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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도대체 어느나라 장관이냐”…이번엔 박능후 ‘입’이 사고 쳤다
박능후 “코로나 확산 가장 큰 원인은 中서 들어온 한국인”
“中 책임 얘기 안하고 장관이 피해자 자국민에 상처 줘”
박 장관에 비판 여론 들끓어…“궤변·경솔한 발언” 뭇매
야당은 “중국 의식 자국민 뒷전으로 하는 文정부 실상”
與 “그렇잖아도 ‘대구 봉쇄’ 발언에 힘들었는데…” 당혹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오늘(27일) 새벽이니, 좀 전 일이다. 출근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마스크를 썼다. 물론 나도 썼다. “안녕하세요”라고 했더니 “○○동 가시죠?”라고 한다. 어떻게 아시냐고 했더니 전에도 같은 시간이 몇번 태워줬단다. 잠시 후 기사가 말을 건넨다. “요즘 손님들하고 얘기 거의 안해요. 코로나19 때문에 서로 감염시킬까봐 한마디도 안합니다. 서로 못믿을 세상이죠. 누가 감염시킬지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몇번 뵈었으니까…”.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죠. 뭐. 코로나로 힘드시죠?”라고 했더니 “전국으로 이렇게 무섭게 퍼져나가니 간단치 않아 보입니다. 첨엔 잘 막을 것 같더니…”라고 한다. 그러더니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다. 칠십이 넘은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라고 했다. 택시기사를 하기 전에 회사도 다녔고, 장사도 했고, 제법 큰 사업도 했단다. 잘 되기도 하고 망하기도 했는데, 그러다보니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덤덤하게 살아간단다. 그런데 코로나19만 생각하면 울분이 터진단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한마디 할게요. 코로나, 중국 때문에 이 난리 아닙니까. 그런데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전부다 중국 눈치 봐요. 어제 장관 한 사람이 코로나를 한국인 때문이라고 해요.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중국 탓 해야지 왜 한국 탓 합니까. 성질이 납니다. 그 사람 중국 장관입니까? 너무 화가 납니다.”

“……………”.

뭐라 할 말이 없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에서 한 말을 두고 그러는 모양인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시 화를 내던 택시기사와는 그렇게 다시온 침묵을 안고 헤어졌다.

“(코로나19 국내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이었다”고 한 박 장관 발언에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 장관은 전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코로나19 확산세와 관련해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며 애초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 말은 정갑윤 미래통합당 의원과의 질문과 대답 과정에서 나왔다. 듣기에는 코로나19 확산 원인이 중국 책임이 아니라 순전히 한국 책임이라는 것으로 해석되는 말이었다. 박 장관의 뜻밖의 발언으로, 정부 책임을 추궁하던 야당 의원들이 오히려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야당 의원이 “그렇다면 (중국에서 들어오는) 한국인을 격리 수용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박 장관은 “하루에 2000명씩 들어와서 전원 격리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바이러스 특성 자체가 (입국시) 검역에서 걸러지지 않는다. 열도 기침도 없는 한국인이 중국에서 입국하면서 감염원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거듭 자국민의 책임으로 돌리는 듯한 뉘앙스를 거두지 않은 것이다. 이에 장관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야당 의원과 박 장관 사이에 고성이 오고갔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여론의 추이는 싸늘했다. 온라인상에는 네티즌들의 “도대체 어느나라 장관이냐”, “장관의 내로남불 후안무치”, “중국 눈치만 보는 정부”, “중국에서 들어온 중국인은 안보이고, 한국인만 탓하나” 등의 성토 글이 속속 올라왔다.

