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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은 언제나 통해…계속 보고 싶은 배우 되고 싶어요””
월드투어 ‘오페라의 유령’ 배우 강기헌
스테디셀러 뮤지컬 ‘빨래’ 남자 주인공 역에도
세계적 공연 오디션 도전…빛나는 앙상블 배우로
단 세줄의 대사 수없이 연습…잊지 못할 값진 경험
배우 강기헌은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를 검색하면 유일하게 등장하는 배우다. 오디션을 통해 지난 5월부터 공연에 합류한 그는 경매회사 직원, 군인, 헤어드레서, 경찰 등의 다양한 역할로 무대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

대사는 단 세 줄. “Yes, sir”, “How will I know sir?”. 영어뿐 아니라 불어 대사(But, Monsieur le Vicomte!)도 더해졌다. 한국말로 치면, “하지만, 자작님…” 정도. 짧은 대사들은 24시간 내내 그의 머릿속을 맴돈다. 원어민인 음악감독과 연출이 녹음해준 발음을 듣고 연습을 거듭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연 중인 ‘오페라의 유령’(9월 6일 폐막) 월드투어. 이 공연을 검색하면 유일하게 등장하는 배우가 있다. 주조연도 아닌 앙상블 배우로는 이례적이다. 한국인 배우 강기헌(28)이다.

“좀 이상하더라고요. (웃음) 믿기지 않았어요. 제가 월드투어 팀에 들어간다는 것을 상상해보지 않았어요. 작은 실수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강기헌에게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은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앙상블로 첫발을 디뎌, 대학로 스테디셀러 뮤지컬 ‘빨래’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으며 마침내 ‘자기만의 배역’을 가지고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앙상블에서 주연 배우로 발돋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고심이 적지 않았다. “첫 주연을 맡아 공연을 마친 이후라 고민이 많이 됐어요. 저도 제 역할을 맡아 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한창 들던 때였거든요.” 결정은 신속했고, 단호했다. “이런 큰 공연에서 뛰어난 배우들과 함께 공연하는 기회를 다시 만나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해보기 어려운 경험은 놓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빨래’를 마친 이후 제주도에 머물 때 오디션 소식을 들었다. 철저한 대책을 세울 시간의 여유는 없었다. “오디션 이야기를 듣고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비행기를 탔어요.” 오디션에서 선보일 곡 선정도 미처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준비는 돼있었다. 하루 만에 악보를 찾고, 영어로 노래를 준비했다. 다만 오디션은 그의 예상을 빗나갔다. “극중 유령의 대표 넘버인 ‘밤의 노래(Music of the night)’와 몇 곡을 더 불렀어요. 그런데 한국어 가사로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더라고요. 영어로만 연습했는데 사실 좀 당황했어요. (웃음) 아무래도 저한텐 외국어이다 보니 한국말로 표현하는 걸 보고 싶으셨나봐요.” 준비된 그에게 ‘기회’가 왔다. ‘간절한 마음’도 통했다. 첫 무대는 5월 14일. 그 날짜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강기헌은 ‘오페라의 유령’에서 굉장히 바쁜 출연자 중 한 명이다. 첫 장면에 등장해 2막의 클라이맥스까지 쉴 새 없이 무대를 오간다. 해골을 가지고 들어오는 경매회사 직원부터 군인, 헤어드레서를 거친다. 가면 무도회에선 파인애플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가, 다시 경찰 역할로 나와 대사 석 줄을 읊으며 그만의 무대를 마무리한다.

“속도가 생명이에요. (웃음) 장면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최대한 빨리 왔다 갔다 해야 하죠. 옷도 1~2분 만에 갈아입어야 하고요.”

시작 중인 공연에 합류했던 만큼 연습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보통의 뮤지컬이 두 달 정도의 연습기간을 가지는 반면, 강기헌은 오디션 이후 2주간의 연습을 거쳤다.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어요. 영어로 말하고 노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첫날 무대에 오르니 너무 떨리더라고요.”

혼자뿐인 연습이었지만, 반복학습이 해법이었다. 수십 번의 대사 연습, 노래 연습을 거듭했다. “현지 배우들과 잘 융화되는게 목표였어요. 한 번 실수를 하면 스스로 더 위축되고, 한국인 배우이기 때문에 더 튀어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함께 하는 동안 현지 배우들과 가깝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많은 공부가 되고 있어요.”

지난 3월 서울 공연을 시작한 ‘오페라의 유령’은 ‘K방역의 상징’으로 꼽힌다. 대구로 장소를 옮겨 공연(계명아트센터)을 이어가는 현재에도 코로나19 여파로 우여곡절이 많지만, 모든 배우들이 철저한 관리로 ‘안전한 공연장’을 위해 힘쓰고 있다. 열체크와 손 소독제는 기본이다. “보통 하이파이브 인사를 해왔는데, ‘오페라의 유령’에선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이후 최소한의 접촉도 하지 않으려고 해요.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코로나19 검사도 마쳤고, 사람 많은 곳엔 안 가고 있고요. 이런 시기에 공연을 올리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마음에 담고 있어요.”

노래를 워낙 좋아해 합창단원 활동을 했던 고등학교 시절, ‘지킬 앤 하이드’를 본 뒤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 ‘스위니토드’(2016)에서 앙상블로 시작해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올랐다. 그는 ‘오페라의 유령’은 “너무도 값진 경험이자 인생 공부”라고 말한다.

“지금의 이 경험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오페라의 유령’은 ‘찾아와주는 워킹 홀리데이’라고요. 이번 출연을 계기로 유령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조나단(유령 역)을 보면서 많이 공부하고 있어요. (웃음) 무대 위에서의 진실함은 언제나 통한다고 생각해요. 계속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진실하게 연기하고 노래하면 계속 저의 공연을 보러 와주시겠죠?”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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