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미국산 원유가 전례없는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 원유시장을 흔들고 있는 혼란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유가 하락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팔지 못한 원유 재고로 저장탱크까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판매자가 돈을 지불하고 원유를 팔아야하는 ‘기현상’이 현실화한 것이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종식되고, 산유국의 감산 조치가 시작되면 원유 시장이 정상화 궤도에 오를 것이란 기대 심리도 동시에 감지되고 있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가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소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 원유(WTI)는 -37.63달러에 거래로 마감, 선물거래가 시작된 1983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마이너스 유가는 국제 원유 시장이 코로나19로 유례없는 수요 위축을 경험하고 있는 가운데, 원유 저장고가 포화상태에 다다르면서 5월물의 시장 가치가 상실되면서 생긴 결과로 풀이된다. 가령 8000만배럴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는 미 오클라호마주 쿠싱의 현재 여유 저장분은 미국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이틀치 분량을 밑도는 수준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이너스 유가는 본질적으로 해당 원유가 가치없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팔아야 할 석유가 있는 사람들은 재고 처리를 위해서 기꺼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시장정보업체 겐스카페의 힐러리 스티븐슨 석유시장 담당 이사는 “재고 급증은 기록적인 속도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5월에도 저장고 부족사태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당장 유가가 마이너스대로 추락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선물시장에서는 유가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사회적 거리두기 억제조치가 완화돼 경제활동이 재개되면 수요가 살아나면서 지금의 혼란을 잠재울 것이란 전망에서다. 6월물 가격이 2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만기일이 많이 남을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콘탱코’ 현상이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실제 WTI 7월물은 27달러 선, 8월물은 29달러, 9월물은 30달러, 10월물은 31달러, 11~12월물은 32달러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진다는 가정 하에 수요 증가와 공급 감소가 잇따르면서 유가가 회복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산유국의 감산 외 가격 하락을 이기지 못한 원유 생산 기업들의 유정(油井) 폐쇄가 글로벌 원유 공급 감소를 가속화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케일린 버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주 동안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이미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 셰일 기업들이 활동을 축소하거나 파산으로 내몰리면서 앞으로 몇 달 동안 계속해서 생산량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국제 유가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지는 불투명하다. 국제 유가는 지난 1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69달러 가까이 올랐지만, 불과 두 달 만에 20달러 선으로 폭락했다. 가디언은 “산유국의 역사적 감산 조치에도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국제 유가가 연초 기록했던 가격 수준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20~3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는 6월물을 근거로 원유 시장의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아르템 아브라모드 라이스타드 에너지 셰일 연구팀장은 “유가 30달러는 이미 나쁜 수준이며, 20달러나 심지어 10달러가 되면 완전 악몽일 것”이라고 밝혔다. 손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