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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태우 200만호·이명박 그린벨트…집값 평정했던 공급의 추억… 문 정부는?
노태우 정부 때 1기 신도시 분당, 수요 분산 성공…강남 집값 10년 묶어놔
강남·서초구에 ‘로또 아파트’…MB 보금자리주택 앞세워 집값 마이너스 3%
세계는 지금 ’뉴어버니즘’…도심서 창의적 주택공급 대책 마련해야 집값에 효력
서울 강남3구 재건축, 용적률 100% 올리면 29개 단지서 약 1만가구 순증효과
층고 ‘35층 룰’ 걸림돌…주거·업무·상업 복합개발 막는 칸막이 규제도 걷어야
도시관리 정책의 기조, 토지이용 효율성 높이는 스마트 고밀개발로 전환해야

[헤럴드경제=문호진 기자]“한국 역사에서 서울 강남 집값을 12∼13년간 꼼짝 못 하게 잡아놨던 적이 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200만호 공급 정책을 펴던 때였다. 그 시절 만든 가장 대표적인 신도시가 분당과 일산인데, 분당은 서울 강남 집값을 10년 이상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었다”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경총 명예회장)이 작금의 부동산대란 해법과 관련해 언론 인터뷰에서 들려준 말이다. 그의 언급은 집값을 잡는 공급의 힘을 웅변하고, 시장원리의 작동을 일깨운 것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부동산정책 특별 지시에서 “발굴을 해서라도 추가 공급 물량을 확보하라”고 강조한 국면이라 더욱 주목도가 높다.

주택정책은 수요와 공급, 두 기능이 작동해야 하는 데, 문재인 정부는 수요 옥죄기(고강도 세제·대출규제 등) 일변도로 치달았고 결국 “강남 투기 잡겠다더니 애먼 서민만 잡는다”는 원성에 직면하고서야 밀쳐뒀던 공급쪽 카드를 꺼내들 참이다.

공급에 유능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터부시했던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을 도심 주택공급의 젖줄로 활용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한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쓴소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지금 다른 세계 도시 어디를 가봐도 서울처럼 쾌적하고 용적률이 낮은 도시가 없다”며 “삶이 좀 불편할 정도로 용적률을 올려서 20~30대가 살 수 있게 공급을 늘려줘야 한다”고 일갈했다.

‘발굴해서라도 공급’에 부합하려면 용적률 상향과 함께 층고를 35층으로 제한하는 ‘35층 룰’과 주거·업무·상업 복합개발을 막는 칸막이 규제를 혁파하는 등 도시관리 정책의 기조를 스마트 고밀 개발로 전환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스마트 고밀개발은 공급을 늘릴 뿐만 아니라 토지효율을 높여 집값을 낮추는 효험도 발휘한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자리와 생활편익 인프라가 갖춰진 도심 선호 현상이 강해지는 ‘뉴 어버니즘(new urbanism·신도심주의)’은 세계 주요 도시 공통의 현상”이라며 “도심에서 창의적인 주택공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보금자리주택 지구에 들어선 아파트 전경.

▶유동성 과잉도 잡는 공급의 힘!…노태우 정부 200만호, 10년 집값 안정 토대

작금의 집값불안이 10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 영향이 크듯 과잉 유동성은 언제나 집값을 달아오르게 하는 불쏘시개다. 1970년대 말 중동 특수, 80년대 말 3저호황때도 그랬다. 3저 호황기때 집권한 노태우 정부 초기 전국의 주택 가격 상승률이 43.3%에 달했다.

