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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시험 길목 괴산, 압권의 절경으로 ‘관광’ 개념 바꿨다 [함영훈의 멋·맛·쉼]
장원급제자 王얼굴 보는 관광, 낙방생도 관광했다
갈론구곡, 또하나의 화양연화, 자연인의 수간모옥
큰 잠수함 산에 붙고, 그아래 속보이는 청정 옥수
선녀가 내려왔다는 강선대,선계인가 인간계인가
한국관광공사-괴산군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육성
수옥폭포 눈-귀 호강, 과객들 조령으로 날아들어
빛나는 계곡 화양엔 절경과 송시열 역사유적 가득
모험가는 산막이 능선길, 괴산엔 소금강,첨성대도

[헤럴드경제=함영훈 여행선임기자] 압권(壓卷)이라 관광(觀光)이다. 압권은 과거시험 최우수작이 나머지 응시자의 숱한 답안지를 누르는 형국이고, 관광은 압권을 써낸 장원급제자가 주상의 빛 나는 용안을 쳐다보는 것을 말한다.

그 관광이 오늘날 여행의 의미로 바뀐 것은 순전히 충북 괴산(槐山) 때문이다.

호남의 과객들은 전주-대전-세종-청주를 거쳐, 영남의 응시생들은 달구벌-안동-영주-문경을 통해, 괴산의 수옥폭포가 눈호강 귀호강 해주는 조령으로 모인다.

한양으로 가는 중부내륙의 3개 관문 중에서 괴산 조령(鳥嶺)으로 모이는 이유는 낙엽이나 무른 밥이 되지 않고 새(鳥) 처럼 비상(飛上)할 것 같은 믿음 때문이다.

▶괴산이 바꾼 ‘관광’의 뜻= “관광하고 오겠습니다”라는 당찬 각오로 떠나, 최다 20만명에 이르는 응시생들 모두가 월계관을 꿈꾼다. 하지만 입격하는 자는 20~30명. 과거시험장을 오가는 깔딱고개, 파란만장 중부내륙 지질의 중심, 괴산에서 과객들은 오래 머무를 수 밖에 없는데, 이들의 99.9%는 낙방하면서 화양, 선유, 쌍곡, 갈론, 산막이, 수옥의 절경을 본 것 만으로 만족한 채, 낙향한다. 그리고는 “관광하고 왔습니다”라고 귀향 보고를 한 뒤 다시 권토중래에 돌입한 것이다.

낙방했지만 용기를 잃지 않았던 선비들의 관광은 바로 괴산 등지 여행이었다. ‘관광 못하면, 관광이라도 하는 게 어디야.’ 이런 아재 개그로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힐링 후 열공도 했으리라.

괴산의 청정생태는 달천(괴강)이 매개한다. 조선 중기의 시인 김득신은 ‘괴강에 머문지 4년이 넘는데, 철에 따라 경물로 시를 지으니 시 주머니가 넉넉하네’라는 찬가를 남겼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일깨우고, 이 시국 최고 가치인 ‘자연인’이 되게 한다.

청운의 꿈을 꾸던 그 시절이 그리웠을까. 출세한 양반들의 말년 귀촌지도 고향이 아니면, 또 하나의 ‘관광’을 일깨운 괴산, 영주에 많았다. 조선 후기 망국적 노론 독재세력 중에서 그나마 북벌과 위민 제도개혁을 꾀하며 존경할 만한 인물로 꼽히는 우암 송시열,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조부 홍승목, 독서왕으로 불리는 17세기 학자 김득신 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6세기 대윤-소윤 싸움의 희생양인 영의정 노수신은 괴산 유배왔다가 그만, 힐링하고 말았다.

과객들이 조령을 넘기전 감탄하던 수옥폭포

▶자연인인데 산촌사람 아닌 양반이라고?= 산촌 화정민, 농민과 보부상이 청정 오지의 건강 토산품을 외부와 거래하기 위해 넘고 또 넘으며 기막힌 절경에 고단함을 잊던 괴산 산막이길에다 ‘충청도양반길’을 이어붙이는 것이 결코 이상하지 않다. 이제 곧 내로라 하는 괴산의 명소들이 충청도양반길이라는 이름으로 85㎞ 길이로 연결된다.

산막이옛길은 충청도 양반길로 이어지는데 그 중심에 연하협 구름다리가 있다.

