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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태죄’ 숫자놀음 그만…“여성의 재생산권 보장까지” [헤븐]
정부 입법예고안 15~24주 사회경제적 이유로만 낙태 ‘허용’
권인숙·이은주 대표발의 안은 제한 없어…형법상 낙태죄 삭제
낙태 비범죄화·국가 비용부담·모성 강조 넘어서자는 주장도

[헤럴드경제=주소현·신주희 기자] ‘낙태죄 폐지’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가 대체 입법 시한을 두 달여 남겨두고 국회로 넘겨졌다. 정부는 지난달 7일 형법 및 모자보건법 입법 개선 절차 및 개정안 등을 발표했으나 되레 ‘낙태’를 범죄로 바라보는 인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낙태죄’ 전면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청원’에 10만명 이상 동의해 보건복지위원회에 자동 회부됐고 일부 국회의원들도 정부 입법예고안에 ‘맞불’을 놓는 법안들을 발의하고 있다.

헤럴드경제 2030 기획취재팀 헤븐이 외국의 입법례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현재까지 발의된 ‘낙태죄 폐지’ 관련 법안들을 뜯어봤다.

14주, 24주, 전면폐지…아직도 ‘주 수 논쟁’

정부 입법예고안은 임신중단 가능 시기와 사유를 규정했다. 14주 이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존중하되 24주 이내는 ▷범죄 행위로 인한 임신 ▷친인척 간 임신 ▷사회경제적 이유 ▷보건의학적 이유 등으로 임신중단을 제한했다.

이처럼 임신 주 수에 따라 허용과 처벌에 차등을 두는 정부 입법예고안에는 ‘법적 명확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임신 주는 여성의 마지막 생리일부터 세거나 초음파로 태아의 크기를 재서 정하는 불명확한 개념인 탓이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임신 주 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 기준으로서는 유의미할 수 있지만 처벌 기준으로 삼기엔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성의 진술에 의존해서 임신14주를 넘어가면 인공임신중단을 제한하거나 위반된 건에 대해서 여성을 처벌할 것인지 의문”이라며 “허용 범위를 넘어서는 임신중단 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탓에 의사들이 소극적 진료행위를 할 여지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이 신체적·경제적 여건에 따라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성적 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등 여성 단체는 “임신 경험이 처음이거나 생리주기가 불규칙한 여성들은 2~3달까지 임신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탓에 정부안이 공개되기 이전인 지난 8월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임신 주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지 말고 아예 낙태죄를 폐지해 여성의 임신·출산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정부 입법예고안이 공개된 이후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임신 주수와 사유에 제한을 두지 않고 ‘낙태죄 전면 폐지’를 내세운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들은 공통적으로 형법 제 269조, 270조에서 규정한 ‘낙태의 죄’ 삭제하고 모자보건법에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명시하도록 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정부 입법예고안을 보완해 임신 24주까지 제한 없이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박주민 의원 안에 따르면 24주 이후 임신중단을 하는 경우 임산부는 처벌받지 않고 의사만 처벌 받는다.

여성계는 낙태 허용 주수 제한과 형사 처벌 조항을 없앤 법안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권 의원 법안에 대한 환영 성명을 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임신중단은 범죄가 아니라 여성들에게 언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국가가 의료 서비스로 접근해야 한다는 내용 담는 게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임신중단의 ‘비범죄’화…의료 서비스로서의 인식 필요

여성계 및 전문가들은 정부안이 임신중단을 의료 서비스로 바라보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로 규정하는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대표적으로 정부 입법예고안에 의사가 개인적 신념에 따라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조항을 지목했다. 또 임산부들이 상담을 반드시 받도록 하거나 미성년자나 의사결정이 어려운 임산부들이 법적대리인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점도 지적됐다.

