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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이집트 탐방기⑥] 룩소르 신전, 나일강 범람 막을 희망 성지 [함영훈의 멋·맛·쉼]

[헤럴드경제, 룩소르=함영훈 기자] 대부분의 이집트 탐방객들에게 아스완에서 룩소르까지 200㎞가량은 배로 가니 오래 걸리고, 카이로에서 룩소르 660㎞는 비행기로 이동하니 빠르다. 배는 느림의 미학을 충족시키고, 항공편은 타임 슬립 여행의 조바심을 달랜다.

세계 최대의 야외 박물관, 3500년전 고대 이집트 원형으로 불리는 룩소르는 이집트 나일강의 한복판에 위치해, 상이집트 누비아민족을 포함한 남쪽 이집트를 이끌고, 북쪽에 있는 하 이집트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고대 통일 이집트의 정치, 종교, 문화의 중심지, 나라의 수도로서 1600년간 위용을 과시한 곳이다.

아울러, 일신교, 다신교 논쟁을 통해 신학이 풀어야 할 과제들을 풀어놓은 장소라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도시이다.

옛 수도와 현재 수도의 이동시간은 불과 1시간40분. 카이로는 변했지만, 룩소르는 3500년간 좀 마모되고 일부 깨졌어도 지상의 것들이 크게 변하지 않아, 카이로발 룩소르행 카이로항공 국내선은 타임머신이 된다.

배로 북상한다면 아스완-콤옴보-에드푸를 지나 배가 느려지면서 나일강 물살조절댐을 통과하는 에스나부터 행정구역상 룩소르주에 속한다.

카르낙 신전의 열주는 강한 위엄을 주지만, 여행자의 인생샷, 숨박꼭질 장소이기도 하다.

이집트에서 가장 큰 신전이 있는 곳, 왕 64명의 무덤이 있는 곳, 1600년간 이집트를 이끈 곳 등의 지표만 보더라도 룩소르는 전성기 때 세계 5대도시로 꼽히던 서라벌 같은 도시였음을 느낄수 있다.

지금은 인구 40만명이 채 안되지만, 중왕국~신왕국 경계점 기원전 1500년 전후해서는 이곳 인구가 1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고려의 사학자 일연은 “신라 전성기에는 서라벌에 17만8936호가 있고, 35개의 금입택(金入宅:황금을 입힌 집)이 있었다”고 썼는데, 5인가족으로 잡으면 90만명, 6인가족 기준 107만명이 살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경주 인구는 25만이 채 안된다.

역사의 흥망은 어떻게 환경을 관리하고 사람과 도시를 제대로 키우느냐의 여부에 따라 이렇듯 달라진다.

카르낙 신전의 호위무사, 스핑크스들

대기와 풍요를 관장하다 나중엔 전지전능한 신으로 해석된 아몬(Amon)은 이집트 신 중의 신이고, 테베(룩소르)는 고대이집트의 수도이자 아몬의 도시이고, 카르낙 신전은 아몬 대신전으로 불리면서 이집트 최대, 최고 권위 신전으로 꼽힌다. 즉 ‘룩소르=이집트 최고 신도’이다.

T자 형의 거대 성전, 카르낙 신전은 기원전 2000년경 중왕국 시대 때 짓기 시작해 신왕국 제18 왕조 때부터 틀을 갖추었고, 앗시리아 등 외세의 침공이 있을 무렵인 20왕조까지 크고 작은 공사를 계속했다. 틀을 갖추는데에만 400년 넘게 걸린 것이다.

도시 한복판 나일 동편 강변도로 바로 옆에 있는 룩소르 신전이 이 도시를 대표하는 신전 같지만, 카르낙 아몬 대신전이 수백년 앞선 형님 뻘이다. 아몬신의 부인 무트 여신도 함께 모시는 곳이다. 나중에 룩소르 신전이 카르낙 신전에 알현하러 가듯, 둘을 연결하는 3㎞ 길도 뚫었다.

카르낙 신전 입구에 들어서면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에 도열해 방문객을 환영한다.

