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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산책] 1886년 조선의 콜로라 대유행

19세기 중반께 쓰인 ‘덴동어미화전가’는 우리 가사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작자 미상으로 경북 순흥의 부유한 중인 출신 임 여인의 육십 평생 기막힌 인생유전을 절절하게 그린 작품이다. ‘덴동어미’ 임 여인은 열여섯 살에 같은 중인 계급인 예천 장 이방의 며느리가 되는데, 이듬해 단옷날 열일곱 살 신랑이 그네 뛰다 추락사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친정으로 돌아온 임 여인은 상주 읍내 이승발의 후처가 된다. 때마침 악질 조병로가 상주목사로 부임, 재산을 몰수하면서 이씨 집안은 몰락해 걸인 신세가 된다. 부부는 주변의 냉대와 자존감 상실로 고향을 떠나 경주로 간다. 체면불고하고 전직 관아의 노비 밑에서 일하며 돈놀이로 성공해 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세상은 또 한 번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1886년 병술년 괴질이 경주 읍내를 덮쳐 남편 이씨와 채무자들이 한꺼번에 사망하고 임 여인은 빈털터리가 돼 홀로 남게 된다. 걸식하며 울산까지 흘러간 임 여인은 황 도령을 만나지만 산사태로 그가 죽자 다시 과부가 된다. 굶어 죽으려던 임 여인에게 이웃 여인이 엿장수 조 첨지를 소개해 부부는 나이 오십에 아이를 갖는다. 행복도 거기까지. 수동별신굿 행사에 팔 엿을 고다가 불이 나는 바람에 남편은 죽고 아이는 화상을 입는다. ‘덴동어미’가 된 것이다. 예순에 가까스로 순흥 고향으로 돌아온 임 여인이 비봉산 화전놀이를 하며 한바탕 꿈같은 인생을 돌아보며 노래하는 게 이 화전가다.

당대 사건·사고를 담고 있기도 한 이 작품에서 임 여인의 불행은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1886년 괴질은 그 유명한 ‘콜로라 대유행’이다. 당시로선 속수무책이었겠지만 콜로라만 아니었으면 임 여인은 상주나 순흥으로 돌아와 그런대로 순탄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회적 약자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선 가장 고통스럽다는 얘기다.

당시 콜레라는 치사율이 50%에 달했다. 주로 개항항을 통해 유입되곤 했는데 부산항 역시 콜레라로 죽는 이들이 많았다. 이에 따라 1879년 전염병 전문격리기관인 피병원이 처음으로 영도에 들어서게 된다. 1886년 대유행 때는 인명 피해도 피해려니와 거래가 뚝 끊겨 몰래 거래하다가 적발되는 일도 많았다.

부산항 통상사무소 서기관 민건호가 쓴 일기인 ‘해은일록(海隱日錄)’을 보면 당시 관문의 콜레라 대처법이 눈길을 끈다.

일본 거류지역 내 부산해관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일본인들은 전염병을 옮길지 모른다며 ‘물약’을 뿌려댔다. 꼼짝 못하게 붙잡고 온갖 비난을 하면서 온몸에 약을 뿌렸는데, 법과 기율이 멀어서 서로 항거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니 개탄스럽다고 민건호는 썼다.

지금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코로나19를 보다 강력한 팬데믹의 전조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전염병학자의 90%는 다음 두 세대 안에 10억명의 감염자와 1억6500만명의 사망자를 낼 가공할 전염병이 등장할 것으로 본다. 이로 인한 전 세계적인 불황은 불가피하다.

팬데믹은 생물학적 본능을 가진 병원체 후보 수가 증가한 것도 있지만 공중위생 기반시설과 국제적 협력 부족, 전염병에 직면했을 때 사회적 응집력을 유지하는 능력 부족을 반영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 역시 그런 시험대를 거치고 있다. 코로나19를 통해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과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안전망 등을 돌아봐야 한다.

이윤미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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