 때문에 우리의 연구도 이제 퍼즐을 맞춰나가는 단계다.

사실 20년 전 약혼선물로 받은 최고급 외제 가죽지갑도 지금은 표피가 벗겨지고 해져 있어, 문화재 보존이 쉽지 않은 것이 가죽 품목임을 짐작하게 한다.

권혁남·이현주 국립고궁박물관 연구팀은 25일 고궁박물관 소장 가죽 유물이 450점이라고 밝힌 뒤 “가죽은 인류역사와 함께했다”는 말과 함께 문화재별로 정밀 고증을 본격화했다고 전했다. 선사-상고시대에도 우리 선조는 가죽으로 만든 북을 치며 분위기를 살렸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임금의 문서를 보관한 가죽보갑.

우리의 손재주, 손맛이 최고 수준임을 국제사회가 인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래전부터 우리 가죽장인들의 솜씨가 이탈리아, 스페인, 태국 등에 뒤질 것 같지는 않다. 사실 해외에서 가죽제품을 구입해 들여왔다가 후회하는 사람도 많다.

연구팀에 따르면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동영)이 소장한 가죽문화재는 대부분 태생동물(胎生·소나 돼지, 개 등 포유류) 가죽으로 제작됐다.

보록(寶盝·어보를 담는 가죽함), 호갑(護匣·어보를 이동할 때 보록을 담는 가죽함) 등의 보관함, 북의 일종인 절고(節鼓)와 진고(晉鼓) 등의 타악기와 방패(防牌, 干), 궁대(弓袋·활집), 시복(矢腹·화살통) 같은 무구류는 단단하고 견고한 하이드(Hide·소나 곰 등 몸집이 큰 동물) 계열의 가죽이 주로 사용됐다.

이에 비해 장식의 용도로 사용되는 곳에는 어피(물고기 가죽)나 스킨(Skin·어리거나 몸집 작은 동물) 계열의 가죽이 주로 사용됐다.

하이드(Hide) 계열은 소, 큰 사슴, 곰 등 몸집이 있는 동물의 것이고, 스킨(Skin) 계열은 송아지 등 어린 동물, 설치류, 염소, 양 등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동물의 가죽이다.

전어도 상어가죽.

특히 전어도(傳御刀·왕이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칼) 등 칼 손잡이에는 상어 가죽이 사용됐음이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태생동물 가죽이 아닌 난생(어류)동물 가죽이라는 점에서 특이점이 있다.

소, 돼지 등 태생(胎生)동물의 가죽은 질긴 편이다. 상어, 가오리 등 난생(卵生)동물의 가죽은 미학적 목적으로 많이 사용됐다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25일 한국의류시험연구원(원장 임헌진)과 공동으로 ‘가죽문화재 식별 분석 공동연구서’로 발간했다.

가죽은 동물의 종류, 연령, 위치에 따라 표면과 단면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며, 연구서에는 국제 표준인 ‘현미경 조사를 통한 가죽 동정(ISO 17131)’에 따라 현생(現生) 가죽 분석자료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가죽문화재 분석자료의 비교를 통해 가죽 종류를 식별한 내용을 담았다. 동정(同定· identification)은 동일함을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가죽문화재 현미경 분석.

국립고궁박물관은 2010년부터 자체 연구를 시작했고, 지난해 6월부터는 한국의류시험연구원과 공동 연구를 벌였다. 유물 외엔 방계 흔적이 없어 10년이 지났어도 이제 시작이다.

가끔 공개되는 보록과 호갑 등을 보면 수백년 전 우리의 가죽공예 기술이 이른바 ‘가죽 선진국’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더딜 수밖에 없는 연구라도 한국의 가죽문화재 역시 여느 ‘K-헤리티지’ 못지않게 뛰어나고 ‘굳이 외국에서 비싼 가죽쇼핑을 하지 않아도 우리 것이 괜찮다’는 확신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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