아몬 신전은 파피루스 모양의 거대한 열주실과 인공 호수, 역대 왕들이 만든 10개의 거대한 탑문과 40m 높이의 건축물, 오벨리스크, 수많은 벽화와 조각으로 가득하다.

카르낙 신전의 여신과 여왕

아몬 신전의 안뜰에서는 얼굴은 양, 몸은 사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스핑크스와 람세스 2세 조각, 클레오파트라 보다도 아름답다는 네페르타리 왕비 석상을 만날 수 있다. 권력욕 많았던 대비 나아가 파라오가 됐던 여제 핫셉수트의 오벨리스크가 주된 유적이다. 수많은 신과 파라오를 새긴 조각, 상형 문자, 동식물 조각 등 흥미로운 조각과 건축물이 많다.

정신을 상징하는 카르낙 신전과 왕과 신의 대화를 통해 실행을 의미하는 룩소르 신전간 연결로에는 신의 혼백을 입은 동물상징몰들이 좌우로 호위한다.

문묘 성균관의 600년 넘은 은행나무 굵기 만한 기둥이 ‘기둥 반 공간 반’ 빼곡이 줄지어 선 대열주실의 위용은 대단하다. 아몬 신전의 중심이다. 길이 100m에 폭이 53m에 달하는 웅장한 공간이다. 열주실 기둥의 높이는 23m와 15m짜리 두 종류인데, 무려 134개가 서 있다. 누구든 열주 사이에 서면 인생샷이다. 열주들이 주는 위압감은 동반자와 열주 사이 숨박꼭질 하면서 푼다. 만지는 피라미드 처럼 숨는 열주는 친근한 존재가 된다.

열주(줄기둥)에 새겨진 조각과 벽화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아몬을 비롯한 여러 신들과 파라오, 세련된 문양과 상형 문자가 새겨진 조각과 벽화를 보고 있으면 아몬 신전이 수천 년 전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왕가와 귀족들의 휴양시설이었던 카르낙 신전의 사각 인공호수

신전 북동쪽에 가면 병사들이 접근금지라며 통제하는 곳에 호수가 있다. 고대 어느시점엔가 왕실의 온수풀을 포함한 휴양시설이었다. 지금도 그 물은 청량하다. 다만 시대가 바뀌어 조금 더 좋은 룩소르 호텔에서 머물기를 원할 것이다.

네모난 인공 호수옆엔 휴게실이 있어 멀고 먼 카르낙 신전 탐방하다 쉬어가는 곳이다. 미국사람, 유럽사람, 중국사람이 짧은 고고학적 지식으로 논평하다 물어보는 자리이다. 말을 걸면 늘 남의 나라 가서 흥분해 주듯, 과도한 제스처로 대단하다고 하는데, 어느면에선 문화재적 가치가 떨어지는 돌조각에 대해 정비-복원했으면 하는 바람, 그 자체로도 좋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룩소르 신전에 새겨진 상-하 이집트 통일의 정당성을 표현한 부조

룩소르 신전은 도시 한복판에, 그것도 나일강 동편 중심지에 있어 더욱 유명한지도 모른다. 카르낙이 신과 선대왕에 대한 경외심의 상징이라면, 제전을 치르는 가장 중요한 사원 룩소르 사원은 신와 왕의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로 민중들에게 각인돼 있다. 현안인 나일강 범람 등을 해결하는 마지막 장소이기 때문이다.

룩소르 신전엔 람세스 왕가를 닮은 석상이 곳곳에 있다.

비록 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이라는 세평에도 불구하고 람세스라는 당대 신 같은 왕이 축조에 큰 영향을 미친 신전이라 그 위용은 대단하다. 카르낙이 중왕조 후기에 착공했다면, 룩소르는 신왕조 중기에 만들어졌다. 카르낙과 룩소르 신전을 잇는 길은 성스러운 길이라고 불린다. 당대 민생의 최대 현안이던 나일강 범람에서 민중을 구제해달라는 의례가 두 신전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룩소르 신전 입구에는 람세스 2세를 조각한 거대한 석상 3개와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한 개는 기증인지 압박인지 확실치 않은 채 파리 콩코드 광장에 서 있다. 이집트인들은 위압적 기증이었다고 해도 빼앗겼다고 여기지 않는다. 자신들의 찬란한 문화가 세계최고 문화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랜드마크가 된 점은 그만큼 자신들의 문명이 탁월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룩소르 신전 정면엔 오벨리스크 하나가 없다. 이것은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 있다.

