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쇠·돈키호테형 이정현의 도전에 주목
수감된 박 전 대통령 명예회복 제1기치로
이낙연 등 상대 강력해 선전여부 불투명
암튼 정치1번지 종로는 초미 관심지역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지난 4일 청와대 앞에서 4·15 총선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 |
지난 2007년 여름께였을것이다. 아침마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후보 동선과 함께 그날 분위기를 캐물었다. 오늘 기삿거리가 뭐있냐며 직설적으로 묻기도 했다. 그는 자세히 그날의 예상 이슈와 판세 해석을 곁들여줬다. “오늘은 이런, 이런 게 있어요. 이런,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근데 우리 후보 기사 잘써주세요.” 이런 식이었다. 아침마다 통화했던 이는 바로 이정현 의원(무소속)이었다.
당시는 한나라당 대선주자 경선이 한창일때였다. 상대방 진영에 비해 한나라당 대선주자의 지명도가 컸기에 경선 승리는 바로 대통령에 성큼 다가서는 의미가 있었음을 각 후보 측은 잘알고 있었다. 두 주자는 이명박, 박근혜 후보였다. 다 알다시피 이 의원은 당시 박 후보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그때 이 후보와 박 후보 측 캠프는 경선 룰을 놓고 피튀기는 전투 상태였다. 서로 유리한 방식으로 경선을 치르기 위한 배수진이었다. 대선후보 결정 방식의 핵심인 오픈프라이머리는 그때 메가톤급 이슈였다. 박 후보의 대변인격이었던 이 의원은 그래서 매일 침이 닳도록 박 후보 쪽 논리를 장황하게 강조하곤 했다. 그러다가 간혹 그에게 전화가 오기도 했다. 항의성이었다. “아니, 김 반장. 실컷 설명했는데 왜 그쪽(이명박 후보) 입장만 크게 쓰고 우리 입장은 작게 취급합니까? 언론이 그러면 됩니까?” 내 입장도 안내놓을 수 없어 이렇게 가끔 티격태격했던 생각이 난다.
그때 당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의 그의 별명은 ‘돌쇠’였다. 주군에게 모든 충성을 다하는, 좀더 상세하게 표현하자면 주군을 위해서라면 소나기처럼 퍼붓는 화살에도 떡 버티고 서 있을 돌쇠 스타일. 그의 모습은 그때 그랬다. 그 주군은 삼척동자도 척 알만한 이, 지금은 수감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당시 이 의원은 24시간을 박 후보를 위해 뛰었다. 그 경선에선 패했지만, 그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고 다음 대선에서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중순께 이 의원이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확정받았다는 뉴스를 봤을때, 지난 2007년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의원은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홍보수석때인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나중에 재판에 넘겨졌고, 최종 벌금형으로 귀결됐다. 유죄확정 판결이었지만 그럼에도 의원직은 유지됐다. 사실 이 의원이 KBS 보도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다. 이 의원이 정정보도를 요청한 것이라고 시종일관 주장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전화를 받았다는 이와 이 의원 사이에서의 해당 기사를 보는 근본적인 간극이 존재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선 누가 옳고 그름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주군을 위해서라면 앞뒤를 생각지 않고 직설적 화법을 마다않던 이 의원의 스타일이 홍보수석이 된 후에도 여전했을 것임은 자명했을 거라는 개인적인 생각과 2007년 경선때의 그를 얼핏 떠올리게 됐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이런 이 의원에 대한 상념을 재차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또 생겼다.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이정현 의원이 올해 4·15 총선에서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이 의원은 지난 4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한민국의 봄을 알리는 전령이 되기 위해 종로에서 출마하고자 한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올해 총선에서의 종로는 어느 곳 이상의 핫이슈 지역이라는 점에서 이 의원의 도전이 내 눈길을 끈 것이다. 정치1번지로 불려왔던 종로의 상징성이야 굳이 추가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특히 이번 총선에선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8개월째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가 앞서 출사표를 던진 곳이고, 제1야당 수장인 황교안 대표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곳이어서 이들의 전투구도는 벌써 세간의 입방아를 낳고 있는 곳이어서 더욱 그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의원의 출사표 멘트였다. 그는 “이제 문재인 정권을 끝내야 한다”고 했다. 타깃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론으로 정한 것이다.
