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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성여행-쉼] 한국의 알프스 평창, 육백마지기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에 위치한 육백마지기는, 청옥산 해발 1,200m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청옥산은 청옥이라는 산나물과 곤드레나물이 자생한다 하여 이름 붙여진 산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랭지 채소밭으로 알려진 육백마지기는 대관령 고랭지 채소밭보다 해발 고도가 400m나 높아 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고 모기떼도 찾아볼 수 없는 청정지역이다. 이곳에는 15기의 위풍을 자랑하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육백마지기로 가는 길은 미탄에서 시작한다. 미탄에서 회동리를 지나거나 평안리를 거쳐 오를 수 있는데, 회동리를 지나는 길이 많이 이용된다. 평안리는 길이 더 험하고 혹 마주치는 차를 만나면 피할 수 없어 낭패를 볼 수도 있으므로 회동리 길을 이용하기를 권한다. 미탄 초등학교 앞에서 청옥산길을 따라가다 마을을 벗어나면 ‘육백마지기 가는 길’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회동리 길도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올라가는데 마치 설악산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넘어가는 길만큼 구불구불하다. 그래도 길이 닦인 곳은 갈만했다. 정상이 가까워지면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길이 군데군데 패인 곳도 있으므로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다행히 오르는 길의 좌우 풍광이 아름다워서 경치를 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이르게 된다. 가는 길에 군데군데 자작나무 군락이 보인다. 잠깐 차를 세워 자작나무 숲에서 쉬었다 가는 여유를 부려도 좋을 듯하다.

정상을 향해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조심조심 달리면 제법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차에서 내리면 커다란 풍력기가 쉬임없이 돌아가고 커다란 잡초공적비가 육백마지기에 왔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잡초공적비

태초에 이 땅의 주인으로 태어나
잡초라는 이름으로 짓밟히고 뽑혀져도
그 질긴 생명력으로 생채기 난 흙을 품고 보듬어
생명의 터전을 치유하는 위대함을 가리고자
이 비를 세운다.

청옥산 육백마지기 생태농장 2019. 08

잡초공적비를 읽은 후 전망대에 올라 산 아래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고원을 바라본다. 이곳은 600말의 씨앗을 뿌릴 수 있을 만큼 넓다 해서 ‘육백마지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원래는 고랭지 배추 재배 단지였으나 평창군이 18억 4,000만 원을 들여 야생화 생태 단지로 새롭게 조성했다.


함께 동행한 사진작가 김용석 선생님과 배추에 얽힌 사연들을 이야기하면서 어렸을 때 느꼈던 추억이 떠올라 잠시 향수에 젖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농사지은 열무, 배추, 무를 대야에 이고 공무원 관사에 내다 파셨다. 그때 엄마 손을 잡고 작은 기찻길을 건너며 따라다녔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농작물을 판 돈으로 붕어빵이나 사과를 들고 집으로 오셨는데 그때 먹었던 붕어빵은 얼마나 꿀맛이었던지, 고랭지 배추밭을 보자 추억이 소환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육백마지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얼핏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그려졌다. 스위스 마이엔펠트는 동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쓴 여류작가 요한나 슈피리가 머물면서 동화를 구성하고 집필한 곳이고 이 도시의 언덕 끝에 아담한 ‘하이디 마을’이 있다. 하이디가 클라라, 페터와 함께 뛰어놀던 알프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육백마지기에 염소 몇 마리를 풀어놓고 하이디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통나무집 한 채만 멋지게 지어놓는다면, 한국의 알프스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이곳을 찾아간 날은 11월 초순, 일찍 추워지는 평창의 청옥산에는 바람이 사정없이 불었다. 하필이면 아침부터 첫눈이 내려서 길은 빙판길에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촬영을 위해 준비해 온 드론조차 띄울 수 없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운 차림의 옷차림부터 털이 달린 패딩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패딩 입은 사람이 부러울 정도로 날씨가 매서웠다.

이 넓은 땅이 6~7월에는 샤스타 데이지꽃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천상의 화원’으로 변한다고 한다. 자그마치 축구장 6개 정도를 합친 크기, 18만여 평에 이르는 곳에 하늘하늘 피어난 데이지꽃들이 장관을 이룰 것을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환상적인 풍광이 그려졌다.

기대했던 통나무집은 없지만, 펼쳐진 고원 아래 아담한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의자도 놓여져 있었다. 나무계단을 이용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위에서 볼 때는 교회가 제법 크게 보였는데 막상 가까이 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른 두 명이 들어서면 꽉 차도록 좁았다. 안에는 자그마한 탁자와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두 사람이 앉아서 사랑을 속삭일 수 있을 법한 신비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교회와 3호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3호기가 있는 작은 광장에는 산말나리, 까치수영, 냉초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야생화로 조성된 야생화 화단이 조성되어 있어 야생화의 종류를 살펴볼 수 있는데 그 또한 보는 이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별자리를 관측하기에 좋은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낮과 밤 일교차가 크고 경관이 수려하며 한자리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어 많은 마니아가 찾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풍력발전기와 어우러진 운해와 밤하늘 별빛을 함께 볼 수 있어 더욱 각광 받고 있다고 한다. 

육맥마지기는 1960년대 화전민들이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지역 주민들이 보릿고개 때면 들어와 온갖 산나물을 캐서 연명했으며 지천에 산나물이 가득했던 곳이다. 또 육백마지기는 ‘별을 맞이하는 곳’으로도 불리는데 이 말도 근거가 있다. 원래 ‘육백’은 금성을 뜻하는 우리나라 고어이고 ‘마지’는 맞이하다 라는 뜻으로 장소를 말한다. 

즉, ‘육백마지기’는 육백(금성)을 맞이하는(바라보는) 장소란 뜻으로 풀이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육백마지기 아래쪽에 별 맞이하는 고개를 의미하는 ‘성마령’이 있고, 옛날 자료에 청옥산에서 하늘을 관찰하고 하늘에 빌기를 했다는 기록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청옥산은 고도가 높고 공기에 함유된 수분이 적어 별을 보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과학적인 근거가 이 모든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벤치에 앉아본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구불구불 펼쳐져 있다. 더 앉아서 이 멋진 풍광을 감상하고 싶은데 너무 춥다. 바람만 안 불어도 좋겠는데 가만히 서 있어도 손이 곱고, 턱이 덜덜 떨릴 정도다. 6~7월에 이 장소에 앉아서 데이지꽃이 지천으로 핀 풍경을 감상한다면 온종일 앉아 있어도 좋을 듯싶다. 올라올 때는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완만하게 닦여있는 길을 따라 올라왔다. 바람을 피해 얼른 차를 타고 차 문을 닫는다. 히터까지 켜자 얼었던 몸이 녹는 듯하다.

원래 육백마지기는 차를 가지고 와서 야영을 하는 사람, 일명 차박(차에서 숙박하는 캠핑)으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이면 평균 200~300대의 차량이 몰려들 정도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대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동네 주민들이 자연이 훼손된다는 민원을 제기하여 이후로 차박 및 야영이 일체 금지되었고, 지금은 산 아래쪽에 있는 ‘산너미 목장’과 인근의 ‘바위공원’ 캠핑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청옥산에서 거의 다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산너미 목장’이 있는데 야영도 가능하고 그냥 둘러보아도 매력이 있는 곳이다.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청옥산을 내려간다. 차 안에서 바라 보는 경치는 더 멋지다. 내년 여름에는 환상의 데이지꽃밭을 꼭 보러오리라 다짐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글/전정희 작가


rea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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