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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의 폭압 못지않은 남자의 폭력

시대의 허위와 허상을 통쾌하게 드러내온 시인 최영미의 자전소설 ‘청동정원’개정판이 나왔다. 2014년 출간된 초판에서 누락된 것을 복원하고 표현을 바꾸는 등 전체적으로 수정했다.

작가는 “80년대에 이십대를 보낸 어느 청춘,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봄날의 추억”이라고 ‘작가의 말’에 썼는데, 언어로 해석되지 못한 것들의 소리가 종종 여백으로 남아있다.

80년대를 청춘으로 통과한 이들은 두 부류다. 빛난 훈장을 달고 있는 운동권 영웅들과 흔들리면서 도 시대의 미약한 역할이라도 담당하고자 한 주변인 혹은 ‘회색인’들이다. 소설은 시대의 폭압을 눈감지 않으려 애쓰는 청춘들을 그려가되, 시대의 무게나 이념에 눌리지 않는 개인의 소중한 목소리와 몸짓을 거침없이 그려낸다. 더욱이 시대의 폭압보다 여자에게 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남자,남편의 폭력과 이념써클 내 성추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은 또 다른 증언으로 읽힌다.

80년 대학에 입학한 주인공 애린은 입시때문에 유예해왔던 꿈꿨던 것들을 탐닉하느라 세상 일에 별 관심이 없다. 어느날 학내시위를 목격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듣게 되면서 운동권에 포섭된다. 전혜린, 루이제 린저 등을 꿈꿨던 문학소녀는 사회과학서적들을 만나지만 생경한 투쟁 용어와 조직의 분위기에 다소 거리감을 느낀다. 선배 언니의 구속에 연루돼 구류를 살고 무기정학까지 당한 애린은 이후 섭식과 배변장애를 겪고 떠돌다 복학한 뒤 동혁의 여자가 된다. 스물두살 여대생이 한 남자의 아내가 됐지만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폭력이 이어지자 이혼을 결심한다. 이후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며 민호를 만난다.

제목 ‘청동정원’은 무장한 전경들이 푸른 나무들 옆에 서있던 시대를 말한다. 작가는 녹슬었지만 여전히 빛을 잃지 않은 청동정원이 지금 새로운 의미를 던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청동정원/최영미 지음/이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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