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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속도냐 안전이냐’…고민 깊어진 한남3구역 조합
표류하는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사업’
서울시 ‘재입찰’ 권고 vs. 조합원은 ‘수정안’ 무게
검찰, 건설3사 수사 시작…복잡해진 셈법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시공사 제안서 수정 90% vs 재입찰 10%’

지난 28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천복궁가정교회에서 열린 한남3구역재개발조합 정기총회 현장에서 거수를 통해 파악한 조합원의 의중이다. 한남3구역은 총 사업비 7조원대로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 사업지’로 불리고 있지만, 지난 26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건설3사(현대건설·GS건설·대림산업) ‘입찰무효’ 권고 이후 사업이 표류 위기에 놓였다. 시공사 선정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28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천복궁가정교회에서 열린 한남3구역재개발조합 정기총회 현장 [조합원 제공]

전체 조합원 3853명 중 현장에 참석한 690여명이 거수로 표현한 의견은 결의권이 없다. 조합 집행부에 ‘참고사항’이 될 뿐이다. 하지만, 정부의 입찰무효 권고안이 알려진 이후 처음으로 다수 조합원의 의중을 살필 수 있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총회가 열리기 불과 몇 시간 전, 서울시가 “수정 아닌 재입찰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재차 내놨음에도 조합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충돌이 예고된 지점이기도 하다.

자체 법적 검토까지 마치고 입찰에 뛰어든 건설사들도 겉으로 드러내진 못해도 정부의 이번 결정이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집값 상승세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는 의견도 나온다.

제안서 수정이든 재입찰이든 조합원 몫의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조합원은 ‘속도’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 다수가 희망하는 시공사 제안서 수정은 건설3사가 제시한 내용 중 정부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요소만 걸러내고 입찰을 진행하는 것이다. 정부가 문제 삼은 이주비 지원, 분양가 보장, 임대주택 제로 등 20건의 사항만 솎아내면 기존 제안들은 그대로 남는다. 조합원이 강조해왔던 ‘컨소시엄 불가’ 항목도 유지된다. 새 판이 짜여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사업 지연이 장기화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한남3구역은 지난 2003년 2차 뉴타운으로 지정된 후 서울시의 인·허가가 지연되면서 16년 만인 올해 3월에서야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바 있다. 조합은 이 방법을 택하면 최소 2개월에서 최대 5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입찰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적게 걸린다. 현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이러다가 재개발이 대(代)를 물리게 생겼다”며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한다면 제안서 수정이 맞다”고 말했다.

28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천복궁가정교회에서 열린 한남3구역재개발조합 정기총회 현장 [양영경 기자/y2k@]

하지만, 조합 입장에서는 재입찰도 아예 배제할 수 없다. 재입찰은 기존 입찰을 무효 처리하고 조합이 시공사 입찰공고를 냈던 지난 8월24일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위법사항은 발도 못 들이게 검토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권고한 ‘안전한’ 방법이기도 하다. 향후 관리처분인가 등 관청의 인·허가 과정이 남았다는 점도 이 방안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와중에 현재 입찰에 들어온 건설3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돼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이들은 조합에 직·간접적인 재산상 이익을 약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북부지검은 29일 건설사 3곳에 대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 혐의로 서울시가 수사 의뢰한 사건을 형사6부에 배당했다. 국토부는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이들 건설사에 대해 2년간 정비사업에 대한 입찰 참가 자격 제한 등 후속 제재도 취한다는 방침이다.

‘사업 속도’(시공사 제안서 수정)와 ‘안전’(재입찰) 중 어떤 쪽을 선택할지는 조합의 손에 달렸다. 일단 이수우 한남3구역재개발조합장은 “조합원의 의견을 잘 알겠다”며 “이사회와 대의원회 회의를 거쳐 결정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만 언급했다.

다른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도 올해 ‘재개발 최대어’인 한남3구역의 진행과정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향후 서울 내 주요 정비사업장에 대한 방향성을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값 안정을 천명했지만 공교롭게도 최근 서울 집값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더욱 한남3구역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남3구역 조합원 사이에서도 “한남동은 한남동이 아니다. 주택 가격의 바로미터일 뿐”이라는 말도 나온다. 빠르게 갈 것인가, 안전하게 갈 것인가…조합원들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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