남한강을 빚어내는 달천(괴강)과 괴강과 화양천이 휘감아도는 화양, 선유, 쌍곡, 소금강, 수옥에다, 왠지 로마군단이 쉬었다 갔을 것 같은 ‘갈론’ 구곡을 가진 오지, 괴산은 ‘물 반, 산 반’ 그야말로 거리를 두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생태관광지의 전형이다.

계곡 어디든 울울창창 수목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 가는 곳 마다 사연 담은 기암괴석이 인생샷을 빚어내는, 신이 놀던(仙遊) 자리이다.

왠지 갈리아군단이 놀았을 것 같은 곳, 노론-소론-당론-이론 다 필요없이 갈 길 멋대로 갈 사람들의 은둔지일 것 같은 곳, ‘갈론 구곡’은 요즘 괴산에서 새로 주목받는 수간모옥이다. 연하협구름다리, 선유대 초입까지 이어지는 충청도양반길의 중심지이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는 이곳을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했다.

갈천 성을 가진 자가 온 곳이라는 갈론의 유래 설명이 박약해도, 굳이 한자로 갈은(葛隱:칡넝쿨이 많아 숨기 좋다)이라 쓴 것은 좀 작위적이다.

갈론구곡

▶강소형 잠재관광지, 거리두기 수간모옥 갈론구곡= 그냥 갈론이라 동,서양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것 같은 이 곳은 괴산수력발전소를 지나 12㎞정도 들어가면 나오는 작은 교정에서 출발한다. 산촌체험관으로 바뀐 갈론분교의 폐교지이다. 과거 차도, 자전거도 접근하지 못했으며, 이조참판 홍승목 등이 은둔하고, 한국전쟁 패잔병들이 북으로 못가고 은거하던 오지인데도 주민들의 경제 수준이 높다. 인삼, 버섯, 산야초 채취로 고소득을 올려 한국에 가스시스템과 가스렌지 도입 초기, 마을 전체가 공동구입했고, 지금도 주민중 상당수가 도시에 집 한 채 씩은 갖고있다고 한다.

산에 큰 잠수함이 박혀있는 듯한 모습을 한 거대바위 ‘갈론(갈은)동문’이 박혀있고, 그 아래 계곡은 물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옥수(玉水)에 잠긴 조약돌이 땅위의 것처럼 생생하다.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 장암석실, 갈천정, 옥류벽, 금병, 구암, 고송유수재, 칠학동천, 선국암으로 가는 2~3㎞ 구간 내내, 물길은 고요하고 물속 풍경이 또렷하다. 한국 최고의 맑은 물이 아닐까 싶다. 옥녀봉 하산길 옆에 있는 선국암은 신선이 바둑을 두던 자리라는 바둑판바위 네 귀퉁이에 ‘四老同庚(사노동경)’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옥녀계곡은 선유대로 이어진다.

윤승환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장은 이곳을 거리두기 청정 여행지 첫 손에 꼽았다. 그는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으로 경치가 좋고 물놀이하기도 좋아 여유롭고 안전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소형 잠재관광지는 경치는 좋은데, 유동인구가 적은 곳을 관광공사와 지자체가 함께 발굴 육성하는 정책사업이다.

화양구곡 근처에 있는 만덕묘 정문 양추문. 이 전각들은 청나라의 중국대륙 장악기 조-명 우호친선을 기리고 있다. 망한 왕조와의 의리를 상징하는 이 유적은 외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반면교사로도 의미가 있다.

▶국가명승 화양구곡, 자연과 역사의 긴 호흡= 괴산에 산천경개 좋은 곳이 숱하지만 그 중에서 화양구곡은 국가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맑은 산수, 기암괴석에 송시열의 흔적 묻어있다.

화양구곡의 시작점인 경천벽에서부터 마지막 파천까지 걸어가는 계곡 산책길은 어느 문장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문장가의 글처럼, 허투루 넘어갈 경치가 없을 정도이다.

화양3곡 읍궁암. 효종이 승하했다는 소식에 송시열이 엎드려 울었다는 바위이다. 집권정치세력에 의한 개혁군주 효종의 독살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늘을 들어올린다는 경천벽엔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져 있고, 운영담엔 아름다운 구름이 물속에 드리운 곳이라는 뜻이다. 효종의 사망소식에 송시열이 매일 통곡했다는 읍궁암은 반석위 작은 굴곡이 원인되어 급류가 소용돌이 치는 바람에 구멍이 뚫려있어 이채롭다,

후진을 양성했던 암서재 앞 금사담은 역사와 생태가 한 앵글에 담기는 인생샷 지점이다. 제5곡 첨성대는 천변 작은 산 7부능선에 돌들이 겹친 것인데, 별을 관측했다고 하나 위치상 부적절하고, 첨석대가 회자되면서 왜곡된 게 아닌가 싶다. 향토사학자들도 “사람이 바위 타고 오르기도 첩첩 괴석 위에서 별 볼 일 있었을까”라며 갸우뚱한다.

