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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상륙작전 70주년, 팔미도 선점한 국군이 성공의 길 텄다
다 계획이 있었던 대한민국 해군, 작전 성공 환경 조성
통영 상륙 작전 성공 후 덕적·영흥도 이어 팔미도 점령
한국-미국 약속된 시간, 팔미도등대 불 켜고 쾌속 진군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는 1903년 처음 불을 밝힌 인천 팔미도 등대이다.

썰물 때 소팔미도와 붙어 여덟팔(八)자 모양을 그린다. 남서쪽에 봉긋 솟은 작은 섬, 해녀들이 물질하다 잠시 쉬어가는 해녀도 까지 거느린다.

팔미도는 지금으로부터 꼭 70년전, 1950년 9월15일 우리 해군과 미군이 함께 벌인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결정한 ‘신호탄’ 같은 섬이라 더욱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인천상륙작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팔미도 등대는 작전 성공 70주년 기념일인 9월15일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강민주 인천광역시 문화해설사는 “인천상륙작전을 미군과 외국군대 만 주도한 것으로 오해하는 국민들이 일부 계신데, 실상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인천 대첩의 기초는 우리 해군이 닦았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임했다”는 점을 기자에게 전한 바 있다.

인천 주민의 목격담과 향토사학자들에 따르면, 한국전쟁 한 해 전인 1949년 8월 북측 몽금포에 미국 군사고문단 함정이 억류되자 함명수 소령 특공대가 적을 응징해 구출에 성공했고 이때 받은 공로금으로 성능 좋은 전투함 4척을 구입했다.

우리 해군은 1950년 6월 26일 대한해협까지 잠입한 북한 해군을 격퇴하며 해상침략의 예봉을 꺾은데 이어, 그해 8월17일 국군 최초 단독 상륙작전인 통영작전에 성공해 영남 남부지역 낙동강 전선을 돌파했다.

해군은 북상한다. 상륙작전 20여일을 앞둔 1950년 8월 18일 덕적도, 20일 영흥도 연쇄 단독 상륙작전에 성공해 적을 몰아냈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우리 해군에겐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해군은 이어 인천, 서울, 수원 일대, 팔미도와 월미도 등 도서 지역 첩보수집을 위한 ‘엑스레이 작전’을 펼쳤다.

이같은 일련의 개가는 1% 미만이라던 인천상륙작전을 대첩으로 이끌고 수도 서울을 탈환케 한, 결정적인 기반이 됐다.

1950년 9월 중순 팔미도 등대는 꺼진다. 칠흑 같은 어둠. 물때가 맞아야 하고 속전속결이 아니면 험한 해저지형의 인천을 공략하기 어렵다.

한국 해군과 미군 등 연합군이 약속한 시간, 팔미도 등대 불이 갑자기 켜지고 쾌속 진군한 한미연합군은 인천을 순식간에 손아귀에 쥔다. 팔미도가 아시아 민주주의 수호의 희망등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팔미도는 서쪽에서 일출보는 명소로도 유명하고 둘레길 청정 힐링은 건강하다. 팔미도 등대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70주년 기념일에 국가문화재가 됐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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