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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이집트 탐방기⑦] 왕가의 계곡, 멤논 울음 미스터리 [함영훈의 멋·맛·쉼]

[헤럴드경제, 룩소르=함영훈 기자] 룩소르 동쪽 강변에 정박한 크루즈의 아침은 서쪽 ‘왕가의 계곡’에서 박차오르는 열기구의 향연을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룩소르 변 나일강 서편 황토색 사막지대에서 떠오른 총천연색의 열기구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당연한 얘기지만, 동쪽에서 해가 떠, ‘각광’ 처럼 벌룬들을 비추기 때문이다.

해질 때 동편 건물이 붉게 물들 듯, 해뜰 때 서쪽의 피사체가 가장 빛난다. 피라미드를 이끄는 카이로 나일강 서쪽 기자(Giza) 지역의 사람머리 사자몸 석상, ‘호르 엠 아케르’ (지평선의 호러스 신) 효과 비슷한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인데도 굳이 재론하는 이유는, 이집트는 초록색 생명의 땅, 동쪽 빛이 황토색 죽음의 땅 서쪽까지 살리는 구도에 매우 큰 의미를 둔다.

국토의 90%가 메마른 땅이기에, 이같은 이집트의 5000년 된, 나일강 동서 구분 프레임에는 상생, 영생, 윤회 등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왕가의 계곡은 투탕카멘 왕릉을 제외하곤 모두 도굴 당했지만, 3500년전 신비 앞에서 여행자들은 인생샷 찍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로 즐겁다.
나일강 서쪽 왕가의 계곡에서 박차오른 아침 열기구 행렬. 동편의 태양을 가장 잘 받는다.
이집트 나일간 서쪽의 죽음의 땅에 있는 ‘왕가의 계곡’은 역설적이게도 삶의 땅 동편에서 아침 햇살이 비출때 찬란한 금빛이 된다. 내세의 행복은 부장품을 많이 갖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땅 동방에서 비추는 햇살의 크기 만큼 빛나는 것이다. 64개 왕릉 중 투탕카멘왕 것을 빼고 부장품들은 모두 도굴당했다. ‘도굴 참상의 교훈’은 결국 자기가 부귀영화를 짊어지고 저승에 갈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살아가고 있는 후세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룩소르 도심을 관통하는 나일강의 서쪽은 사자(死者)의 도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이며 이곳에 그 유명한 왕과 여왕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거대한 계곡이 있다.

고왕국을 다스렸던 왕들이 자신들의 안식처로 거대한 피라미드를 지었다면, 중왕국 말기와 신왕국 시대의 왕들은 룩소르 서쪽 계곡의 동굴에 무덤을 마련했다. 잘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계곡에 무덤을 만든 것은 매장품의 도굴을 막기 위해서였다. 내세에 까지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숱한 부장품을 넣는 것인데, 지상에 두었더니 모두 없어져 겉으로 보기엔 무덤같지 않은 야산의 지하를 묘지로 선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가의 계곡 가장 높은 봉우리는 기자-사카라의 피라미드를 닮아 눈길을 끈다. 지상에서 지하로 가다가 미련이 남아서였을까?

지하 왕릉 관문엔 늘 호루스의 매가 날개를 펴서 안아준다.

왕가의 계곡에선 주로 신왕국시대(BC 1550~1073년) 외세 힉소스를 몰아내고 이집트 영토를 최대로 넓힌 18왕조(투트모세 왕가, 투탕카멘 등), 람세스·세티·아멘모세·타우세레트 등 왕가가 경쟁하던 19왕조, 람세스 왕가 독점시대였던 20왕조의 임금과 왕실 가족의 묘 64기가 발견됐고 그 중 9기만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왕가의 계곡 지하왕릉의 구조는 도굴 방지를 위해 깎아지른 듯한 암벽 위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그 지하에 미로(迷路)로 연결된 보물 창고, 분묘 등을 두는 것이다.

