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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뒤 후배경찰에 할 말은? “이제는 국민 인정받나요?”
33년 경찰인생 쏟아부은 ‘수사권 조정’ 66년 숙원 국회 통과…“후임자에 경찰개혁 짐 남겨, 미안하다”
다음달 임기를 마치는 민갑룡 경찰청장은 역대 가장 개혁적 성과를 거둔 청장으로 꼽힌다. 그러나 민 청장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후배들에 많은 짐을 남기고 떠나는 것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퇴임 후 “새로운 생각이 돋아날 때까지, 비워버리는 새로운 삶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상섭 기자

6월 하순의 어느 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 내 경찰청장 집무실. 1시간이 넘게 이어진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만약 드라마처럼 무전기를 통해 20년 후 미래의 경찰과 연결된다면 뭘 묻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2016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tvN 드라마 ‘시그널’의 한 장면을 민갑룡 경찰청장과 함께 떠올리면서였다.

‘시그널’에서 배우 조진웅이 맡았던 이재한 형사는 미래의 사람들과 무전기로 교신하며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죠?”라고 물었다. 이 대사는 공정과 정의에 목말랐던 당시 국민에게 큰 울림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기 2년간의 소회를 막힘없이 풀어놓던 민 청장은 잠시 고민하다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이제는 국민께 사랑을 받고 있느냐. 이제는 국민께 인정을 받고 있느냐. 그렇게 묻고 싶어요.” 아쉬운 점, 기억에 남는 일 등 그가 1시간 동안 풀어놨던 이야기들이 모두 이 말에 담긴 느낌이었다.

“경찰이 국민의 인정에 목말라 있다고나 할까요. 역사의 질곡 속에서 경찰이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자괴감, 열패감이 조직 내에 팽배했죠. 경찰은 어느 조직보다 빨리 변화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 같은데, 떠나게 됐네요. 20년 후 경찰 후배들에게 “이제는 인정받니? 이제는 자신 있니?’ 이렇게 묻고 싶어요.”

다음달 23일 퇴임하는 민 청장을 최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경찰사(史) 최대 격변기에 15만 직원을 이끈 경찰 수장은 한 달 후면 33년간의 경찰 생활을 마무리한다.

▶권(權): 검경 수사권 조정안 66년 만에 통과…”후임자에 짐 남겨 미안”=이상주의자, 일중독자, 무섭도록 꼼꼼한 사람…. 민 청장에 대한 경찰 내부의 공통된 평가다. 민 청장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이 같은 평가는 대체로 일치한다. 매일 아침 플랭크(팔꿈치로 엎드려 하는 운동) 자세로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대부분 사람이 새벽잠에 취해 있을 오전 5시에 국장급 직원에게 카카오톡을 보내 직원들을 당황하게 하는 민 청장의 ‘습관’도 경찰 내부에서 유명하다. 새벽 카카오톡 알림 소리에 잠이 먼저 깬 한 경찰관의 부인이 ‘중요한 내용이면 남편을 깨우고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면 깨우지 않는다’고 한 이야기는 이미 직원들 사이에서 전설이 됐다.

그것이 다 “국민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을까. 그렇게 쉴 새 없이 달려온 민 청장의 2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소회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 달라’고 묻자 민 청장은 “떠나는 마음은 가벼운데, 남겨진 짐들이 많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까마득하게 느껴져서 2년이 빨리 지나간 것 같지는 않다”며 “굉장히 오래 있었다는 느낌이다. 일들이 많이 있어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많은 일이 있었다. ‘고유정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 검거, ‘버닝썬 게이트’,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모두 민 청장 재임 기간 동안 있었던 일이다.

특히 66년간 경찰의 오랜 숙원이었던 ‘검경수사권 조정안’도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했다. 주요 ‘경찰개혁 법안’도 민 청장 재직 중 틀을 갖춰 국회에 발의됐다. 고문과 친일의 경찰 이미지는 경찰청 본관에 설치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경무국장(경찰청장)이었던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의 흉상이 설치되면서 ‘항일 경찰’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특히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민 청장에게는 ‘평생을 바친 도전’과도 같았다. 그는 경정이었던 2005년 경찰청 수사권조정팀(전문연구관)에서 일한 것을 시작으로, 경찰청 수사권조정팀장·기획조정담당관·기획조정관,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장 등 33년 경찰 인생의 대부분을 오롯이 ‘수사권 조정’에 쏟아부었다.

검경수사권 조정안의 국회 통과가 검찰 개혁의 한 방편이라면 자치경찰제 도입, 정보경찰 개혁 등은 경찰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경찰 개혁의 핵심이었던 이들 방안은 그의 임기 중 실현되지 못했다. 지난 20대 국회 때 법안이 발의됐지만 결국 폐기됐다.

민 청장은 “검경수사권 조정안의 경우 부처 간 합의문과 국회 입법까지 굉장히 거친 과정이 있었다”며 “경찰 개혁 과제도 입법 과정을 거쳐야 될텐데, 그런 부담을 남겨놓기 싫었다. 여러 사정 때문에 결국 후임자에게 남기고 가게 된다. 미안하다”고 했다.