노태우정부는 주택 200만호 공급 정책으로 집값의 불길을 잡았다. 분당 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만 총 30만호를 쏟아부었다. 이는 당시 전체 주택 물량의 20%에 육박할 만큼 어마어마했다.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의 개막이었다. 특히 분당은 강남의 대체 주거지로 부상했다. 입지가 뛰어난 곳에 양질의 아파트를 공급한 결과 시장의 선택을 받으며 구도심 중심의 가격 급등을 성공적으로 잡아냈다. 200만호 공세 이후 집값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높은 개발도상국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집값이 하락세를 보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직전 노무현 정부 때 급등(서울 집값 56% 상승)한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수십년 이상 금기시돼온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수도권 100만가구(30만가구는 그린벨트)를 포함해 총 150만가구를 공급한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특히 수도권 보금자리 주택은 당첨만 되면 상당한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는 ‘로또 아파트’였다. 서울 강남과 서초, 고양 원흥, 하남 미사 등 서울 또는 서울 인근 알짜 지역에 공급된 보금자리 아파트는 ‘청약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명박 정부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합당한 가격을 책정해 공급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로또 시비’를 정면 돌파했다.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실행에 옮긴 것도 이즈음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부동산 경기 급랭의 여파도 있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집값은 마이너스 3%(KB국민은행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 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하락세를 보였다. 지금 여권에서 그린벨트를 동원한 주택 공급 카드를 만지작 거린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린벨트는 미래 세대 몫”이라는 입장이어서 실행여부는 회의적이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리는 강동구 둔촌 주공 아파트 전경. 재건축을 통해 1만2000가구의 미니 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이다. [헤럴드경제DB]

▶그린벨트도, 택지개발도 어렵다면 재건축· 재개발이 도심 주택공급 ‘젖줄’

서울시의회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은 인구가 줄어드는 데 가구는 늘어나고 있다. 가구는 2015년 378만여가구에서 지난 2018년 384만여가구로 약 6만가구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인구는 990만명에서 967만명으로 줄었다. 보고서는 서울의 가구 분화속도, 주거형태별 거주동향, 신축 대비 멸실 주택 수 등을 고려해 시가 한 해 준공해야 하는 주택 수를 12만1000가구로 도출했다. 다세대 및 다가구 등을 합친 물량이다. 반면 공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8년 까지 최근 3년간 서울의 연평균 신규주택 준공물량은 8만3000가구다. 결국 해마다 3만8000가구의 공급 부족이 생긴 셈이다. 그러다보니 서울 자가점유율은 42.7%에 머물러 10가구중 6가구가 내 집마련에 목말라 있다.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며 서울 과밀을 불온시하는 문재인 정부는 서울 자투리 땅과 외곽(3기 신도시 17만가구 등), 용산 정비창(8000가구) 등 유휴부지와 공공주도 재개발을 통해 수도권 수요에 대응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서울 수요는 폭발하는 데 공급은 찔끔이고 한사코 서울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

서울에서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하려면 그린벨트를 풀거나 대단위 택지개발지구를 조성해야 한다. 그린벨트는 서울시가 막아서고, 택지지구는 2000년 대 중후반 위례와 마곡지구를 끝으로 씨가 마른 상황이다. 마지막 남은 대안은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 정비사업 뿐이다. 그런데 재건축을 터부시해온 문재인 정부와 도시재생을 우선해온 박원순 서울시장의 합작으로 당장 내년 정비사업 입주 예정 물량이 급감한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서울 정비사업 입주 물량은 1만7655가구로 올해 3만6596가구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2018년 이후 꾸준히 3만가구를 유지하던 정비사업 입주 물량이 반토막 나는 것이다. 정비사업 물량은 서울 전체 입주물량의 70~80%를 차지한다.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지난 2012년부터 뉴타운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정비사업구역 해제를 추진하면서 이로 인해 착공하지 못한 아파트가 약 25만가구에 이른다는 분석(서울시의회 ‘정비사업 출구전략의 한계 및 개선방안 연구’ )도 있다. 25만가구는 한 해 서울에서 4만가구의 아파트가 공급되고 있다고 가정할 때 6년 이상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다.

