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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무악칠채’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었다
가·무·악 ‘꾼’들의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낯선 장단 칠채로 요리한 무대
과거·현재·미래의 공존
“한 장단 안에 2분박, 3분박이 동시에 들어있는” 칠채는 소리와 무용엔 쓰이지 않는 장단이다. ‘가무악칠채’는 소리, 무용,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칠채 장단에 맞춰 무대를 꾸민다. [국립극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쓰리 체인지스 투 투, 쓰리 체인지스 투 투, 쓰리 투 쓰리…” 한국어로 하면 “3이 2가 되고, 2가 3이 되고, 3이 다시 2가 된다”는 칠채 장단의 설명. 정가(正歌) 보컬 박민희는 무용수 이재화(‘가무악칠채’ 안무가)의 곁을 연기처럼 떠돌며 주술을 외는 것처럼 보였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칠채’의 늪. 고통 속 몸부림을 딛고 나면 비로소 칠채와 하나가 된다.

‘한 장단에 징을 일곱 번 치는 데서 유래했다’는 칠채. 박자가 일정치 않아 무용과 음악에는 쓰이지 않는 이 요상한 장단은 음악이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됐다.

지난 20일부터 사흘간 관객과 만난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는 ‘칠채’라는 장단의 끝을 보여주는 공연이다. 2018년 초연, 국립무용단원 이재화가 안무가로 선보인 첫 작품. 복잡한 변박에 맞춰 춤을 추고, 연주를 하고, 소리를 하자니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허성은 음악감독은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했다.

갈 데까지 가는 ‘칠채’가 관객에게 익숙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무대 귀퉁이에서 이재화 안무가가 장구 하나를 들고 등장하는 공연 초반. 관객들은 어쩌면 익숙한 장구의 장단을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덩기덕 쿵덕” 내지는 “덩기덕 쿵더러러러”. 장구는 입으로 따라가기 힘든 속도의 장단을 연주한다. 숫자로 세면 “123 12 123 12 123 123(원투쓰리 원투 원투쓰리 원투 원투쓰리 원투쓰리)”라는데,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 어지러운 장단에 혼미해질 무렵 이 낯선 장단에 묘하게 어우러진 몸짓이 시작된다. 빠른 속도를 따라가는 이재화의 몸짓은 점점 더 닿지 않는 먼 곳으로 향해 간다. 마치 굿판의 무당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에 선 중간 존재처럼.

65분의 공연은 계산된 구성이 인상적이다. 한국인의 흥을 들끓게 하는 장단들이 몰아치면 숨 막히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지루할 새 없이 이어지는 전반부 공연으로 칠채의 맛을 보면, 칠채는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고개를 내민다. 한 음을 길게 늘어뜨리는 우리 소리인 정가(正歌)로 요리하는 칠채. 칠채보다 4~5배는 느린 정가는 빠르게 흘러가는 박을 소화하며 ‘가무악칠채’ 공연의 숨 쉴 틈을 마련한다. 그러다 다시 휘몰아치는 타악 연주가 더해지면 관객들의 가슴엔 익숙한 4박과 낯선 칠채의 일체감을 안긴다. 공연 후반부는 마지막 ‘스퍼트’다. 강렬한 드럼과 기타 사운드에 무용수들은 전력질주한다. “사물놀이를 할 때 반쯤 미치는 고조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55분을 달려왔다”는 안무가 이재화의 이야기처럼 무용수들은 미칠 듯한 속도감에 혼을 태운다. 이 땅의 액의 기운을 모조리 몰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마지막을 불사른다.

‘가무악칠채’ [국립극장 제공]

이 모든 과정 안에 칠채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무용수와 연주자, 소리꾼이 칠채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생경함부터 칠채와 하나가 되는 혼연일체의 과정을 스토리텔링으로 녹여냈다는 점이다.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김준수가 등장한 공연 초반, 무용수와 소리꾼은 ‘칠채’ 장단의 구조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김준수가 칠채를 말하면, 무용수가 칠채를 추니, 관객들은 칠채를 보고 듣고 익히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칠채’를 체화해 누군가는 랩처럼, 누군가는 신과 인간 사이의 메신저처럼 승화하는 모습이 65분 동안 펼쳐진다. 공연 말미엔 카타르시스가 분출된다. 팽팽하게 잡고 있던 줄을 놓아버리듯 열기와 광기로 마침표를 찍고 나면 무용수와 악사와 객석은 이내 하나가 된다. 같은 크기의 호흡과 긴장감을 안고 ‘칠채’를 보낸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미디어 아트는 공연을 다채롭게 만든 요소다.

‘가무악칠채’는 여러 전통과 현재의 혼합이다. 때때로 ‘전통’이나 ‘한국적’이라는 단어엔 ‘과거의 것’이라는 선입견이 따라온다. 하지만 박제된 것처럼 보인 전통은 시간을 이어, 세대교체를 겪으며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가무악칠채’는 ‘칠채’ 장단을 쪼개고 늘리고 해체해 새로운 장단으로의 활용 가능성과 확장성을 보여줬다. 딱 떨어지는 4박이 익숙한 세상에 등장한 과거의 낯선 장단은 끊임없이 전통을 고민하고, 그것을 동시대의 시선으로 풀어내왔던 ‘꾼’들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한국무용에 매진해온 무용수들은 한국춤엔 사용하지 않는 장단을 그들이 익혀온 몸짓과 춤사위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감각을 더해 현재의 장단으로 승화했다. 안무가 이재화는 “꾸준히 해왔던 것”, “가장 잘 하는 것”을 보여준 무대라고 했다. 한국적인 것에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더해 쉽사리 넘보기 어려운 새 영역을 다졌다. 역동적이면서 세련되고,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변주는 이들의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곳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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