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수요 분산용’ 월세 세액공제 등 거론되지만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수요자에 적용 어려워
표준임대료·전월세상한 신규계약 적용 포석?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월세 시장에 대한 물량과 가격 등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하면 추가 대응책 강구하겠다.” (지난 12일 확대간부회의), “안정화되지 못해 안타깝다. 추가 대책을 계속 강구해보겠다”(지난 8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연일 ‘대책’을 언급할 정도로 전세시장의 수급난이 심상치 않다. 매물이 부족한 가운데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서울을 넘어 수도권 전역에 확대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당장 가을 이사철이 다가온 데다 전세난이 저금리, 새 임대차법 등과 얽혀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 잠실한강공원 일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 |
13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파트실거래가(아실)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매물은 7·10 부동산 대책 이후 3개월 동안 78.5% 줄어 이날 기준으로 1만 건에도 못 미치는 9334건으로 집계됐다.
이런 가운데 전세 수요는 폭발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지난 5일 기준 서울의 전세 수급지수는 121.4로 2016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수도권 역시 117.6으로 같은 해 2월 이후 최고치다. 이 지수는 0~200으로 표현되는데, 200을 향해갈수록 수요가 더 많다는 것을 드러낸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이 60주 이상 오름세를 보이는 것도 공급자 우위 시장이 굳어진 데 따른 것이다.
전세시장의 불안은 이미 예고됐었다. 집주인이 저금리에 따라 전세보다는 반전세·월세를 선호하거나 실거주 의무 강화로 직접 들어가 사는 경우가 늘어난 데다 청약·학군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매물 품귀 현상이 짙어졌다.
여기에 지난 7월 말 전격 시행된 새 임대차법은 전셋값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기존 집에 눌러앉으면서 신규 매물은 더 귀해졌고, 집주인은 4년간 전셋값을 높이지 못할 것을 고려해 보증금을 크게 올려받기 시작했다. 이렇다 보니 수도권 주택종합 전세가격 변동률은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상승폭이 더 커졌다. 7월 0.42%에서 8월 0.54%, 9월 0.65%다.
홍 부총리는 대책을 언급하지만, 당장 계약 만료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실수요자를 위한 묘책을 내기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정부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전세는 매매와 달리 ‘가수요’가 없어 살 수 있는 공간 자체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당장 공급을 짜낼 방법이 없다는 시각이다.
정부 관계자는 “저금리에 따라 수도권에서 서울로, 다세대·연립에서 아파트 전세로 주거의 상향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일부 지역에 수요가 몰리고 가격이 치솟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공급 기반 확충이 필요하지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며, 저금리 문제는 또 거시 경제와 맞닿아 관계 부처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전세난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봤다. 전세대출 완화는 전세가격 상승이 따라올 수 있는 데다 매매가격의 잠재적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전세수요 분산을 위한 월세의 세액공제 혜택 확대다. 세액공제를 통해 월세는 ‘잃는 돈’이 아니라, 저렴하게 거주할 방법이라는 인식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현재 공제 한도 탓에 월세 세액공제를 받는 사람이 대상자의 10%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여기에 혜택을 준다면 월세가 과도한 주거비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확대할 수 있다”면서“다만 이는 전체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문제인 만큼 정책화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딱히 해법이 없는 데도 전세대책을 거론하는 건 표준임대료를 도입하거나, 전월세상한제를 신규계약에 적용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신규계약분만 전셋값 폭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좋은 명분이 될 것”이라고 봤다.
전문가들은 전세난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송 부장은 “임대인이 신규물량에 대한 주도권을 가진 상황에서 전세난은 최소 2년 이상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당초 전세난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 자체가 임대차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1989년의 경험치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며 “1년에서 2년 연장과 2년에서 4년 연장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다르며, 설상가상으로 내년에는 서울의 입주물량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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