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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베스트셀러의 자화상

1992년 인문과학 분야에서 선풍을 일으킨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지금도 유효한 스테디셀러다. 국가 주도의 근대화 시기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우리의 전통과 민족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즈음 소설 분야의 베스트셀러에서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도드라진다. 1993년 열림원에서 출간한 이청준의 ‘서편제’가 전형적이다. 서구적 근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우리 소리를 지키기 위해 딸의 눈까지도 멀게 만드는 한 소리꾼 이야기는 서구화에 눈먼 우리가 되찾아야 할 우리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역으로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을 본 책들도 관심을 끌었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 잡는 18가지 이유’ ‘한국, 한국인 비판’ ‘발칙한 한국학’ 등이다.

신자유주의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세계화는 새 천 년에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온다.‘ 한국의 부자들’ ‘블루오션 전략’ ‘부의 미래’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등에서 보듯이 계속된 경제위기는 돈 벌기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경제위기 속에서 자신의 삶과 경제적 능력을 되돌아보게 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인성을 갖추기 위한 피나는 노력도 경주했다. ‘아침형 인간’ ‘이기는 습관’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마시멜로 이야기’ 등은 그래서 가벼운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처절한 자기계발서다.

그렇게 나를 계발했지만 경제위기는 멈추지 않았다. 2004년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강타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상황에서 계속된 경제위기는 양극화로 이어졌다. 경제위기 속에서 중산층은 몰락하는데도 상승 이동 경로는 더 강력하게 봉쇄됐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청년들에게 실업을 안겨줬고, 30대에게 불안을, 40대에게 과로사를, 50대에게 조기퇴직을 안겨줬다. 그리고 60대 이후의 세대에게 기나긴 파고다공원 생활을 강요했다.

이런 사회 변동 과정은 베스트셀러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사회가 양극화된 것처럼 베스트셀러도 소수 책들이 대부분의 시장을 장악하는 양극화가 나타났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나의 문 화유산 답사기 ’ ‘엄마를 부탁해’ ‘칼의 노래’ ‘정의란 무엇인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은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생산한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는 독자 연령층도 달라졌다. 2009년 미국발 경제위기 때 가장 큰손은 20대로, 전체 독자 중 35.5%를 차지했다. 2018년 우리 서점가 가장 큰손은 40대다. 30.9%를 차지한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20대 청년들은 구매력을 상실했다. 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든 40대가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만성적인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워준다.

2018년과 2019년 두 해 동안 SNS는 생산에서 홍보를 거쳐 소비까지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그 플랫폼에서 김지훈·김재식 등은 베스트셀러작가 반열에 올랐고 ‘모든 순간이 너였어’ ‘82년생 김지영’ ‘앨리스 죽이기’ ‘곰돌이 푸 행복은 매일 있어’ 등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독서가 단순히 심심풀이 땅콩 정도가 아닌 시대를 살고 있다. 베스트셀러는 지난 30년 동안 격동의 한 세대를 자세하게 써 놓았다.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의 궤적을 그릴까? 다음 세대는 어떤 책으로 우리 자화상을 그릴까?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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