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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흔한 청어는 어떻게 유럽사를 바꿔놓았나
육류 금한 중세 유럽, '피시 데이' 허용
청어, 대구 일년의 절반 매일 식탁에 올라
주 식량자원으로 거대 시장 형성, 각국 경쟁
바이킹의 습격,한자동맹 패권도 청어떼 따라

존 캐벗의 대구떼 조우는 신대륙 발견으로
물고기 따라 서양의 패권 흐름 읽어내
“네덜란드인도 스페인인도 포르투갈인도 뉴펀들랜드의 생선이 없었다면 서인도제도에 단 한 척의 배도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소금에 절여 볕에 말린 생선 이외에 여태까지 상하지 않고 적도를 넘은 생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에서)

값이 싸고 맛이 좋아 서울 선비들이 즐겨 먹었다는 청어는 중세 유럽에선 대부분의 가정의 식탁에 오를 정도로 흔했다. 대량으로 잡히는 데다 선택의 폭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름기가 많아 쉽게 상해 식중독을 일으키거나 소금에 절인 가공식품도 질이 낮아 대중에겐 그닥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런 흔해 빠지고 비하의 대상으로 주로 쓰인 청어가 유럽의 역사를 바꿔놓았다면 좀 의아하다.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사람과나무사이)는 청어와 대구 등 물고기가 인간의 경제적 욕망에 따라 세계판도를 바꿔놓은 아이러니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육류를 ‘뜨거운 고기’라며 엄격히 금했다. 성욕을 일으켜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게 이유였다. 기독교가 일년 중 거의 절반을 단식일로 정해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게 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다만 단식일에도 적은 양이나마 뭔가를 먹는 게 허용됐는데 바로 생선이었다. 생선은 '차가운 고기'로 성욕을 억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세 기독교가 만들어낸 단식일의 피시 데이 관습은 거대한 생선수요를 만들어내고 거대 시장을 형성한다. 복합적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고 상인연합세력인 한자동맹, 새로운 헤케모니 국가 네덜란드가 부상하게 된다.

문제는 회유어인 청어가 무슨 이유에선지 이동경로를 바꾼다는 점이다. 그 경로가 바뀔 때마다 도시와 국가의 운명이 갈렸다. 학자들은 청어의 회유경로 변화가 바이킹이 고향을 버리고 브리튼섬을 침략하게 된 결정적 요인으로 본다.

바이킹은 해안이 후미져 들어간 만에 주로 살았는데, 청어와 대구가 주요 식량이었다. 그런데 10세기 청어 풍어가 들면서 바이킹의 잉글랜드 습격이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10세기 말에는 청어의 회유경로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다시 정복 활동에 나선 것이다. 바이킹은 청어잡이가 활발한 지역 위주로 식민지를 개척했는데 이들의 진로는 훗날 네덜란드가 북해에서 청어잡이를 할 때 밟았던 경로와 거의 일치한다.

청어의 이동경로 변화는 청어무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13세기 초반 무렵 발트해 연안의 도시 뤼베크 근해에서 어부들이 거대한 청어떼를 발견한 데 이어 인근도시 어부들이 청어잡이에 나서면서 청어 무역이 활발히 전개된다. 청어 시장 규모가 급속이 커짐에 따라 발트해 연안 도시의 상인들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동맹을 결성하는데, 1241년 뤼베크와 함부르크 간 동맹 결성이 시초다. 이는 유명한 한자동맹의 원류가 된다. 한자동맹은 금세 세가 불어나 수십 개의 도시가 참여하는 거대 조직을 형성, 유럽의 경제패권을 200년간 장악하게 된다.

한자동맹의 패권의 몰락 역시 청어에 기인한다. 청어떼가 갑작스레 산란장소와 회유경로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꾸면서 시작된다. 이로 인해 한자동맹은 급격히 쇠퇴하고 바톤을 북해 연안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이어받게 된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약소국 네덜란드는 하루 아침에 신흥강국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잉글랜드 앞 바다에서 청어를 무더기로 잡아올리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6세기말엔 아시아로 향하는 북동항로를 개발하고 희망봉 항로를 이용해 네덜란드령 동인도회사를 설립하는 등 거침없이 질주한다. 그 중심에 청어가 있다.

북아메리카에서 존 캐벗이 발견한 대구떼는 신항로 개척시대 역사를 바꿔놓게 된다. 베네치아 시민이었던 존은 1496년 3월 헨리 7세에게 특허를 얻어 브리스톨에서 서쪽을 향해 출항했다. 그가 향한 곳은 서쪽으로 도는 아시아 항로, 당시엔 황금의 섬 ‘지팡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일본으로 가는 항로였다. 황금을 찾아 떠난 제1차 항해는 실패하고 2차 항해에서 그는 그는 씰수로 엉뚱한 곳에 도착한다.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인근 어느 섬으로, 그는 보화나 향신료 대신 거대한 대구떼를 만나게 된다.

존 캐벗이 북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영지로 선언했지만 잉글랜드는 아이슬란드에 더 집착했다. 대신 뉴펀들랜드산 대구는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발빠르게 뛰어들었는데, 이들은 염전과 피시 데이를 엄격히 지키는 가톨릭 신자가 많아 거대 대구 시장이 형성된 데 있다. 잉글랜드는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 뒤 다시 어업의 기지개를 펴고 뉴펀들랜드의 패권을 장악한다.문제는 소금이었다. 대구를 절이기에 포르투갈 어선 보호료 명목으로 받은 소금은 역부족이었다. 결국 잉글랜드인은 궁여지책으로 소금양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바로 소금에 살짝 절인 다음 말리는 감칠맛나는 ‘잉글랜드식 대구’의 탄생이다.

뉴펀들랜드와 뉴잉글랜드 지역의 식민 역사 역시 대구와 관련이 있다, 뉴잉글랜드는 겨울에 대구잡이를 하고 여름에는 농업과 임업 등 거의 일년내내 생산활동이 가능해 식민지로서 큰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메이플라워호가 뉴잉글랜드의 케이프코드에 도착한 것은 1620년 11월21일이다.

저자는 평범한 생선 대구가 미국 독립전쟁 자유정신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된 이야기 등을 계속 이어가는데, 문학과 역사, 요리를 오가며 물고기의 특별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버무려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사람과나무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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