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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앤스토리]“매출 목표? 그런 거 없어요…구성원 다같이 행복하게 살아야죠”
“난 간장 장사 안한다”던 창업주의 장손
마흔에 미국생활 접고 경영에 뛰어들어

발효식품기업은 특히나 연구개발 중요
영업이익 5% 쏟아부어 미생물 등 연구

맛있는 제품 만들려면 “우리 것 먹지마”
입맛 길들여져…유학 보내니 바로 해결

실적압박·징계 없는 회사운영 원칙 고수
직원이 행복한 회사…“반바지 출근 OK”

“올해 매출 목표? 없어요. 내년도 경영 계획? (웃음) 없습니다. 어떤 결과, 어떤 숫자를 목표로 삼지 않아요”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이사(70)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목표가 없다’, ‘실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했다. 경영인이 숫자를 신경 안 쓴다는 말이 믿기 힘들어 재차 확인하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구성원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잖아요”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건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매출에 연연하지 않는 경영인. 목표없이 회사를 운영하지만 경영 실력은 인정을 받는다. 박 대표이사는 지난달 18일 ‘제6회 중견기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내실 경영과 혁신으로 세계시장에서 국내 식품 산업의 저변을 확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년 전 아버지 고(故) 박승복 회장도 같은 상을 받았다. 매출 목표를 정해놓고 질주하기보다는 즐겁게 일하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행복한 회사와 사회를 꿈꾸는 그를 최근 서울 중구 샘표 본사에서 만났다.

박 대표이사는 샘표 창업주 고(故) 박규회 회장의 손자이기도 하다. 40살에 가업을 물려받은 박 대표이사는 처음에는 회사 운영을 거부했다. 그는 “주위에서 당연히 내가 샘표에서 일할 거라 생각하길래 ‘난 간장 장사 안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에게도 “날 포기해라, 날 계산에 넣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박 대표이사는 미국에서 거주하며 회사와 거리를 두며 살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회사의 상황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박 대표이사는 “회사가 마케팅도 안하고, 그냥 간장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가 그런 쪽(마케팅)으로 생각을 하실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며 “동생과 사촌 동생에게 회사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어렸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자신을 아끼는 할아버지가 만든 회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미국 생활을 접고 경영에 뛰어들었다.

박 대표이사는 고(故) 박규회 회장과 고(故) 박승복 회장을 ‘성실하시고 검소하신 분들’로 회고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집에는 샘표 제품들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어린 박 대표이사에게 “가족이 못 먹는 음식은 안 만든다”고 항상 말했다. 아버지와 함께 방문한 공장 정문에는 ‘법을 지키자’는 글씨가 있었다. 박 대표이사는 고인들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지금 생각해보면 성실함과 정직함이 그분들의 어마어마한 힘이었던 같다”고 말했다.

박 대표이사가 회사를 맡기 시작했던 199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경제가 성장했다. 사람들의 소득 수준도 올라갔다. 그는 “굉장히 잘 살기 시작했어요. 수요가 크게 늘었고 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사람들이 만들면 다 팔리는 세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도 변했다. 시중에 상품들이 많아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을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박 대표이사는 “공급이 많은 상황에서 다른 회사랑 경쟁하려면 싸게 파는 거밖에 없는데, 그러면 경영이 안 된다”며 “결국 남들이 필요하면서도 다른 회사랑 다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이사의 생각은 적극적인 연구·개발투자로 이어졌다. 전체 매출에서 1% 내외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식품기업들과 달리 샘표는 매출의 5%가량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그는 “대부분 회사는 영업이익률이 5%인데, 우리처럼 연구·개발에 쓰면 이익이 0이다”며 “수익이 나기 힘들다 보니 실적 생각해서 투자를 안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팔아야 한다는 생각도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샘표도 실적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냐는 질문에 박 대표이사는 “실적 신경 안 쓴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발효식품기업이야말로 연구개발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연구소보고 ‘무엇을 연구하느냐, 간장 잘 담그면 되지’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이사는 발효식품 간장은 다루기 위해서는 미생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간장 맛이 집마다 다르고, 또 지역마다 다르다. 같은 집도 올해 간장 맛과 작년 간장 맛이 다르다”며 “이런 현상을 자연의 신비나 손맛으로 여기는데, 대량 생산을 하는 식품기업은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박 대표이사의 철학 덕분에 샘표는 2012년부터 공동 연구를 이어온 스페인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를 비롯해 미국 뉴욕 맨해튼에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를 세우기도 했다.

물론 박 대표이사에게 제품 연구·개발이 쉬운 건 아니었다. 회사 간장이 맛있다는 연구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분명 문제가 있는데 간장 연구원들은 우리꺼가 최고라는 거야. 내 입맛이 이상하대(웃음)”라고 말했다. 박 대표이사는 직원들이 매일 같은 간장을 먹다보니 맛에 길들여진 것이라 판단했다.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했다. 그는 “우리 직원을 2년씩 일본에 보내봤더니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당시의 경험은 지난해 출시한 프리미엄 된장 ‘토장’ 개발단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박 대표이사는 “‘우리 된장이 맛없다, 나는 못 먹겠다’하니까 연구원들이 또 내 입맛이 이상하다고. (웃음) 그래서 우리 된장 먹지 말고 다른 유명한 된장을 먹어보라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회사꺼가 맛있다고 하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박 대표이사의 판단이 옳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구원들의 입맛이 바뀌면서 맛을 발전시켜 나갔다.

박 대표이사는 신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기존 제품을 향상시키는 데도 힘쓰고 있다. 그는 “간장 제품의 경우 다른 회사들과 비교했을 때 시설 투자나 맛 연구에 더 많이 투자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박 대표이사가 경영에서 연구개발만큼 중시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직원의 행복이다. 그래서 샘표에는 영업 실적 압박도, 직원 징계도 없다. 그는 “내부에서 경쟁이 심하면 회사가 망가진다”며 “징계도 없다. 자신의 실수로 이미 힘들어하는 사람을 징계하는 건 의미가 없고, 아무런 죄책감 없는 사람도 반성하지 않을테니 징계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징계 없음’이라는 원칙을 예외 없이 지켜오고 있다. 몇 년 전, 자칫 회사에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직원에게도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해당 직원이 고의로 잘못한 일도 아니고, 실수할만한 환경을 만든 회사 책임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이사는 “폐수처리장에서 담당자가 실수해서 석 달 영업정지를 당할 뻔했다”며 “자칫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이지만 징계를 하지 않았다. 그 직원은 정년까지 마치고 회사를 떠났다”고 말했다.

대신 박 대표이사는 구성원 간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사실 회사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며 “협력이 중요한데 최근에는 회사도 협력을 강조하지 않고, 직원들도 그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협력하고, 행복하게 일하기 위해 조직이 유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성원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경영철학 덕분인지 박 대표이사는 젊은 직원들과의 소통이 어렵지 않다. “젊은 세대가 이해가 안 가거나 못마땅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세대마다 특성이 다르다고 하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신 사람마다 그가 처한 조건이 다를 뿐이다”고 말했다. 젊은 직원이 반바지를 입거나 샌들을 신고 출근하는 건 어떻냐는 질문에 “당연히 괜찮다. 뭐 어떠냐”고 박 대표이사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리=김빛나 기자

사진=이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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