화양4곡 금사담

‘화려한 빛’ 같은 화양 절경은 주름 많은 노승을 닮은 능운대, 와룡암과 학소대, 파천(파곶)까지 이어진다. 조물주는 파천의 넓은 반석 사이사이에 물이 흐르도록 해 여행자가 시원하게 쉬도록 했다. 계곡 산책로는 3.1㎞. 화양구곡은 선유동 계곡과 7㎞거리에 있다. 화양서원은 충청,전라,경상지역 송시열 추종선비들이 만든 서원들의 중심지였다.

화양8곡 학소대

▶산막이를 탐험하는 세가지 방법= 산막이를 막은 산은 국사봉, 등잔봉, 천장봉, 삼성봉인데, S라인 휘돌아가는 달천 중 한반도지형 사진을 가장 잘찍을만한 곳에 한반도전망대를 만들었다. 건너편으로 군자산과 괴산호를 바라보며 걷는다. 군자산은 원래 군대산이었는데, 백제가 신라군과 붙어 혈투 끝에 이겼지만, 결사항전하다 괴산군의 ‘괴(槐)’자에 해당하는 느티나무에 몸을 부딪쳐 자결한 신라장군 이야기가 더 진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능선 고도, 백성들이 흔히 다녔던 산막이 옛길, 뱃길 세가지 모두 운치가 있다. 옛길 산책도 좋지만, 난코스이지만 조망이 좋은 2~3시간짜리 등산과 능선타기가 더 오래남을 듯 하다. 등잔봉으로 올랐다가 천장봉에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리지를 지나 ‘푸르름을 두르고 있는 정자’인 환벽정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초, 구절초 말고도, ‘산양의 수염’이라 불리는 눈개승마, ‘영혼의 꽃’ 홀아비꽃대, ‘꽃계의 무지개’라는 별칭의 노랑무늬붓꽃 등 특이한 야생화가 산막이 옛길 주변을 장식한다.

비오는날 산막이옛길을 걷는 것도 운치있다.

수목사이 오솔길엔 소나무 출렁다리, 노루샘, 호랑이굴, 앉은뱅이 약수, 얼음 바람골, 호수전망대, 옷벗은 미녀 참나무, 다래숲동굴 등 쉴틈없이 볼거리, 재미있는 체험거리가 많다. 천혜의 생태여행지가 그러하듯, 굴 앞의 호랑이 조형물이 제법 사람을 놀래킨다. 뱃길 관리자가 탐방객과 승강이를 벌이는 모습은 괴산 답사 중 옥의 티였다.

선유구곡

▶괴강국민여가캠핑장에도 있을 건 다 있다= 괴산읍 쌍곡구곡과 괴산댐에서 내려오는 강변에 마련한 괴강국민여가캠핑장은 각종 편의 시설과 자연이 어우러져 바베큐 파티와 캠핑, 하이킹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캠핑장은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오토캠핑사이트 47개면과 캐라반사이트 5개면, 대형텐트사이트 5개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아이들의 힐링을 위한 아기자기한 놀이쉼터(여름 성수기 시즌에는 물놀이장 운영)와 가족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각종 체육시설, 달천변 오천자전거길이 함께 한다.

괴산 괴강국민여가캠핑장은 놀이터, 하이킹길, 체육시설, 물놀이장 등 갖출 것은 다 갖추었으면서도 한적하다.

‘괴강(달천)에 머문지 4년이 넘는데, 철에 따라 경물로 시를 지으니 시 주머니가 넉넉하네. 명성을 다투고 이익을 탐함은 내 일이 아니니, 괴강에 돌아가 모래밭에 앉아 낚시질 하리.’(김득신)

무위자연(無爲自然),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괴산이 일신우일신 세련돼 지는 모습은 자연과 사람이 교감할 지대를 넓히기 위한 것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는 좋은 사람이 나고, 자연 닮은 사람들이 찾게 마련이다. 자연인이 될수록 좋은 이 시국, 괴산에 ‘압권’이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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