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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읽는 신간]살 만한 땅을 찾아 ‘택리지 평설’외

▶택리지 평설(안대회 지음, 휴머니스트)=18세기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擇里志)는 팔도에 살 만한 땅과 산수가 빼어난 곳이 어디인지 제시한 조선시대 가장 인기있는 인문지리서이자 실용서로 꼽힌다. 이중환이 이 책을 쓴 목적은 당쟁에서 패배하고 권력에서 소외돼 생존을 위협받던 사대부들에게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 주려는 데 있었다. 오랫동안 ‘택리지’를 연구해온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200여 종에 달하는 택리지 사본 중 23종을 선별, 철저한 교감을 거쳐 2018년 ‘완역 정본 택리지’를 펴낸 바 있다. 이번 평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중환의 인생 역정과 그로부터 비롯한 문제의식, 수많은 이본이 나온 배경, 사대부들이 헛소리로 치부했던 민담을 수집, 지역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려 한 이중환의 노력 등을 함께 담아냈다. 이중환은 남인 당파를 주도하던 명문가 출신으로 24세 문과에 급제, 10년동안 관직을 이어왔으나 영조가 즉위한 지 얼마 안돼 역모에 가담했다는 죄로 심한 고초를 겪는다. 무죄를 주장한 끝에 겨우 풀려났지만 영영 벼슬길이 끊기고 사대부 사회에서 밀려난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 팔도를 누볐다. 그가 살 만한 곳의 기준으로 삼은 건 지리와 생리, 인심, 산수. 저자는 일반 지리지가 행정 중심지에 집중한 것과 달리 경제적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지방을 중심으로 살핀 점, 백과사전식 나열 대신 체계적인 입지론을 모색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젠가(정진영 지음, 은행나무)=기업과 언론 간 유착, 공공연한 접대 문화와 위계를 이용한 상사의 성추행, 문제가 발생하면 덮기에 급급한 사회 시스템 등 우리 사회 여전한 부조리의 네트워크를 생생하게 드러냈다. 배경은 가상의 중소도시 고진. 도시 규모에 비해 큰돈이 오가는 곳으로 이곳에는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대한전선의 계열사인 내일전선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업계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이곳의 사내 문화는 매우 기괴하다. “고진에서 태어나 고진에서 학업을 마친 사람이 조직에 충성할 확률이 높다”는 궤변으로 ‘고진 순혈주의’를 고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소재 명문대 타이틀은 승진에 걸림돌이다. 이런 불합리한 관행에 내부에선 말이 많지만 아무도 이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에는 저마다 다른 이유의 욕망들이 혼재하며 부딪힌다. 지연과 학연으로 자신만의 성을 지키려는 고종석 사장, 신입사원을 성추행, 대기발령중이다 뒷조사로 재기를 노리는 이형규 차장, 횡령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서희철 과장 등 부조리와 욕망의 화신들을 작가는 거침없이 그려나간다.

▶가난의 문법(소준철 지음,푸른숲)=‘폐지줍는 노인’들을 통해 우리 사회 가난의 구조·문법을 살폈다. 저자는 북아현동의 폐지 줍는 여성노인 윤영자를 가상의 주인공으로 설정, 생애 경로를 좆아간다. 윤영자라는 이름은 당시 가장 흔했다. 76세인 윤씨는 3남3녀에 사회적으로는 남방개발, IMF 경제위기, 북아현동 재개발, 금융위기 등을 겪었다. 자녀들의 대학진학과 결혼, 이들의 퇴직 및 사업 실패와 금전 요구, 남편의 퇴직과 질병 등 평균적인 생애사건들도 이어진다. 윤영자는 아현동에 단독주택을 구입할 정도의 부를 축적했지만 이런 사건들을 거치면서 자산을 잃고 지금은 50만원 남짓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 저자는 그녀의 가난이 사회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집을 팔아 자녀의 사업자금을 대는 개인적 선택이 가난을 초래한 것이니 개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 노인들의 가난은 사회구조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회보험제도가 정착하기 전에 노인이 됐으며, 특히 여성들은 직접 임금노동자가 될 기회가 드물었다. 부양능력이 없는 자녀, 경력과 숙련이 없는 상태로 생계를 꾸릴 방도를 찾은 결과가 폐지 줍는 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노인만을 두고 볼 때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43.8%로 OECD가입국 중 가장 높다. 책에는 저자가 길에서 만난 평생 부지런히 살아온 노인들의 얘기가 생생하게 들어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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