▶재건축 용적률 상향, 강남권 공급 촉진하고 분양가 낮추는 일석이조 효과

재건축· 재개발은 낡은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과 함께 주택 수를 늘리는 효과가 크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는 1970~80년대에 지은 낡은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특히 재건축은 강남의 주요 주택 공급원이다. 주택 공급 효과를 높이려면 용적률이 관건이다. 용적률 규제완화는 건립 가구 수를 늘리고 재건축 사업을 촉진해 주택 공급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자 2009년 재건축 용적률 법적 상한을 250%에서 300%로 올렸다. 용적률은 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 연면적 비율로, 땅에 지을 수 있는 건축 규모 한도다. 200%이면 1000㎡ 땅에 2000㎡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용적률이 250%에서 300%로 올라가면 1000㎡ 땅에 짓는 집이 100㎡ 25가구(2500㎡)에서 30가구(3000㎡)로 늘어나는 식이다. 조합이 일반에 팔 수 있는 일반분양물량이 늘어나 사업성도 좋아진다.

현재 1만여가구가 사는 강남구 압구정동 재건축 용적률을 현재 계획인 300%로 하면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 84㎡ 기준으로 1만6000가구 정도를 지을 수 있다. 용적률을 400%로 높이면 5000가구가량 더 늘어난다. 서울시에 따르면 4월 기준으로 강남3구에서 재건축 규모가 파악되는 29개 단지에서 기존 1만8000여가구를 헐고 2만8000여가구를 지을 예정이다. 용적률을 100%포인트 올리면 1만가구를 더 늘릴 수 있다. 재건축 대세가 5층짜리 저층 단지에서 중고층 단지로 넘어가면서 주택 수 증가를 위한 용적률 완화는 더 필요하다. 중고층 단지는 기존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으로 늘릴 수 있는 가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재건축 용적률 완화는 분양가를 대폭 낮출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다음 달부터 민간택지에서도 시행되는 분양가 상한제는 감정평가한 땅값과 정부가 정한 건축비 이내에서 분양가를 정한다. 강남에서 용적률이 100% 올라가면 분양가가 3.3㎡당 800만원가량 내려갈수 있다고 건설업계는 추산한다. 전용 84㎡ 분양가를 3억원가량 낮출 수 있는 셈이다.

정부가 재건축을 규제하는 이유는 재건축 규제를 완화할 경우 투기 수요가 증가해 재건축 대상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고 그 결과 전반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건축 토지소유자들의 과도한 개발이익은 개발부담금으로 환수하도록 이미 제도화돼 있다. 조합원 명의변경 제한에 이어 지난 6·17대책에서 2년 거주 조합원 분양 자격까지 도입했다.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재건축 주택에 거주하려는 실수요 외에 개발이익이나 시세차익을 노린 단타성 투기 수요가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아파트 층고를 35층 이하로 제한한 ‘35층룰’도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이 많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당시 49층이던 층수 규제를 35층으로 박원순 시장이 낮추면서 서울 도심주택 공급 물량이 20~30% 더 줄었다는 분석이다.

이혁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용적률 상향 등 고밀화를 허용하면 주택 공급을 확대해 집값을 낮추고 임대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성장·고령화 시대에도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가 신도시 보다 강북 개발이 더 효율적…주거·상업 복합개발 막는 칸막이도 걷어야

인구 감소와 개발 수축기에는 주택이 코어(핵심) 중심으로 재배치된다. 정부가 3기 신도시의 공급물량을 늘리거나 광명·시흥 등지를 대상으로 사실상 4기 신도시를 추가 건설하려한다면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발등의 불’은 도심과 강남 등에서 치솟는 수요이기 때문이다. 도시 안쪽에 투입해야 할 재원을 도시 밖에다 쏟아붓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런 재원이 있다면 차라리 강북에 쏟는 것이 현실적인 대책”이라며 “강남에 상응하는 도심 코어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강남 쏠림도 해소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주거·업무·상업 복합개발을 막는 용도지역 칸막이를 허무는 등 공간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도 필요하다. 전통적인 도시계획은 주거·업무·공장 지역을 분리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복합화가 대세다. 일본은 도시재생특구를 운영해 용적률을 최대 870%까지 허용한다. 영국은 특정용도지역에서도 주거· 업무·상업시설이 혼재된 복합개발을 장려한다. 이재국 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공실이 발생하는 오피스빌딩을 주거용도로 활용하도록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m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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