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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을 돕는게 미국과 세계에 이익”
'美최고의 중국통' 폴슨의 中도약기 회고록
세계시장으로 끌어낸 주인공의 경험 생생

사업성패는 인맥, 실익없어도 부탁엔 성실
장쩌민, 시진핑 등 최고지도자와 신뢰 형성
신호와 상징 중시 문화…세심한 배려 필요
“중국 개혁은 美·세계에 유익”…실용주의 눈길
“왜 미국인이 중국의 성공을 응원해야 할까? 왜 굳이 지금 시점에서 중국이 그 많은 문제와 도전을 해결하도록 돕는 일에 도박을 걸어야 할까? 왜 경쟁자를 도와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그렇게 하는 편이 미국의 이익에 훨씬 부합하기 때문이다.”(‘중국과 협상하기’에서)

2000년대 초 골드만 삭스의 최고경영자를 지내고 미국 재무장관(2006~2009년)을 지낸 헨리 M. 폴슨 주니어는 자타공인 ‘미국 최고의 중국통’으로 불린다. 25년간 100여 차례 중국을 왕래하며 중국 경제를 세계무대 위로 끌어내는 데 톡톡이 역할을 한 그가 쓴 회고록 ‘중국과 협상하기’(열린책들)는 중국의 개방·개혁 30년을 관통한다.

미·중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양상이 뚜렷해지는 현 상황에서 중국 경제 도약기의 참여자이자 목격자로서 폴슨의 회고록은 중국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90년대 장쩌민과 주룽지, 21세기초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현재 시진핑까지 중국 최고위급 지도자들과 긴밀히 협조해온 경험적 지식들은 폴슨 만이 들려줄 수 있는 것들이다.

1997년 2월 덩샤오핑 사후 중국의 개혁·개방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강경파들에겐 마르크스주의 폐기를 불편해하는 기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골드막삭스 대표였던 저자는 중국 고위지도자의 최우선 관심사인 개혁과 홍콩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줄 ‘불씨’를 들고 주룽지를 만난다. 홍콩에 적을 둔 신생 기업의 주식을 공개, 중국 통신 산업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통신 사업체의 주식 상장은 다음 단계의 개혁을 위한, 즉 거대 국유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쇼케이스였다. 폴슨은 주룽지와의 회의에서 너무 세부 사안을 들이밀거나 압박하는 인상을 주지 않는 대신 골드막삭스가 해온 주요 사업을 통해 최적임자임을 보여주는 우회전략을 택한다. 그는 무엇보다 진정성과 솔직함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모든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계약을 따내기 위해 전력질주하는 상황에서 그는 그렇게 우선권을 쥐게 된다.

폴슨은 무엇보다 대중국 거래의 특징으로 탄탄한 인맥 구축을 꼽는다. 중국 진출 초기 산둥성 전력사업 취소 등 시행착오를 통해 사람이 법을 대신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사업과 관련있는 사람을 모두 알아두고 특히 고위층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게 결정적. 그렇다고 사업을 그냥 따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협상 테이블에는 앉을 수 있다. 또한 중요한 고객이라면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그의 부탁을 성심성의껏 들어주라는 것. 광동 엔터프라이즈 구조조정 처럼 전혀 사업성이 없어 보였던 일이 나중에는 더 큰 보상으로 돌아왔다.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의 개혁건도 마찬가지.1999년 폴슨은 주룽지로부터 칭화대 개혁에 힘을 보태달라는 부탁을 받고,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사례연구와 실무 중심으로 경제관리학원의 MBA프로그램을 개편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자매결연을 주도하는가하면 세계 유수의 기업가들로 자문위원을 구성, ‘중국의 MIT’로 거듭나는데 기여한다. 이를 통해 폴슨은 또 다른 역량을 보여줄 수 있었고, 후진타오를 비롯, 칭화대에 헌신적으로 알려진 유명인사들과 인맥을 쌓게 된다.

폴슨은 중국에서는 메시지가 늘 직접적인 방식으로만 전달되지 않는다며, 상징과 신호를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폴슨은 이를 늘 염두에 뒀다. 2003년 중국에서 사스가 발병, 국제사회가 중국여행을 꺼려할 때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텅 빈 유나이티드 항공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향한다. 밀린 사업을 해결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사스 이후 중국을 방문한 서방세계 첫 최고 경영자로 중국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은 안전한 나라라는 걸 보여줄 수 있었던 중국 정부로부터 후한 점수를 딴 건 당연하다. 이 방문은 폴슨의 골드만 삭스 재직기간 중 가장 중요한 중국 출장으로 기록된다.

2006년 9월 재무부장관으로 미중 전략경제대화에 참석차 베이징이 아닌 항저우를 방문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 그는 미국의 재무장관이 국가 지도자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인사들과도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고, 중국의 다른 지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 거기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으로 저장성 당 서기였던 시진핑을 선택한 것도 그런 강력한 신호였다.

미중은 전략경제대화 채널을 통해 지속가능한 환경문제에 협력하기로 합의하지만 이후 환율문제 등으로 삐걱거리고 중국이 군사력을 과시하면서 갈등국면으로 들어간다.

폴슨은 대립으로 치닫는 둘의 관계에 대해 어느 한 쪽 편을 들진 않는다. 부분적으로 중국의 선택과 행동이 빚은 결과이며, 부분적으로는 미국이 직면한 경제적 난관을 둘러싼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한다.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개혁을 응원하는 저자는 경쟁자를 돕는 이유를, 그것이 미국의 이익에 훨씬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서로 협력하고 상호보완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원칙에 근거한 세계질서 안으로 중국을 완전히 끌어들어야 한다”는 것. “만약 중국을 배제하거나 무시하거나 약화시키려 한다면 중국 지도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제한되고 중국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예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대로 현실이 될 것”이란 그의 예견은 현재 적중한 것처럼 보인다.

폴슨의 지적은 미중무역갈등, 사드, 북한문제와 코로나 사태 등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우리에게도 참고할 만하다. 특히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체제와 이념을 제쳐두고 공동의 전략적 이해관계에만 집중한 폴슨식 실용주의는 협상테이블에서 유용해보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중국과 협상하기/헨리 M. 폴슨 주니어 지음, 고기탁 옮김/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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