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 경제 분담 파열음
레타 전 총리 ‘치명적 위험’ 경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 분담 문제를 놓고 EU 회원국 간 이견이 짙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회원국 간 신뢰 상실이 EU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로이터] |
유럽 26개국의 정치·경제 통합체인 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존폐 위기에 놓였다. 유럽 지도자들은 사태 초기 각국에서 산발적으로 발표된 국경 봉쇄령을 비롯해 당초 개별 국가 차원에서 추진됐던 공공 보건 위기 대응을 EU 차원의 협력으로 확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분담하는 데는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다.
과거 EU에 몸 담았던 원로정치인들은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앞서 유럽 대륙이 지나온 유로존 구제금융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보다 EU를 훨씬 더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과거 유럽위원회를 이끌었던 자끄 델로스 전 의장은 “회원국 간의 결속력 부족이 유럽 연합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엔리코 레타 전 이탈리아 총리 역시 1일(현지시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EU가 세계적 전염병으로 인해 ‘치명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레타 전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식의 ‘자국 우선주의’가 유럽 대륙에 만연한다면 EU 전체가 “침몰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유럽은 공공 보건 위기에 맞서 초국가적 협력에 나서며 통합체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부각시키고 있다.
일부 국가들이 핵심 의료장비와 의약품의 수출을 금지하면서 사태 초기에 불협화음이 짙어지기는 했지만, 곧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의 국가들이 주요 코로나19 발병국 환자들을 위해 병원을 개방하면서 EU 차원의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 피해에 공동 대응을 해야 하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최근 EU는 코로나19 주요 발병지인 이탈리아 등이 요구한 EU 공통의 ‘코로나 채권’ 발행을 둘러싸고 진영 대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6개 국가들은 코로나 채권이라는 유로존 공동 채무 발행에 동의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는 이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 국가들은 사실상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부도 위기에 몰린 이탈리아를 겨냥,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 규율 해이를 코로나 채권 반대 이유로 거론하고 있다. 네덜란드 왑케 호엑스트라 재무장관은 “도대체 왜 이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재정적 충격을 다룰 수 있는 재정 완충 장치를 갖추고 있지 않냐”며 반발하기도 했다.
EU 자문역을 지낸 헤더 그라베 유럽정책연구소 소장은 경제적 충격 분담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남부 유럽과 북부 유럽 간의 분열에 주목했다. 그는 “각국의 위기는 회원국 간, 그리고 전체 EU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면서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손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