▶과(過): 과거 경찰 과오에 사과, 또 사과…“최루탄 쏟아지던 거리의 외침, 영향”=민 청장은 전남 영암에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파하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는 생활이 반복됐다. 공부를 잘해 당시 수재들만 간다는 경찰대에 입학했다. 학비가 없고 취업이 보장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대 84학번(4기)이었던 민 청장은 그 뜨거웠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경찰이 되기 전을 떠올리면 온 거리가 시위대와 최루탄으로 뒤덮였죠. 눈물을 흘리면서 거리를 걸어야 했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시민들의 외침은 나의 성장기와 청년기에 생생하게 (마음 속에)들어왔어요.”

민 청장은 “경찰대 교과서에서 국민께 충성을 해야 된다는 교육을 받았는데 정작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교과서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며 “경찰에 대한 비난은 거셌다. 동년배 친구들은 나를 볼 때마다 경찰이 이래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민 청장은 사과가 잦다. 그는 올해 6·10민주항쟁 기념일 전날이었던 이달 9일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를 만나 “너무 늦었다. 저희도 참회한다”며 사과했다. 이 열사의 유가족을 만나 사과한 경찰 총수는 민 청장이 처음이었다. 기념일 당일인 이달 10일에는 많은 고문이 자행됐던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는 대공분실 건물(현 민주인권기념관)을 찾기도 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가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파업, 백남기 농민 사망 등 과거 사건 7건에 대해 경찰의 과잉 진압과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결론내리자, 민 청장은 유족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민 청장은 “오래된 과거지사지만, 명백히 경찰이 잘못됐다는 것을 사실 규명으로 확인했음에도 경찰이 입장 표명하지 않고 지나쳐 왔던 사건들이 있다”며 “용서를 구해야지 유가족하고 화해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 같았다”고 했다.

민 청장의 이 같은 생각은 ‘경찰이 시민이고, 시민이 경찰이다’라는 말로 집약돼 2년 동안 치안 정책으로 펼쳐졌다. 그의 임기 중 조사위가 설치됐고, 이달 10일에는 경찰관 인권행동강령이 제정·선포됐다. 인권영향평가제도 정부 기관 최초로 도입됐다. 집회 현장에는 대화경찰관·현장안전진단팀이 투입됐다.

민 청장은 “‘경찰이 시민이고, 시민이 경찰이다’라는 얘기를 직원들에게 많이 강조했다”며 “굉장히 추상적인 말을 던졌는데 지금은 대부분 경찰이 어색해하지 않고 말한다. 구체화돼서 지금은 중심이 되는 정신으로 형성돼 가고 있구나 하고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경찰이 시민이고, 시민이 경찰이다’는 1800년대 영국의 근대 경찰 제도를 확립한 인물로 평가 받는 로버트 필 경(卿)의 말로, 경찰과 시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퇴(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계획”…퇴임 후에는 자연인으로=민 청장과 부인은 경찰 부부다. 민 청장이 모교 조교로 일할 때 대학 후배였던 부인을 처음 만났다. 계급이 경정인 부인은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인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파견 가 있다. 특히 민 청장이 경찰 수장으로 있는 동안, 부인이 승진, 보직 등에 있어 어느 정도 ‘희생’했다는 것이 조직 내의 전반적인 평가다.

“아내한테 내가 청장으로 있을 때는 꼼짝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나 때문에 불이익을 본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는 민 청장의 말에 역시 경찰대 출신으로 이날 인터뷰에 배석한 부하 직원은 “그건 사실”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민 청장은 “자다 일어나보면 가끔 옆구리가 아픈데, 와이프가 걷어찬 것 같기도 하고…”하며 웃었다.

민 청장에게 퇴임 후 계획을 물었다. “아무 것도 안 잡는 게 계획”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집안의 가훈도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고 한다. ‘복숭아와 자두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아래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2007년 총경 승진 때 경찰대 은사가 써 준 글귀이기도 하다.

민 청장은 “시골에서 자라면서 아무것도 모른 채, 경찰이라는 세계에 뛰어들었다”며 “아무 것도 없이 새로운 삶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돋아날 때까지, 비워 버리는 새로운 삶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중재자 역할, 법적인 결단을 내려야 되는 부분이 힘들었다”고 했다. 뿌린 대로, 가꾸는 대로 자라고 결실을 맺는 취미 생활을 가져보고 싶다며 새 취미로 목수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민 청장의 노래방 애창곡은 가수 조영남의 ‘제비’다. 술 한 잔 들어가면, 직원들과 회식이든 지인들과 모임이든, 무반주로 거뜬히 부르는 노래다.

‘먹구름 울고 잔서리 친다해도/ 바람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고운 눈망울 깊이 간직한채/ 당신의 마음 품으렵니다(중략)/ 어둠 뚫고 흘러내린 눈물도/ 기다림 속에 잠들어 있네/ 바람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당신의 마음 품으렵니다….’

내달 23일 퇴임식 이후는 어쩌면 민 청장에게는 매일매일이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온 날들’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판이든 숲속에서든, 운이 좋으면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을 흥얼거리는 민 청장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리=신상윤·박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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