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서병기 연예톡톡]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 기구한 자신을 기타와 음악으로 스스로 구원하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에릭 클랩튼(74)의 삶은 극적이다. 바닥과 정상을 모두 경험한 후 노년을 맞고 있다.

에릭 클랩튼의 음악과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원제: Eric Clapton: Life in 12 Bars)이 지난 23일 개봉돼 호평을 받고 있다. 영국 출신의 에릭 클랩튼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 최초 3번 연속 입성, 그래미 어워드 총 18번 수상에 빛나는 뮤지션이다. 서울에서도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 그의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원더풀 투나잇’, ‘레일라’, ‘티어스 인 헤븐’ 정도는 안다.

영화는 클랩튼의 인생이 비극적인 가족사, 세기의 사랑, 알코올 중독 그리고 갑작스런 어린 아들의 죽음 등 만만치 않은 상황들을 접하면서 삶이 바뀌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어려서 엄마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중에 할머니로 밝혀지고, 누나가 어머니(생모)가 되는 어지러운 현실을 접하고, 또 엄마에게 거부까지 당한 클랩튼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성적인 그를 구원한 것은 기타와 음악이다. 그림과 만화그리기도 좋아했다. 대부분 혼자 하는 것이었다.

에릭 클랩튼은 블루스 기타의 거장으로 추앙받는다. 사실 그의 음악은 블루스에 기반하지만 팝과 록 성향이 가미돼 있다. 어쨌든 백인 기타리스트로는 이례적이다.

한 흑인 뮤지션은 “백인들은 소울이 없다. 힘든 일을 겪어봤냐요”라며 백인은 블루스 뮤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클랩튼은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모두 담아 블루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블루스를 완벽히 이해하는 순간, 흑인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좋아할 수 있다고 한다. 클랩튼은 밴드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로 유명 스타가 됐으나, 이 밴드가 블루스를 멀리하자 바로 탈퇴하고 LA에서 전설이 되는 밴드 크림을 결성했다.

내향적인 성격의 클랩튼이 자신의 일생을 영화화 하는 걸 쉽게 허락했을 리 없다. 그와 25년간 친구로 남아있는 미국 제작자 겸 감독인 릴리 피니 자눅이 영화화를 제안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됐다. 이때문에 다큐멘터리로서는 풍부한 자료와 지인들의 인터뷰가 대거 포함돼 있다.

이 영화를 보면, 1970년대부터 80,90년대를 거쳐가는 영국과 미국 밴드음악사가 제법 잘 나타나있다. 에릭 클랩튼이 교류했던 사람들,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롤링스톤스’ 믹 재거, ‘비틀스’ 조지 해리슨, 밥 딜런, ‘블루스 뮤지션’ 비비 킹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시대의 뮤직 아이콘과 우정을 나눴던 특별한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이목이 집중된다.

기타의 신도 질투했던 지미 헨드릭스가 약물과다복용으로 1970년, 27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큰 충격을 받고 슬럼프에 빠졌다. 같은 기타리스트로 절친인 비틀즈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와 이루기 어려운 사랑을 나누고, 그 절절한 마음을 명곡 ‘레일라(Layla)’에 담았다.

블루스 레전드 비비킹과의 교류도 흥미롭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비비 킹이 등장하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둘은 2000년에 ‘Riding With The King’이라는 이름의 블루스 앨범을 함께 발매하며 2000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블루스 앨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에릭 클랩튼의 방황까지도 지켜봐 왔던 비비 킹은 2007년 크로스로드 기타 페스티벌에서 클랩튼을 “내 친구(클랩튼)보다 더 훌륭하고 자비로운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라고 소개하며 연이은 비극과 슬럼프를 음악을 통해 극복한 후배이자 친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클랩튼은 41살때인 1986년 뒤늦게 낳은 5살 아들 코너가, 청소를 하다 창문이 열려있던 53층 아파트에서 추락사하는 아픔을 겪는다. 이후 아들을 추모하며 평생을 살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나온 음악이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이다.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잘 살아나있고, 곡 전반에 애절함과 애틋함이 잘 담긴 이 노래는 1992년 올해의 음반 등 그래미상 6개 부문을 휩쓸었다.

에릭 클랩튼은 순탄한 음악 인생이 아니다. 그 옆에는 항상 술과 마약, 여자문제로 시끄러웠다. 공연중 꼬냑을 한 병 다 마시는 바람에 공연이 30분만에 끝나 관객의 항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완전히 망가졌다. 자살 안하는 유일한 이유는 “술을 먹을 수 없어서”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추락과 고통을 딛고 스스로 일어났다. 어린 시절 이별과 불행, 슬픔과 고통을 블루스로 승화시켰듯,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소장한 기타 100개를 경매에 붙여 알콜중독자 재활시설을 만들었다. 인생의 격동, 명과 암을 모두 통과하는 과정과 그 후 차분해진 레전드를 보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묘미다.

/wp@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