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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나 감염…코로나는 정말 인류에 ‘평등한 재앙’ 일까
사회적 거리두기·재택근무 등 고소득층 ‘특권’
소득수준 낮을수록 실직·감염위험도 더 커져
자본주의 논리로 안전망 투자 축소 혼란 키워
전문가들 “위기이후 소득 불평등 더 심화될것”
[로이터]
‘평등한 재앙’은 허상인가
3월 23일부터 27일까지 미 도시별 시민 이동 평균 거리 분석. 색이 붉을수록 시민이 많이 이동했다는 뜻이고, 푸를수록 이동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그래프를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는 동안 소득 수준이 높은 동부와 서부 시민은 이동이 적었고, 소득 수준이 낮은 중서부 지역에서는 이동이 많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종과 계급, 국가를 신경쓰지 않으며,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질병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찰스 M 블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지난 12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지구에 확산되면서 인류가 초유의 공중보건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로 17일 기준(한국시간) 210만명이 넘는 확진자와 14만5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전 인류는 바이러스 앞에서 평등한 듯 보였다. 영국의 총리를 비롯한 유명 정치인과 할리우드 스타의 코로나19 확진 보도가 잇따랐고, 일국의 왕족 중에서 사망자도 발생했다. 소위 부유한 유명인들이 코로나19의 화마를 피해가지 못했다는 소식은 ‘코로나19 사태’가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위기’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만 들여다보면 위기 속에서도 ‘빈익빈 부익부’는 여전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고연봉의 관리자 혹은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이 ‘전염’을 막기 위한 원격근무 지침을 따르면서 재택근무하는 동안 생산직을 비롯한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실업대란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운 좋게 일자리를 유지하더라도, 이들은 언제 자신을 공격할지 모르는 바이러스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터로 나가야만 한다.

경제적 충격의 영향도 불평등한 것은 마찬가지다. 다수의 연구는 경제 붕괴로 인한 피해가 젊은이들과 일자리가 불안정한 이들, 그리고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쏠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가 ‘평등한 재앙’이라는 생각은 허상이며,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후 전 세계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택근무는 ‘특권’이다
[그래픽디자인=표경숙]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각국 정부의 이동 제한 조치로 글로벌 산업계는 유례없는 대규모 ‘재택근무’ 실험에 돌입했다. 덕분에 일찍이 재택근무 시대를 대비해온 정보통신(IT)기업들의 원격근무 서비스가 불티나게 팔렸고, 애초 우려와 달리 전 세계적 재택근무 실험은 대부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전염병 위기 속에서도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들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같은 소수 근로자는 대부분 화이트칼라, 고소득 근로자에게 집중됐다. 즉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근로자는 정부 당국의 이동 제한 명령에도 ‘생계’를 위해서 매일 집을 나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실제 최근 한 매체가 미국의 스마트폰 위치 데이터를 인용해 주정부와 연방정부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내려진 이후 도시별 인구 이동 변화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득 수준이 높은 동부와 서부의 이동 빈도는 현저히 줄어든 반면,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중서부 지역 시민의 이동은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미 진보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 연구에서도 지난 2017년과 2018년 기준으로 임금 상위 25%의 근로자 중 61%가 원격근로가 가능한 반면, 하위 25%의 9.2%만이 원격근로가 가능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인종별로는 흑인과 히스패닉계 근로자 상당수가 원격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인터넷매체 패스트컴퍼니는 “모든 사람이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사치를 가진 것은 아니다”면서 “다수 노동자에게는 출근하지 않는 것이 실직을 의미하고, 실직한다는 것은 수입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 빈익빈 부익부 현상 심화

영국의 가디언은 “코로나19는 현존하는 불평등과 부당함,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이 경제적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논리는 단순하다. 각국의 봉쇄령으로 비필수적인 상점들이 문을 닫으면서 사람들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게 된다. 부유하다면 소비 감소분을 저축함으로써 또 다른 부를 쌓을 수 있다. 심지어 건물이나 집을 가진 임대인이라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정부 정책에 따라 대출 상환 의무를 감면받거나 연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가정은 수입 제한을 겪을 가능성이 크고, 수입 중 큰 부분을 필수품에 소비함으로써 저축할 여력마저 잃을 공산이 크다. 이미 임차인들은 가뜩이나 부담스러운 임차료를 낼 여유가 없어 당장이라도 살 곳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최근 미국에서는 민생고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임대료를 내지 말자는 ‘렌트 스트라이크 2020(임대료 파업)’ 운동을 벌이고 있다.

NYT는 “수년 동안 부와 소득이 가장 부유한 사람들에게 집중되면서 재정 불평등은 확대돼왔다”면서 “이제 코로나19는 그 불평등을 폭로하고 가시화시키며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익부 빈익빈’ 현상 심화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정부가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고 나섰다.

영국 재정연구소의 하이디 카르잘라이넨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지출 삭감이 영국의 불평등 증가를 야기시켰으며, 정부가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시 긴축재정을 취하는 실수를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소득층은 경제적 폐쇄와 코로나19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건강의 위협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면서 “가장 위험에 처한 그룹을 경기침체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런던대 건강국제센터 마이클 마모트 교수 역시 빈곤층에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모든 것은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국가경제에 장기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패로 돌아간 공공 서비스 ‘민영화’ 실험

일각에서는 의료를 비롯한 필수 사회 시스템까지 덮친 ‘자본주의 논리’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각국 정부가 공공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 아래 의료 예산을 절감하고, 장기 성장을 위한 사회안전망 투자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결국 코로나19 사태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영국 국영방송인 BBC는 지나치게 자본주의화한 공공 서비스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영국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현재까지 9만8400여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고, 이 중 1만2800여명이 사망하면서 높은 치명률을 보이는 국가 중 하나다.

실제 영국은 2015년부터 공공의료 예산을 해마다 10억파운드(약 1조5000억원)씩 감축했고, 최신 의료시설을 갖추기 위한 장기 투자도 대폭 줄였다. 제대로 된 정부 차원의 의료 시스템이 없는 미국마저도 트럼프 정부 주도 아래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대한 예산을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이유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BBC는 필수적인 사회 서비스를 통해 돈을 벌고자 했던 정부의 노력 하에 높은 비용 대비 생산성이 낮은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BBC는 “의료 시스템은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이윤을 내야 한다는 자본주의 논리가 통하지 않고, 생산성 증가세 역시 다른 부문보다 낮은 데다 비용도 많이 든다”면서 “이제 일부 국가는 가장 중요한 시스템이 붕괴되거나 과부하가 걸릴 것이란 우려 앞에 서 있으며, 코로나19는 시장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거짓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손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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