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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산책] 자고 일어나니 아파트가 뚝!

얼마 전, 지인이 요즘 아들 녀석이 부쩍 살가워졌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말 중간과 끝을 묘하게 빼고 늘려 리드미컬했는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뿌듯함이 배어 있었다.

‘아들은 장가가면 남’이라던데 갑자기 ‘효자연’하는 사연이 궁금했다. 복잡하지 않았다. 노후자금으로 월세라도 받아쓰려고 의정부에 아파트를 사놓은 게 1가구2주택으로 날벼락을 맞게 된 게 발단이었다. 생돈을 뜯길까 봐 골치가 아프던 터, 아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털어놨다. 아들은 서울에 있는 집을 팔든, 어느 쪽이든 팔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의정부 집에 들어가 살려면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쪽을 파는 게 낫겠다고 지인은 말을 받았다. 그러다 슬쩍 양도세를 무느니 증여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란 속말도 흘렸는데, 아들은 엄마 좋을 대로 하라며 무심한 척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은 지 3분이 채 안 돼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좀처럼 먼저 거는 법이 없는 아들은 “엄마, 지금 어디야? 오늘 같이 저녁 먹을까?”라며 다정한 투로 다급하게 물어왔다.

지인은 “목소리 자주 들으니 좋네”라며 뼈 있는 소리부터 하곤 “저녁 7시에 만나서 저녁 먹고 집에 가면 10시가 될 텐데 피곤하게 뭐하러 그러냐”며 뺐다. 아들은 재차 저녁식사를 고집했지만 그는 달래서(?) 나중에 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지인은 증여할지 말지를 아직 결정 못했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 뒤 독립해 사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내 친구가 김포로 이사 가야 한대.” “왜? 직장에서 너무 멀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 집이 생겼다니까. 아버지가 자기에게 아파트를 증여했대. 와, 자고 일어나니까 아파트가 뚝! 부럽다, 부러워.”

그 친구 아버지는 아파트를 파느니 증여세 4000만원을 무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굵직한 부동산 대책으로 세 부담이 커진 다주택자들이 가족에게 집을 물려주는 증여가 급증한 건 어쨌든 아파트를 지키는 게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아파트 가격 폭등을 설명하는 데는 공급 부족이 그중 설득력 있는 논리로 제시된다. 전문가들은 주택 보급률이 110%는 돼야 안정적으로 보는데 서울은 96% 수준이다. 2018년엔 그마저 95%대로 내려앉았는데, 1인가구의 증가 등이 원인이란 분석이다.

이는 주택 정책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5년간 서울에 공급된 주택은 아파트보다 다세대주택이 많았다. 청년층 10명 중 7명은 아파트를 선호하는데 이런 시장의 요구와 맞지 않아 수급불균형이 생긴 것이다. 이 기간에 아파트 청약경쟁률이 2대 1에서 10배 이상 뛴 게 이를 방증한다.

‘국민 첫사랑’ 영화로 인기를 모은 ‘건축학개론’은 사실 집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정릉 순댓국집 아들 승민과 ‘압서방(압구정동·서초동·방배동)파’ 재욱의 대비는 당시 아파트·강남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승민은 잘사는 재욱에게 서연이 마음을 주는 것에 화가 나 순댓국을 파는 엄마에게 불뚝불뚝 성질을 내며, 우리도 강남아파트 같은 데로 이사 가면 안 되냐며 생떼를 부린다. 나중에 재개발구역이 된 뒤에도 승민은 이제 좀 편하게 아파트로 이사 가시라며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엄마는 “너나 돈 벌어서 그런 데 살아”라며 말을 끊는다. 아파트는 우리에게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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