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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델생물’의 명암…그래도 닭 대량사육이 꼭 필요한 이유

생물학자들은 대개 자신이 갖고 있는 의문을 푸는데 가장 적합한 생물을 찾아 연구하는데, 이를 ‘모델생물’이라 부른다.

초파리 유전학자인 김우재 박사가 생물학자들의 ‘반려생물’, 즉 모델생물의 세계를 엮은 ‘선택된 자연’(김영사)을 펴냈다.

생명의 기본입자로 불리는 박테리오파지 부터 대장균과 아프리카발톱개구리, 애기장대, 플라나리아, 쥐와 고양이, 돼지, 암세포주 등 생물학자들의 애정 생물 26종을 선정, 인류와 학문의 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준다.

그 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대장균은 전염병 뿐아니라 분자생물학, 생물정보학까지 매력적인 모델로 꼽힌다. 유전자의 전달· 복사· 번역 등의 기능을 알 된 건 대장균 덕이며, 최근에는 유전자조작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인 개는 실험생리학의 주인공. 과학사는 수많은 개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개 실험은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이지만, 파블로프가 노벨상을 받은 건 소화액과 관련한 실험이었다. 파블로프는 음식물이 위에 도달해야 위액이 나오는지 식욕이 위액의 분비를 자극하는지 실험하기 위해 수백 마리의 개를 희생시켰다. 현재 개의 품종은 400가지가 넘는데, 공통조상인 늑대로부터 이렇게 다양한 개가 지구상에 등장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만50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만 매년 5억 마리가 도축되는 닭이 과학사에 처음 등장한 문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학’으로 닭의 배아를 관찰한 결과를 여기에 기술했다. 닭이 처음 유명세를 치른 경우는 1868년 출판된 다윈의 ‘가축 및 재배식물의 변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다윈은 닭의 육종 과정에서 인위선택과 자연선택을 비교했다. 분자생물학에서 중요한 종양유전자의 발견도 닭을 통해 이뤄졌다. 1911년 페이턴 라우스는 닭의 종양이 세포추출물에 의해 다른 닭으로 감염될 수 있고 이식된 닭에서도 종양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물질을 바이러스라고 명명했다. 당시엔 닭이 인간과 멀다는 이유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1960년대 암 유전자의 발견이 이뤄지면서 재조명을 받았다.

저자는 여기에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제시한다. 동물권 옹호론자들이 현재의 대량사육 양계장 시스템을 반대하지만 한 가지 이유 때문에라도 대량의 닭 사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근 가장 위험한 전염병으로 분류되는 조류독감의 백신을 만들려면 수십억 개의 계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매년 외피 단백질의 유전형이 바뀌는 조류독감의 특성상 최초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되자마자 대단위 생산체계를 확보하는 게 관건인데 미국은 이를 위해 약 1억 개의 계란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델생물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사회와 과학계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유전자편집에 얽혀있는 과학계 내부의 문제, 생쥐가 대부분의 과학연구비를 독식하며 모델생물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최근 동물 윤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생물학자에게 모델생물은 도구 이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인간의 질병 치료를 위해선 모델생물에 대한 선행 연구가 있어야 하고 여러 모델생물의 연구가 융합돼야 생물학이 진보한다는 것이다.

생명현상을 알아내기 위한 열정적인 과학자들과 그 현장에 톡톡한 기여를 한 모델생물, 생물·생리학의 발전과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선택된 자연/김우재 지음/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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