키 작은 투탕카멘의 미이라는 분명 소년왕인데 미이라 얼굴은 노인 같다. 미이라가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존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하는데 찍는 사람이 좀 있다. 관리인에게 ‘원 달러’ 사례를 하면 ‘사진 지우라’는 말은 못하는 것 같았다.

투탕카멘왕 지하왕릉 입구

왕가의 계곡 발굴연구진들은 발굴된 순서에 따라 일련번호를 붙였다. 킹스밸리(King's Valley) 이니셜에 숫자를 더한 것이다.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곳을 제외하고 KV1 람세스7세, KV2 람세스4세, KV3 람세스3세의 아들, KV4 람세스11세, KV5 람세스2세의 아들들, KV6 람세스 9세, KV7 람세스2세, KV8메렌프타 KV9 람세스 5세와 6세, KV10 아멘메세스, KV11 람세스3세, KV13 바이 KV14 타우세세트 & 세트나크트, KV15 세티2세, KV16 람세스1세, KV17 세티1세, KV18 람세스 10세, KV19 람세스 멘투헤르케페셰프, KV20 투트모세2세(표지판은 1세로 나왔는데 오기인 듯) & 핫셉수트(투트모스 2세의 부인), KV22 아멘헤텝 3세, KV23 아이, KV34 투트모세 3세, KV35 아멘헤텝 2세, KV38 투트모세 1세, KV42 핫셉수트 메르예트-라 KV43 투트모세 4세, KV46 유야 & 투야, KV47 시프타, KV57 호레메브, KV62 투탕카멘 등이다.

무덤 내부의 구조는 대동소이하다. 계단과 경사로, 생활용품을 넣어둔 부속실, 종교의식 등에 사용되던 도구를 넣어두던 전실, 관을 넣어둔 현실(玄室)로 구성된다. 넓이 2m남짓한 복도는 전세계 방문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흔히 우측통행으로 질서를 지킨다.

소년왕 투탕카멘의 미이라. 사진 찍지 말라고 하지만, 찍을수 밖에 없음을 설명한뒤 촬영비를 조금 내면 된다.

신전의 종점이 지성소라면, 지하왕릉의 종점은 현실(玄室)이다. 몇몇 무덤은 도굴 방지를 위해 현실에서 무덤이 끝나는 양 처리하고는 지하 깊은 곳에 암굴을 두기도 했지만 도굴을 피하지는 못했다.

19세기 영국인 탐험가 조반니 베르지오니가 람세스1세, 세티1세의 무럼을 발견한 이후 숱한 발굴이 이어졌지만, 보물 찾기에는 실패했다.

최대규모인 세티 1세의 능은 길이가 100m나 되며, 통로길과 널방이 15개 있다.

람세스 2세 가족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KV5 고분에 들어가 2개의 복도와 여러 기둥이 떠받치는 중앙홀을 지나면 T자 모양으로 배열된 48개의 방과 연결된 통로가 나타난다. 이 통로의 교차점 부근에 내세를 관장하는 오시리스, 람세스 2세, 이시스여신상 부조가 순차적으로 나타난다. 람세스 2세에겐 52명의 아들을 포함해 100여명의 직계비속을 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든 고분은 발굴 당시 거의 비어있고 덩그러니 벽화와 부조만이 자리를 지켰다. 20왕조가 끝나고 2500년 가량 버려지다 시피 했던 곳이다.

왕가의 계곡 한복판 전경. 여행자들 이 왕릉, 저왕릉 탐방하고 있다. 가운데 왕릉 입구는 우리나라 천마총을 닮았다.

투탕카멘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이유는 후대왕인 아이(KV23), 호레메브(KV57) 능들이 이 고분의 위와 옆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2년 하워드 카터가 집요하게 발굴에 나선 끝에, 소년왕 투탕카멘 재위때 모든 권력을 휘두드런 참모에서 투탕카멘 사후 차례로 왕좌를 나눠 가진 아이, 호리메브 왕묘 밑에서, 보물 가득 남은 투탕카멘 고분을 발견한 것이다.

