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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은 왜 백두산 제천시설 발굴을 은폐했나

우리 상고·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흔히 신화적 영역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중국 동북공정 역사왜곡 논란의 중심이기도 한 요서지역 상고문화지역에서 정경희 교수가 한민족의 뿌리랄 만한 단서를 찾아냈다.

1980년대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된 이래 요서지역은 중국문화의 발원지이자 동아시아 상고문화의 발원지로 주목을 받아왔다. 1990년대 중국측은 10여년에 걸쳐 요동지역 특히 백두산 서편 통화(通化)지역을 중심으로 맥족(한민족의 주족)의 옛 제단군을 조사·발굴했다. 처음에는 요하문명론- 장백산문화론에 따라 옛 제단군의 존재를 크게 부각시키다가 1999년 통화 만발발자(萬發撥子)제단 발굴을 마지막으로 돌연 옛 제단 유적들을 은폐하고 관련연구를 모두 폐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에 정 교수는 관련자료와 유물, 두 차례에 걸친 통화지역 현장 조사를 통해 중국이 왜 돌연 태도를 바꿔 백두산 서편 옛 제단군을 은폐할 수 밖에 없었는지 '백두산 문명과 한민족의 형성'(만권당)을 통해 밝혀간다.

저자는 요서 대릉하 우하량 일대 적석 단총에 나타난 ‘3층원단·방대’ 방식은 요동 백두산 서평 통화지역에서 먼저 나타났음을 제시한다. 통화 만발발자 옛 제단의 시기는 우하량 보다 500년 정도 앞서는 B.C. 4000년~B.C.3500년 경이란 추정이다. 이는 ‘3층원단·방대’형태가 요서 우하량에서 자체 발생한 게 아니라 요동 백두산 서편 지역에서 시작돼 전달됐음을 시사한다. 만발발자 유적은 B.C. 4000년~B.C.600년 무렵, 즉 배달국~고구려 시기 한민족의 주족인 맥족계의 선도제천문화가 성립·변천되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꼽힌다. 제천시설 중 1차 제천시설인 ‘3층 원단·방대’의 형태와 여기서 출토된 곰소조상은 요서 우하량에서도 발견된다.

결정적인 건 만발발자 옛 제단의 2차 제천시설인 ‘선돌 2주·적석 방단·제천사’가 요동·요서·한반도의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적석단·나무솟대·제천사·선돌·고인돌류)’계통으로 중원 지역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형태라는 점이다. 이는 중국 측의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의 오류를 넘어 동북아 상고문화의 기원과 계승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배달국으로부터 고구려에 이르는 적석묘 제도를 통해 맥족이 요동에서 요서로 다시 요동으로 일본열도까지 이어지며 맥족은 동북아 중심의 중심종족이 뙜고 선도제천문화 역시 요동 요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사회는 물론 유라시아 사회로 전파됐다고 주장한다.

정 교수의 10여년 연구의 결실을 담은 책은 롯데장학재단이 후원하는 ‘롯데학술총서’의 첫 권으로 나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백두산 문명과 한민족의 형성/정경희 지음/만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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