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무한 재생산 가능”
“AI 등 기술적 지원·업체 책임 강화도 필요”
그래픽=이운자 기자/yihan@heraldcorp.com |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경찰이 최근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피해자들을 유인한 뒤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텔래그램을 통해 거래한 ‘박사방’ 사건의 주범인 ‘박사’ 조주빈(25) 등 124명을 검거하고 박사방의 원류인 ‘n번방’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무한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해당 영상물에 대한 삭제도 중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30일 여성인권 시민단체와 여성학자들은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n번방에 대한 강력한 수사와 검거·처벌도 중요하지만 해당 영상물에 대한 삭제가 피해자 지원에 있어 가장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콘텐츠의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이유다.
아동·청소년 보호 단체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는 “디지털 콘텐츠의 특성은 아날로그(콘텐츠)와 다르게 원본과 사본의 구별이 없고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처음 인터넷에 올라간 곳에서 삭제를 한다고 해도 반복적으로 퍼져 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선 영상이 플레이될 때마다 다시 성폭력 피해가 재현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 역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영상물이 완벽하게 삭제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디지털 성범죄는 기존 오프라인 안의 성 착취나 성범죄와 다르게 무한 재생이 가능하고 무한 반복이 가능한데, 성 착취 영상물이 몇십·몇백 차례 삭제도 불가능한 상태로 계속해서 반복 재생산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n번방에 대해 엄격하게 수사하겠다’라고 하면 그때는 유포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 n번방에 대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 소지한 사람이 또 다시 유포할 수 있다고 하면 결국 끊이지 않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의 삭제’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영상물 삭제는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피해자 지원에서 실제로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치유나 회복이 쉽지 않지만 적어도 내 영상이 온라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최대한 할 수 있는 부분은 영상을 찾아 삭제해 주는 삭제 지원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윤김 교수도 “조주빈과 관련자들을 잡아 들여 양형을 하면 마치 없었던 것처럼 피해 영상물이 사라지고 멈추는 게 아니다”라며 “계속해서 제2·제3의 n번방·박사방이라는 ‘클론 박사’들이 계속해서 성착취물을 유포하고 유사하게 만드는 생산·유포 구조를 봐야 하고 영상물 삭제에 대한 지원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AI(인공지능) 등을 통한 피해 영상물 삭제 조치에 대한 기술적 지원과 플랫폼 운영 업체의 책임 강화도 제언했다. 윤김 교수는 “찍힘과 동시에 디지털 바이트로 전환돼 무한 복제·재생되는 디지털 성범죄물은 기술적 차원의 원천 차단과 봉쇄가 중요하다”며 “수작업으로 계속 지우는 건 굉장히 어렵고 이 안에서도 영상물의 제목을 바꾼다거나 부분 편집 등으로 필터링에서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어 이 모든 걸 잡아 낼 수 있는 AI 기술 개발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 역시 “현재는 자율적으로 삭제를 요청하면 운영자들이 삭제나 차단을 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차단을 하는 등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 발 더 나아가 삭제 지원뿐 아니라 운영 과정에서 성범죄가 의심되는 정황이 있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업체의 책임 강화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n번방과 관련해선 경찰과 협력해 적극적인 삭제 조치에 나서고 있다”며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하 진흥원) 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텔레그램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에 대한 삭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지원단을 통해 초기 상담 후 24시간 불법 촬영물 모니터링, 삭제 지원, 사후 모니터링에 나서고 있다”며 “여가부 산하 진흥원을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심리 상담 지원 등도 연계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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