왕가의 계곡에서 나와 남쪽 이웃계곡에 가면 안쪽에서부터 핫셉수트 장제전(Deir el Bahari), 여왕의 무덤, 화려한 벽화로 장식된 귀족 무덤, '델 엘 메디나'(왕들의 계곡을 건설한 노동자 마을)을 만날 수 있다.

투트모세2세의 부인 핫셉수트에 대해서는 이집트 최초의 여왕이냐, 천추태후 식 섭정자일 뿐이냐 하는 논란이 여전하다. 섭정을 넘어 정복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수많은 오벨리스크를 만들도록 했으며, 스스로 파라오를 칭했다.

그녀가 죽고 아들 투트모세 3세는 파라오 호적에서 핫셉수트를 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든 독창적이고 웅장한 3층의 테라스식 신전, 핫셉수트 장제전은 룩소르의 대표 이미지이기도 하다.

핫셉수트의 장제전

이어 귀하게 죽은 자들의 마을 초입이자, 서안의 녹지가 끝나는 지점, 멤논의 거상(Colossi of Memnon)이 나타난다.

아침햇살이 비칠 때, 앉아있어도 19.5m의 거구인 멤논의 거상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고 전해진다. 제18왕조인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의 신전에 세워졌는데, 신전은 지진 등으로 인해 사라졌다.

몇몇은 트로이전쟁 때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동일한 상징이냐를 두고 논란을 하는데, 정답은 “아니다”이다.

이름을 그리스인들이 멤논이라고 지었을 뿐이다. 이유는 어느날 이른 아침 햇살이 비칠 때 미 석상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났는데,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아가멤논 왕이 그의 어머니 이오스에게 인사하는 소리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멤논의 거상’이라고 불렀다. 이집트인 나름의 이름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역시 이집트의 찬란한 문명에 자기 역사 한줄 걸치려는 침략자들의 속셈일 뿐이다.

멤논의 거상에서 멤논은 그리스인들이 붙였다. 트로이전쟁 전사 아가멤논과 동일시한 역사왜곡이다. 이집트 왕가의 계곡 수호신들이다. 그 위용은 대단하지만, 영화 스타워즈의 병사들을 닮아 오히려 친근감이 든다.

이 소리는 아주 오래전 이집트인들도 들었다. 거상 북쪽에 아멘호텝 왕의 어머니 입상이 있었는데, 지진으로 파괴되고 바람부는 날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아가멤논이라는 이름을 듣도 보도 못한 이집트인들은 이를 ‘신이 전하는 소리’라고 믿었다.

황량한 벌판에 우뚝선 이 거인이 바람에 저항하며 내는 소리는 2020년 지금도 있다.

○‘新이집트 탐방기 글 싣는 순서’ ▶2020년 2월11일자 ①아이다 공주의 누비아가 없었다면… ②스핑크스 틀렸다, 수호신 호루스가 맞다 ③소년왕 투탕카멘 무덤방은 장난감房 ④에드푸의 반전매력, 에스나 물살 제어기술 ⑤나일강물 맛 보면, 나일로 꼭 온다 ▶2월18일자 ⑥제정일치 룩소르, 신전은 王와 神의 토크라운지 ⑦3500년전 모습 왕가의 계곡…멤논 울음 미스터리 ⑧권력 탐한 모정, 너무 나간 아들 ‘핫-투’ 갈등 ▶2월25일자 ⑨석공의 눈물 밴 미완성 오벨리스크 ⑩호텔이 된 왕궁, 시장이 된 옛호텔 ▶3월3일자 ⑪아스완-아부심벨, 곳간에서 문명 난다 ⑫필래와 콤옴보 문명 덧쓰기, 없애기 ▶3월10일자 ⑬찬란한 박물관, 개발중인 도시, 두 풍경 ⑭신비의 사막 탐험, 홍해 레저 반전매력 ⑮미사포야? 히잡이야? 문명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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