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영수증, 편지에 담긴 기막힌 사연

흔히 컬렉터라면 오래된 유물이나 값비싼 예술품을 수집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진 한 장에서부터 영수증, 일기, 편지, 사직서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자료를 모아 그 속에서 역사의 숨은 이야기, 퍼즐을 맞추는 재미에 푹 빠진 컬렉터가 있다.

박건호씨가 그 주인공. 대학생때 선사시대 유물 발굴지에서 도편을 찾아낸 설렘을 시작으로 30여년간 발품을 팔아 방대한 수집품을 모았다. 그의 저서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휴머니스트)는 그 중 14가지 수집품을 소개해 놓은 것으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독립문 건립 성금을 내고 받은 영수증. 그런데 발행날짜가 건양 2년 1897년 2월23일이다. 영수증의 주인공은 밀양 도사를 역임했던 앙호응, 발행인은 독립협회 회계장 안경수다. 국내에 실물이 서너장 정도 밖에 없다는 그 영수증이다. 독립은 청일전쟁으로 중국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조선이 속국상태에서 독립,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독립문 건립을 추진한 것이다. 오늘날엔 일제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애초에 없던 의미가 부여됐지만 또 다른 ‘독립’의 의미가 있다. 저자가 수집한 사진에는 어느 가족이 독립문 앞에서 찍은 모습이 담겨 있는데, 독립문에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당시 독립은 대한민국정부수립을 의미했다. 미군정 3년의 지배에서 벗어나 홀로 섰다는 의미다.

1952년 7월,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찍은 육상대회 우승 기념 사진도 있다. 한국전쟁 중에 어떻게 육상대회가 열린 걸까?

저자는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찾기위해 돋보기로 샅샅이 살피는데, 우승 문구에서 강원도라는 조각을, 학생들이 입은 운동복에 새겨진 교표모양으로 ‘삼척공고’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한국전쟁 중 삼척 일대 상황을 조사한 결과, 삼척은 북한군 치하에 있던 기간이 길지 않았다. 1·4 후퇴 이후 북한군이 삼척까지 남하하지 못했고, 1951년 7월 휴전회담 이후 전투는 오늘날 휴전선 근처에서 고지전 형태로만 일어났기때문에 예전의 일상을 회복해가던 시기임을 알아낸다.

저자는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는 반쪽짜리 역사”라고 말한다. 수집품에는 해방 직후 콜레라 창궐로 학생들에게 발급된 귀향 명령 증명서, 신탁통치에 반대하며 피로 쓴 사직서, 한국전쟁 중 거제포로수용소에 갇힌 북한군 포로가 경북 예천에 사는 부모님에게 보낸 이상한 편지, 이승만 대통령 생일 기념행사를 의아해하는 중학생 일기 등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역사의 속살을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박건호 지음/휴머니스트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