대구 수성구 그랜드 호텔에서 대구·경북 여성사랑협의회, 대구·경북 학생·청년연합회, 대구·경북 교수·전문가 모임 주최로 지난달 17일 열린 ‘폭망이냐 정치쇄신이냐 대구·경북선택 대한민국 운명이 결정된다’ 포럼에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무소속 이정현 의원(오른쪽)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 |
혹자는 말한다. 한때 당 대표까지 했던 인물이지만 주군을 잃어 힘을 상실했고, 한때 대한민국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국정농단 의혹의 책임자 중 하나인 그가 종로에서 출마를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낯뜨거운 일인지 아느냐고. 혹자는 또 말한다. 오죽하면 수감된 주군을 위해, 또 자신의 명예회복을 하기 위해 현재 거물급들의 투쟁마당인 종로에서 도전장을 던졌겠냐고. 전자가 이 의원을 폄하하는 시각이라면, 후자는 약간의 긍정적 견해를 내포하고 있을게다.
황교안 대표가 종로에 가세함으로써 종로 선거판이 더 뜨겁게 가열될지, 아니면 다른 후보군이 더 들어와 새로운 국면을 형성할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무튼 이 의원의 도전장으로 인해 종로 선거는 또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확실하다.
이 의원은 일반 정치인들에 비해 독특한 캐릭터를 지녔다. 앞에서 ‘돌쇠형’이라고 했지만, 그의 또다른 스타일을 꼽자면 ‘돈키호테형’이라 할 수 있다. 직선적이고 좌충우돌이며 때론 공상적이며, 자신만의 정의감을 중시하는 성격이다. 앞뒤 가리지 않는 급하고도 불같은 성격도 지녔다.
이 의원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런데도 그는 보수당에 그의 꿈을 뒀다. 그는 한국당 전신인 신한국당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고, 지난 1995년부터 보수정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만 출마해왔다. 호남에서 보수정당의 입지는 좁았기에 그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호남에서 “보수로 뚫겠다”는 그의 뜻은 무모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는 거기에 천착했다. 그러니 한쪽에서 보면 돈키호테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만남과 인연도 그런 성격이 있어 가능했다. 이 의원이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4년이었다. 17대 총선에서 이 의원은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광주 서구을에서 얻은 표는 불과 1.03%. 남에게 얘기하기도 민망한 성적표였다. 이를 계기로 당시 당 대표였던 박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박 대표 역시 호남에서의 세력확장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그 해결 방향을 찾는 일이 절실할때였다.
언젠가 이 의원과 만났을때 그때의 스토리를 이렇게 털어놨다. “박(근혜) 대표를 만났는데, 거의 30분 제가 떠들었어요. 호남을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계속 떠들었어요. 얘기가 다 끝났을때 박 대표는 그냥 빙그레 웃더군요.”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그 다음날인가 박 대표한테 전화가 왔단다. “저하고 일해보시지 않을래요?”. 자세히는 몰라도 아마 자신의 열정에 호의를 보인 것 같다고 이 의원은 당시를 회고한 적 있다. 이 의원은 곧바로 한나라당 수석대변인으로 일하게 됐고, 이후 ‘박근혜의 입’이 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의혹으로 탄핵되기까지 이 의원은 출세가도를 달렸다. 2004년때 광주에서 불과 1.03% 표를 얻는 수모를 겪었던 그는 2014년 7월 보궐선거에서 고향인 전남 순천 곡성에서 당당히 당선되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호남에 보수의 깃발을 꽂은 것이다.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는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정치적 중량감을 확보했고, 이런 힘으로 새누리당 대표까지 역임했다. 물론 이 의원의 ‘백조 변신’엔 박 전 대통령의 후원이 늘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 의원은 이 사실을 잊은 적 없다고 했다. ‘주군 박근혜’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은 ‘정치 방랑자’였다고 이 의원은 직접 말한 적 있다.
“호남에서 계속 고배를 마시고, 이도저도 안돼 정치 외곽에 전전하던 시절, 고향에 내려가기 겁이 났어요. 집에선 물론 고모들까지 ‘너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것이냐,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냐’고 하면서 걱정만 해주니 참 서럽고 답답한 때였죠.” 이런 그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이후 날개를 펴게 됐으니, 이 의원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관점이 어떨지는 굳이 말안해도 될 것 같다. 이런 그가 종로에 출마한다는 것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겹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선거란 뚜껑을 열어야 하는 법.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상대 진영이 워낙 막강하기에 이 의원의 종로 도전은 주군을 잃은 무의미한 한풀이 시도로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잃은 민심을 되잡기 위한 무모한 도전으로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선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의원이 노리는 것은 문재인정부의 줄기찬 적폐청산 시도와 그에 동반된 이념갈등의 심화, 거기에 지친 유권자들의 표심일 것이다. 작게는 자신의 명예회복, 크게는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애절하게 외치고 다닐게 분명하다. 어느 게 어필할까.
이 의원의 종로 도전, 중도포기가 없다면 그래서 그의 총선 성적표가 궁금한 것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