김 위원은 “실제로 임신중단을 경험한 여성들이 의사에게도 비난을 들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며 “임신중단에 대한 의사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거부권까지 제공되면 (임시중단이) 자칫 ‘신념에 반하는 행동’으로 굳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시술을 받을 수 없는 등 의료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민문정 공동대표는 “의료법 수준으로도 충분한데 의사 개인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듯한 프레임 자체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의사의 진료거부권은 현행 법에도 나와 있다. 의료법 제15조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인정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진료에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임신중단을 의료서비스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상담 의무화나 대리인 동의 등도 필요하지 않다는 게 여성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행법상 특정 의료 행위들에 대해서 연령에 따라 제한을 두는 경우는 없다.

김민문정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임신중단만 나이나 의사결정에 따라 접근에 제한을 두는 건 의료서비스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고 결국에 이것이 범죄라는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며 “오히려 이들이 건강한 임신중단에 접근하지 못하고 다른 위험한 방식 선택함으로써 건강권 침해될 위험을 키운다”고 설명했다.

해외는 임신중단 합법화 넘어 국가가 비용 부담까지

이미 낙태를 합법화한 해외 국가들도 대부분 우리 정부의 입법예고안처럼 일정 기간 내에서만 낙태가 가능하도록 조건부로 허용하고 있다.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는 국가들도 적지 않다. 프랑스와 독일은 임신 12주 이내의 인공임신중절만 허용한다. 이를 어길 경우 여성을 형사 처벌하는 ‘낙태죄’ 조항도 남아 있다.

그러나 의료보험 적용을 통해 임신중단 비용을 국가가 지불하는 등 낙태죄 폐지 국가들 중 다수는 임신중단을 의료서비스로 인식하고 여성들의 낙태 문제를 재생산권리 보장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프랑스는 의료보험으로 463유로(한화 약 61만원)에서 664유로(한화 88만원)까지 이르는 임신중단 수술 비용을 100% 전액 보장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월부터는 여성에게 죄책감을 지우고 시술 시기를 늦춘다는 이유로 상담 및 숙려기간 의무화 제도를 폐지하기도 했다. 독일은 사회‧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의료보험조합에서 비용을 부담해 여성의 임신중단 결정을 국가가 의료서비스로 보장하고 있다.

영국은 임신중단 수술 가능 주 수를 24주로 두고 25주 이후에도 산모의 건강 및 기형 등의 이유라면 임신중단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는 임신중단 주 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형사처벌 조항 역시 삭제했지만 의사들의 수술 거부권을 인정했다.

김 연구위원은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의사들이 수술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임신중단 수술 등이 가능한 병원 및 의사를 안내하도록 의무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술 거부에 따른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공임신중절의 문제를 ‘의료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한다”고 덧붙였다.

‘모성’ 지우고…아동과 여성, 남성 포함해야

임신중단 비범죄화를 넘어 모성을 강조하는 용어나 조항들을 수정해야한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이은주 의원 대표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도 모자보건법 법률명을 ‘임신·출산 등과 양육에 관한 권리보장 및 지원법’으로 바꾸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난 3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10만명을 달성한 ‘낙태죄 전면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청원’에는 모성을 여성으로 변경하고 모자보건법을 여성아동건강법으로 법률의 관점을 전환하라고 주문했다.

정부와 권인숙 의원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에서 ‘모성의 생식건강 보호’ 조항을 삭제하고 ‘국민 전체의 재생산권 보장’을 명시했지만 정보 제공을 넘어 경제적 지원 등 실질적인 보장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민문정 공동대표는 “피임, 임신 전후, 출산, 양육과 관련한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청소년 앙육 미혼모 등 임신 유지를 결정하는 여성들과 관련해 지원하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여성과 남성 모두의 재생산권까지 아우르는 개정안이 필요하다”며 “임신 전 안전한 성관계를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남녀 모두에게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도록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는 법안으로 도약해야한다”고 제안했다.

〈헤븐〉

헤럴드오븐 : 헤럴드 젊은 기자들이 굽는 따끈따끈한 2030 이슈

Heav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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