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시위·테러, 사우디-이란 주도 ‘예멘 내전’ 불확실성 고조
걸프해역 군함 근접 사건 이후 美 vs 이란간 긴장 재점화
중동 맹주를 자청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유가 하락으로 인한 재정 감소가 사우디와 이란 간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예멘 내전의 불확실성을 높일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이란의 후원을 받는 후티 반군 모습. [AP]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유가 하락이라는 악재를 동시에 맞은 산유국들이 경제난을 겪으면서 주요 원유 생산지가 밀집한 중동과 중남미, 아프리카 등의 지정학적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산유국의 상당 수가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석유 수출에 의존해 온 가운데, 유가 하락의 충격으로 인한 국가 재정 악화는 가뜩이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은 지역을 더욱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모양새다.
전세계적 원유 수요 위축에 따른 유가 하락은 즉시 산유국의 심각한 재정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일부 산유국들은 금융 안전망 하에 현 위기를 버티고 있지만, 경제적 생존을 위해 석유 생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은 말그대로 ‘재앙’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수입의 90%를 원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이라크는 당장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연금과 복지비 지급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다. 심지어 400만명 이상의 근로자들에 대한 5월 급여 조차 맞출 수 없는 상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불황 위기에 놓였던 멕시코는 경제 회복의 ‘은탄(해결책)’으로 기대를 모았던 국영석유회사 페멕스의 회생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상황에 놓였다. 미국의 제재로 원유 수출 활로 확보에 고전해 왔던 베네수엘라 역시 이번 유가 하락 사태로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15%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남미와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불어닥친 경제적 불안은 이 지역의 정치·외교적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유 수출로 국가 재정의 3분의 2를 충당하고 있는 나이지리아는 재정 악화에 이은 경제난이 대내외적으로 빗발치는 지정학적 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란 불안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소수 시아파 무슬림 시위와 분리 독립을 선언한 나이지리아 동부 비아프라 공화국과 나이지리아 정부군 간의 ‘비아프라 내전’ 이후 이어지고 있는 비아프라주 독립운동이 아직 현재 진행형인데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보코하람의 테러 공격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제난으로 인해 시민 불만이 고조되고, 대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할 정부의 여력마저 떨어진다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중동 맹주를 자청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유가 하락으로 인한 재정 감소가 사우디와 이란 간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예멘 내전의 불확실성을 높일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예멘의 적들을 소탕하겠다’는 목표 아래 예멘 내전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왔다.
NYT는 “유가 하락은 예멘 내전을 끝내겠다는 모하메드 왕세자의 계획에 필요한 재정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면서 “사우디는 2015년부터 이란과 협력한 반군 단체를 물리치기 위해 현재까지 수백억달러를 썼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잦아들었던 세계 4위 산유국인 이란과 미국과의 긴장도 재점화하고 있다. 지난 15일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의 고속단정이 걸프 해역 북부에서 미 군함과 근접한 사건과 관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바다에서 이란 무장 고속 단정이 우리의 배를 성가시게 굴면 몸조리 쏴버려 파괴하라고 해군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현재 미 해군은 당시 혁명수비대 무장 고속단정이 경고를 무시한 채 미 군함 사이를 돌아다니며 위협을 가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란은 미 군함이 먼저 접근해 위협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에 아볼파즐 셰카르치 이란 군 대변인은 “미국은 지금 다른 나라를 괴롭힐 생각하지 말고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자국군을 먼저 구하는 데나 집중하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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