대칭이었어야 할 오벨리스크가 한 개 없으니, 룩소르 신전 앞에서 아무리 대칭 사진을 찍으려 해도 안된다. 하나의 오벨리스크를 가운데 둬서 사진 찍으하면 한개의 람세스 석상이 가려져 버린다.

람세스는 이집트의 최대 영토 크기에서 몇 대 앞 왕인, 고구려 장수왕 같은 패기의 투트모스 3세때 보다 적지만, 오랜 재위 기간 치세를 떨치며, 자신의 많은 업적을 여러 신전에 아로새긴다. 몇몇 이집트인 조차 람세스때 가장 영토가 넓은 줄 착각한다. 사실 신왕조때 메소포타미아 강대국, 아프리카 경쟁국한테 많이 침탈을 당했고, 심지어 람세스 2세 이후 다른 왕가가 득세했음에 비춰보면 람세스때 결코 최고의 전성기라고 하기 어렵다.

룩소르 신전, 람세스 석상

룩소르신전의 많은 석상들은 람세스 2세가 세운 것이다. 어쩐지 팔을 X자로 가슴위로 모은채 이집트 왕관을 쓴 석상의 인상착의가 최남단 아부심벨 대신전 제1실, 소신전 정면의 것과 닮았다 했다.

주지하다시피, 고대 에티오피아(지금은 수단)와 국경을 접한 아부심벨에 진출해 람세스 왕가의 모습을 새긴 것은 누비아민족까지 품에 안은 자신들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카르낙에 뒤져도 고대 도시 테베의 랜드마크 답게, 룩소르 신전은 전성기를 일궈낸 람세스 왕가 등 고대 이집트의 영광을 대표한다. 카르낙에서 나라의 안녕을 신에 빌면, 룩소르신전에서 왕이 신의 가호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최종적으로 전한다. 이런 룩소르 신전에서의 제전의식은 바로 신와 왕 간의 대화를 의미한다. 냉정하게 보면, 왕은 신을 참칭하지만 사실상 왕이 정치와 제사를 모두 다 하는 제정일치의 모습이다.

제전의식은 왕조에 따라 짧께는 열흘 길게는 3주이상 이어졌다고 한다. 그래야 백성들도 “왕이 신과 오래 오래 얘기하는 구나라고 믿었을테니. 많은 문제 해결을 신에게 의존했던 당시 기준으로 치면, 백성을 대표한 왕이 신에게 태평성대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설득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新이집트 탐방기 글 싣는 순서’ ▶2020년 2월11일자 ①아이다 공주의 누비아가 없었다면… ②스핑크스 틀렸다, 수호신 호루스가 맞다 ③소년왕 투탕카멘 무덤방은 장난감房 ④에드푸의 반전매력, 에스나 물살 제어기술 ⑤나일강물 맛 보면, 나일로 꼭 온다 ▶2월18일자 ⑥제정일치 룩소르, 신전은 王와 神의 토크라운지 ⑦3500년전 모습 왕가의 계곡…멤논 울음 미스터리 ⑧권력 탐한 모정, 너무 나간 아들 ‘핫-투’ 갈등 ▶2월25일자 ⑨석공의 눈물 밴 미완성 오벨리스크 ⑩호텔이 된 왕궁, 시장이 된 옛호텔 ▶3월3일자 ⑪아스완-아부심벨, 곳간에서 문명 난다 ⑫필래와 콤옴보 문명 덧쓰기, 없애기 ▶3월10일자 ⑬찬란한 박물관, 개발중인 도시, 두 풍경 ⑭신비의 사막 탐험, 홍해 레저 반전매력 ⑮미사포야? 히잡이야? 문명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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