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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재예방 역량 외면 처벌 집착…“모호성이 혼란·비효율 초래”
중대재해처벌법·산안법 개정 과잉 입법
처벌 수위·적용 범위 등 논란 여지 남겨
추상적 용어로 판례·실무까지 혼란 예상
양형기준도 강화…기업활동 위축 불가피
‘고비용 저효과’ 행정 고착화 우려 목소리
산업재해나 대형사고가 났을 때 기업과 경영자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까지 강화되면서 경영계와 노동계의 반응이 엇갈린다. 모호한 규정과 범위 등으로 향후 실무 및 판례까지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모습. [연합]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전면 개정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13일 전날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책임자의 처벌을 강화한 양형기준까지 대폭 강화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를 줄이보자는 취지엔 공감대가 지배적이지만, 여전히 처벌 수위와 적용 범위 등 세부 사안에선 경영계와 노동계의 반응이 엇갈린다. 구체적인 추상적인 용어와 모호한 기준으로 판례 및 실무에 의해 확립까지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법적 모호성 투성이…체계성마저 결여=전문가들은 처벌에 무게를 둔 방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산재 예방 역량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국내 산업 현장에서 ‘고비용 저효과’ 행정의 고착화를 불러올 수 있는 사례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논쟁의 발단은 중대재해법의 모호성이다.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등 추상적인 용어로 규정돼 다양한 견해가 잇따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법무법인 율촌은 “경영책임자 등이 이행해야 하는 안전·보건확보의무의 대상과 이행 방식이 과도하게 확장될 수 있다”며 “사망자나 부상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완벽히 이행했고, 미흡한 점이 없다고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며 내용의 판례 및 실무가 확립되기까지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실효성 논란도 여전하다.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조항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사고 전 5년간 유해위험방지의무 위반 사실 3회 이상이나 사고관련 증거를 인멸하거나 지시, 방조한 경우 인과관계를 추정토록 한 조항 등이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조사방해 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교수는 “현재 국내 대기업 건설현장이 200개가 넘는 가운데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조항 없이 재발방지계획을 수립하라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며 “문제가 됐던 부분을 보완하지 않고 현장의 특성을 무시한 채 법안을 마련하다 보니 보편적인 체계가 결여된 결과가 도출됐다”고 지적했다.

▶산안법 양형기준 강화도…기업 위축 불가피=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자 책임 등 범위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 대표이사 이외에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자도 경영책임자가 될 수 있고, 이 경우 대표이사는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권혁 부산대 교수는 “산안법의 한계가 책임소재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인데 중대재해법 역시 명확성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며 “타당성을 떠나 규정만을 따지고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기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징벌적인 법안 자체가 가지는 당위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 제외와 50인 미만 사업장의 2년 유예기간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거론된다. 실제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집계한 산재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1월 9월까지 발생한 재해자(6만8192명) 가운데 78.7%(5만36544명)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전체 660명의 49.1%에 해당하는 522명이었다.

정진우 교수는 “산안법 개정 이후 관리감독관은 늘었으나 산재예방 역량이 형성되지 않고 처벌에 무게가 집중된 적발 주의가 만연해질 것”이라며 “진정성을 갖고 실효성 있는 법을 만들지 못하면 비용과 인력은 소비되고 효과를 내지 못하는 ‘고비용 저효과’ 행정의 고착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산안법 개정과 중대재해법에 이어 산안법 양형기준의 강화가 기업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란 목소리도 잇따른다. ‘유사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경우’와 ‘다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를 특별 가중 요인으로 둬 최대 징역 10년 6개월 선고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영책임자 범위에서 중앙행정기관장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삭제되면서 책임 회피에 대한 비판도 잇따른다.

김영규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가중 처벌에 대한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양형기준까지 강화된 것에 대해 법조계에선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많다”며 “책임주의 원칙상 과실 범위가 불분명한 데다 하도급 사업장의 실질적인 정부의 지원책이 제시되지 않아 사업주는 사실상 잠재적 범죄자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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