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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과학칼럼] ‘원조 전기’ 번개를 말하다

작은 점 하나에 온 우주의 만물이 다 압축돼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대압축의 상태를 참지 못해 한순간 대폭발로 이어지자 온갖 물질이 앞다퉈 쏟아져 나오며 서로 부딪히고 엉켰을 텐데, 그런 아비규환이 없었으리라. 이것을 ‘카오스’라 했겠다 싶다. 그때 물질 사이 어마어마한 마찰이 생겼을 테고, 이로 인해 마찰전기가 엄청나게 발생했을 것이며, 수많은 크고 작은 번개가 여기저기서 일어났으리라. 이것이 소위 ‘원조’ 전기, 바로 번개다. 필리핀 화산폭발 때도 많은 번개가 생겼는데 이 역시 화산재 등 여러 물질끼리의 마찰 탓이다. 번개의 발생은 한여름 폭염 속 갑자기 피어오른 흰 뭉게구름과 검은 뭉게구름 사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번개에는 보통 1만V에서 1억V 정도의 매우 높은 전압이 생긴다. 각 가정의 전압이 220V인 것에 비하면, 이 정도의 전압은 어마어마하게 큰 값이다. 구름 속에는 전기를 만드는 어떠한 기계적 장치도 없는데 말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번개가 기계장치 없이 만들 수 있는 전기! 바로 꿈의 미래 기술이 아니겠는가?

또한 번개는 한 번에 약 33만㎿h의 엄청난 에너지를 만드는데, 이는 100W 백열전구 4.3만개를 8시간 연속, 혹은 10W LED전구 14억개를 24시간 연속으로 쓸 수 있는 양이니 실로 방대한 양이다. 지구 도처에 연간 무려 약 14억번의 번개가 내리친다고 한다. 만약 이들 번개를 전부 모아 그중 0.01% 정도만 활용해도 전 세계에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완전히 충당할 텐데 말이다. 2018년 한 해 우리나라의 총발전량이 57만GWh라고 하니 전국 번개를 모두 포집할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신재생에너지이다 싶다. 그야말로 꿈 같은 희망사항이다.

정말 화끈한 게 번개다. 그 온도가 3만도 정도로, 태양 표면 온도보다도 무려 5배가 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번개의 속도는 광속의 3분의 1 수준으로 매우 빨라, 시계가 ‘똑딱’하는 1초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돈다. 인간이 만든 장치 중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우주선도 우주 내에서 고작 초속 40㎞ 수준이니, 번개와 비교가 안 된다. 작은 장치조차 하나 없는 번개가 어떻게 그 같은 전기를 만들어내는지, 그 많은 에너지를 어떻게 머금는지, 또 그토록 높은 온도로 발열하는지, 어떻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 그저 대자연의 섭리에 저절로 머리가 숙어진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번개에 대해 궁금해할 만한 부분이 하나 있다. 번개는 왜 빛처럼 직선으로 곧장 내려꽂히지 않고 꼬불꼬불하며 내려올까? 그것은 바로 내려오는 최적의 길이 꼬불꼬불 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키 선수가 높은 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내려올 때 좌우로 찍는 것은 바로 하강 속도를 적절히 줄이기 위함이다. 또 높은 산에서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한 길을 따라 요리조리 움직이며 내려오는 것도 같은 이치다.

공기가 눈에 보이기에는 다 똑같아 보여도 그 안에는 무수한 방해 요소가 많다. 번개도 이를 피하고자 절연성이 낮거나 습기가 많은, 즉 가장 빠르고 완벽한 길을 찾아 움직였고,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 눈에는 꼬불꼬불 모양으로 보였던 것이다.

번개가 내리치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을 두 쪽으로 가르는 번개의 그 기개와 위용이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그저 제우스신만이 던질 수 있는 창이며, 지난날의 삶을 잠시라도 되돌아보며 몸을 왜 움츠려야 하는지 알 것만 같다.

최규하 한국전기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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