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과도한 국가 권력 막고 경제성장 이루는 도플갱어 해법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신자유론’제시
국가 권력 비대는 개인의 자유 제한 불가피
강력한 사회 견제로 ‘좁은 회랑’의 균형 필요
‘족쇄찬 리바이어던’은 ‘레드 퀸’ 효과 내
뺏기경쟁은 금물,제로섬 게임 으로 역효과
사회 갈등·분쟁 해결할 기관들의 역할 중요
“레드 퀸의 동학은 사회의 갈등을 키우기 마련이다. 따라서 분쟁을 해결하고 억제할 기관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동학이 불안정으로 치닫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경쟁으로 이어지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좁은 회랑’에서)사진은 세르비아를 떠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

국가가 없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와 다름없다고 본 이는 17세기 사상가 토마스 홉스다. 홉스는 이런 고통과 죽음에서 지켜줄 국가통치권자로서 정부를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했다.

디지털화와 코로나 19시대, 개인의 자유와 국가 권력이 부딪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로 유명해진 대런 애쓰모글루 MIT교수와 제임스 A.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가 홉스를 비판적으로 다시 소환했다.

국가가 과도한 권력을 가지면 국민의 자유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독재국가가 그렇다. 반대로 국가의 권력이 약해 이익단체들에 휘둘리거나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지 못하면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진다. 리바이어던은 야누스다.

전체주의로 빠질 위험성을 차단하고 시민사회가 너무 많은 자유로 무질서해지는 위험성도 차단해야만 개인은 창의성을 발휘하고 국가는 안정과 혁신을 꾀할 수 있다. 대런과 제임스가 말하는 국가와 사회의 ‘좁은 회랑’의 균형이다.

공저 ‘좁은 회랑’(시공사)은 민주정과 공화정을 선보인 고대 아테네와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 권력이 1인에 집중된 중국과 이슬람 세계, 국가부재와 독재를 오간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포퓰리즘으로 흔들리는 미국 등 시공을 오가며 국가의 권력과 개인의 자유의 길항작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그 중 시리아의 사례는 생생하다.

2011년 1월, 시리아 다마스쿠스 구시가지에 있는 하리카 시장에서 아사드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자발적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 후 남부 도시 다라에서 아이들이 벽에 ‘국민은 정권 붕괴를 바란다’는 낙서를 했고, 아이들은 잡혀가 고문을 당했다. 이 일로 전국적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곧 내전이 일어난다. 시리아인들은 끝내 자유를 얻지 못했고 또 다른 폭력인 이슬람 국가, ISIS와 맞닥뜨려야 했다. 이후 죽음은 일상이 됐다.

시리아는 국가붕괴로 50만명이 내전으로 죽고 500만명이 난민으로 살고 있다. 부패와 범죄, 악행을 뿌리뽑고자 한 일이 더 큰 재앙으로 다가온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길가메시 문제’를 상기시킨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 ‘길마메시’는 이라크 남쪽 사라진 세계 최초의 도시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의 얘기다. 견고한 성곽, 장엄한 왕궁, 사원, 상점과 시장, 광장 등 당당한 면모를 지닌 도시는 상업으로 번창했고 주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놀라운 인프라를 자랑했다. 문제는 길가메시. 주민들을 짓밟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취하는 통제할 수 없는 왕이었다. 절망한 사람들에게 신전의 가장 높은 자, 아누는 도플갱어식 해법을 제시한다. 바로 길가메시를 복제한 또 하나의 인간, 힘과 용기, 심지어 난폭한 마음도 닮은 새로운 영웅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 둘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뤄야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견제와 균형으로 해석, 비대해진 국가 권력에 대항할 사회의 견제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좁은 회랑은 바로 이런 국가와 사회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공간으로, 좁다는 건 그만큼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한 문이 아닌 회랑으로 설정된 건 자유를 성취하는 일이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의 경주를 의미하는 좁은 회랑안에서의 레드 퀸은 양쪽의 역량을 키워주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낸다. 규범의 우리를 더 느슨하게 만들고 개인의 자유를 증진하며 정치에 더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방해받지 않는 진정한 자유가 출현한다. 국가 역량이 높아지면서 경제적 번영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레드 퀸 효과가 나타나려면 국가와 사회 간, 엘리트와 비엘리트 간 경쟁이 상대를 파괴하고 상대가 가진 것을 강탈하는 제로섬 게임이 돼선 안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이 책의 주제가 자유라는 건 새삼스럽다. 인간 사회가 어떻게 자유를 성취하거나 못했는지, 또 자유의 성취가 번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는데,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통해 강조해온 시스템의 중요성을 또 한번 역설한다. 국가의 미래는 한 나라의 정치체제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체제는 국가와 사회가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독재적 리바이어던(중국), 부재하는 리바이어던(티브족, 레바논), ‘좁은 회랑’안의 족쇄찬 리바이어던(영국, 미국)등 어떤 유형이냐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특히 정치체제는 경제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데, 독재적 성장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안전한 재산권과 교역, 투자뿐만 아니라 혁신의 끊임없는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데, 이는 독재적 리바이어던 체제에선 이루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길가메시는 어떻게 됐을까?

길가메시를 복제해 만든 엔키두는 길가메시가 새 신부를 강탈하려 하자 길가메시와 한판 붙는다. 길가메시는 이겼지만 도전자가 나타나면서 독재권력은 사라진다. 그런데 싸우고 나서 둘은 손을 잡는다. 신이 그들을 벌하려고 보낸 황소마저 둘은 힘을 합쳐 죽이고 만다. 이제 자유의 희망도 사라진다.

저자는 도플갱어를 통해 국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제약을 가하더라도 자유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를 누리려면 법이 필요하고, 자유는 국가나 엘리트가 주는 게 아니라 보통사람들과 사회가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유를 얻으려면 결집된 사회가 정치에 참여하고, 필요하면 항의하고, 가능하면 투표로 정권을 내려놓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팬데믹과 AI시대, 양극화 등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시사점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좁은 회랑/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지음, 장경덕 옮김/시공사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