야당은 중국에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자국민에 책임을 전가하는 박 장관의 행태를 문제삼고, 아예 문재인정부의 인식 자체에 큰 오류가 있다고 십자포화를 날렸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2020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심재철 원내대표(왼쪽)가 인사말을 하는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연합]

이만희 미래통합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주무 장관이라는 박 장관이 국회에서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거듭 강조해 국무위원의 자격을 의심케 했다”며 “발병국인 중국의 눈치를 보며 중국인 입국 제한에 미온적이었던 정부의 책임을 우리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심재철 통합당 원내대표는 오후 의원총회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박 장관이 궤변을 늘어놨다”고 공세를 취했다. 이윤경 통합당 청년부대변인은 별도 논평을 통해 “우리 국민 가슴에 못을 박는 망언이 아닐 수 없다”며 “코로나19사태에 대해 신천지 탓, 대구 탓을 넘어 이제는 우리 국민 탓을 하고 있다”고 강력 비판했다. 야당에선 이와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은 박 장관을 당장 경질하라”는 요구까지 나왔다.

박 장관 인식과 발언에 대한 비판은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에서도 제기됐다.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은 “박 장관의 발언은 코로나19의 발원지는 중국임에도, 발원지는 배제하고 감염 피해자인 우리나라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인상으로 읽힐 수 있는 경솔한 발언”이라고 구두 논평했다.

정의당에서마저 비판이 나오자 여당으로선 또다시 당혹스런 입장에 처했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또 들린다며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왜이리 (코로나19)책임자들이 경솔한 발언을 쏟아내는지 정말 모르겠다. 걱정된다”고 했다. 올해 총선(4월15일)을 앞두고 악재가 계속 나오고 있어 매우 속상하다는 뜻이었다.

여권은 바로 직전에 당정청회의를 통해 ‘대구 봉쇄’ 얘기를 꺼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당은 물론 문 대통령까지 해명에 나서야 했으며, 그 와중에 발언 당사자인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대구·경북(TK) 민심이 싸늘해진 상황에서 박 장관의 ‘입’으로 인해 설상가상 전체 민심에 악재가 쌓이고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될 만 했다.

박 장관은 거짓 증언 논란으로도 도마위에 올랐다. 야당 의원이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 지금까지 일곱차례 걸쳐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를 계속 건의해왔는데, 왜 정부에서는 시행하지 않느냐”고 캐물었을때, 박 장관이 “의학적 관점에서 볼때 의협보다 감염학회가 더 권위가 있고 그 분야 전공의들이 모여있고, 감염학회에서는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 금지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즉, 감염학회에서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 금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해 그렇게 했다는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나중에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 박 장관의 위증 논란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문재인정부에서 코로나19에 관련해 책임있는 인사들의 일관된 이같은 ‘남의 탓’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장애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고있다. 이들의 “우리는 잘하고 있는데, ○○○ 때문에 문제가 크다”는 식으로의 접근법은 코로나 극복 해법을 찾기 요원하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들은 문재인정부의 극심한 중국 눈치보기, 신천지 탓으로만 돌리기 등에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사실”며 “그런데 여권은 이런 민심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느나라 대통령인가’라는 말과 함께 문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 등으로 상징되는 성난 민심을 여권이 보듬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상당히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책임에 인색한 정부의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총선에서 심판론이 더욱 불거질 수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아 참, 그러고보니 새벽에 만난 택시기사가 헤어지기 직전에 던진 말이 생각 난다. “제가 일흔살이 넘었어요. 웬만하면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나이죠. 세상 각박하게 남 욕하고 싸우면 좋을 일 있나요? 좋은게 좋은 거지요. 그런데 코로나로 세상이 난리인데, 정부에서는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하는 사람 없어요. 이거, 말이 됩니까.”

그 택시기사 말대로라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 한두사람은 나왔어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코로나19 대응에 안일한 점이 있었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나중에 책임질 것 있으면 지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코로나19를 이기는데 한마음으로 가야 하니까, 잠시 불편하시더라도 믿고 정부가 실행하는 대책을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중에 잘잘못은 따지고, 지금은 코로나를 이겨야 할 때입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국민 건강에 대한 주무 장관인 박 장관이 최소한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이 기사는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는 어쨌든 터졌고 온국민은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데 책임 지려는 자세 갖춘 이 하나 없는 대한민국 정부, 이게 울어야 할 일 아니면 뭔가.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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