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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대 독거노총각의 ‘고독’에 열광…2030대 “유튜버 돈자랑에 지쳤다”
-1년 만에 구독자 10만 달성한 스타 유튜버
-솔직한 ‘날 것’의 일상 공유해 젊은층에게 인기
-전문가들 “위안·위로 동시에 얻는 이중적 심리”
40대 '모태쏠로' 독거노총각의 일상 [독거노총각 유튜브 채널]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40년 넘게 혼자 살면서 일용직으로 먹고 삽니다”

40대 후반인 자칭 ‘독거노총각’. 40년 넘게 여자 한번 만나보지 못했다. 예초기로 풀을 베는 기간제 근로자로 월 190만원을 번다. 일이 6개월 이상 없을 때면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한다. 바싹 마른 페인트 가루가 뚝뚝 떨어지는 3000만원짜리 아파트가 유일한 안식처다.

집에 들어오면 머리에 얹혀 있던 가발을 떼어 한 올 한 올 빗질을 한다. 끼니는 은박지에 정성스럽게 싸온 김밥 두 줄로 해결한다. 변색된 반찬통을 그대로 꺼내 시큼한 김치와 곁들여 먹는다. 후식은 늘 그렇듯 비피더스다. 외로울 때면 보라색 이불을 끌어안고 고독한 삶을 한탄한다.

유튜버 독거노총각의 일상 브이로그. 32년 된 3000만원 아파트에 살며 김밥 두 줄을 먹고, 외출 후에는 빗으로 가발을정리한다. [독거노총각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0만, 조회수는 최대 75만

작년 3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독거노총각은 구독자 1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과하게 솔직하고 지나치게 고독한 이 ‘짠내 나는’ 유튜버의 인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각색 없는 극사실적인 일상과, 90년대에서나 볼 법한 촌스러운 편집 기법으로 불과 1년 만에 수 만명을 끌어모았다.

영상의 조회수만 놓고 보면 100만 유튜버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구독자는 10만 명이지만 개별 영상의 조회수는 최소 10만회에서 최대 75만회에 이른다. 독거노총각 채널을 구독하지 않으면서 남 몰래 챙겨 보는 잠재적인 구독자가 많다는 얘기다. 그만큼 묘하게 불편하면서도, 안쓰러워 신경이 쓰이고, 계속 눈길이 가는 중독성 있는 유튜브 채널이다.

독거노총각의 오프닝 화면. 구독자가 늘면서 편집도 발전하고 있다. [독거노총각 유튜브 채널]
“황금종려독거노인상 줘야” 젊은층이 발굴한 유튜버

가장 먼저 독거노총각의 등장에 열광한 것은 2030세대다. 명품백·스포츠카·초고층 아파트 등 상위 1%의 재력을 자랑하는 유튜버들의 ‘플렉스(flex)’에 지친 젊은층은 독거노총각을 발굴했다. 화려한 유튜버들의 삶을 동경하고 갈망하는 대신 소박한 독거노총각의 일상에서 위로와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이다. 결혼·주거·일자리 문제 등 청년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익숙한 소재도 인기 요소 중 하나다.

독거노총각의 구독자인 20대 직장인 오모 씨는 “한껏 꾸며진 영상이 아닌 ‘날 것’의 느낌으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며 “단순히 노동소득만으로 가정을 꾸리고 자산을 불리기 어려운 2030대에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위안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연애도 포기한 3포·5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독거노총각에게서 희망을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대 구독자 김모 씨도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이 많아 오히려 진솔하게 현실을 드러내는 영상이 눈에 띄었다”며 “화려한 편집이 없는 솔직한 채널이 더 희소하고 경쟁력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밖에 독거노총각의 영상에는 응원 댓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구독자들은 “최고의 연출력, 황금종려독거노인상 받아야한다”, “온갖 치장 넘쳐나는 유튜버들보다 천만배 솔직 담백하다”, “저출산율 때문에 정부로부터 고용된 분”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라색 이불을 덮고 핑크색 벽지에 기대 누워있는 독거노총각 [독거노총각 유튜브 채널]
전문가들 “위안과 위로 동시에 얻는 이중적 심리”

전문가들은 독거노총각의 인기가 인간의 이중적인 심리에 있다고 분석한다. 경제 침체와 취업 문제 등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가 독거노총각의 모습에서 위안과 위로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인 비교를 통해 ‘나의 상황이 더 낫다’는 안도감과 함께 ‘나도 똑같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느껴 공감하게 되는 이중적인 심리”라며 “이는 무한 경쟁체제 속으로 내몰려 소외될 수밖에 없는 젊은층의 사회적 문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유튜브 콘텐츠가 쉴 새 없이 쏟아지면서 젊은층이 부를 과시하는 수많은 영상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며 “플렉스 영상을 통해 대리 만족을 하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영상을 찾고자 하는 심리”라고 분석했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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