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실효성 없어" 지적
관주도 기술평가 시선 바뀌지 않는 한
국내판로·수출 막혀
디지털 재활 솔루션 기업 네오팩트가 개발한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여전히 한국에서는 혁신 의료기기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해외시장에서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경쟁력을 쌓은 뒤에 국내에서 사업을 하는 편이 훨씬 빠른 길입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A 대표)
“누군가 이전에 만든 적이 없는 혁신 의료기기는 임상 결과를 축적하기 힘듭니다. 미국이나 독일은 이런 혁신 의료기기를 비보험 민간에서 검증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줍니다. 우리나라는 비보험 시장의 진입도 관주도의 신기술의료평가로 결정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재활 솔루션 기업 네오팩트 반호영 대표)
문재인 대통령이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을 주문한 지 18일로 500여일이 됐지만 현장에서는 신의료기술평가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과잉규제의 본질은 바뀔 수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의료기기 규제 분야에서 처음으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해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내년 5월부터는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이 시행돼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 심사 특례 등이 지원된다.
특히 정부는 인공지능(AI), 3차원(3D) 프린팅, 로봇 등 혁신 첨단의료기술이 최소한의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에는 먼저 시장진입을 허용한 후, 임상 현장에서 3~5년간 사용해 축적된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재평가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업계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안정성·유효성이 평가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 이후에는 정부가 손을 떼고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식약처가 품목허가를 내준 의료기기에 대해 복지부가 신의료기술평가를 따로 진행하고 있다. 신의료기술평가 인증이 있어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험 수가를 정하는 품목코드에 잡히게 되고 이후 병원에서 쓸 수 있는 제품이 될 수 있다.
김현준 뷰노 전략총괄부사장은 “AI 기반의 의료진단 기기를 만들고 있는데 벌써 치료기기가 나올 만큼 기술개발 속도가 빠르다”라면서 “그런데 국내 의료기기 분야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절차와 검증에만 최소 2~3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정부가 보는 혁신 의료기기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국내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는 의료기기는 ▷급여·비급여 코드를 적용할 수 있는 제품 ▷외국에 동일한 제품과 유사한 임상 결과를 제시할 수 있어 신의료기술평가에 유리한 제품 ▷혁신적인 외산 제품의 수입 대체 국산 의료기기 ▷비급여 통제를 받지 않는 뷰티·피부·미용 제품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도 만든 적이 없는 의료기기를 개발할 경우, 아무리 국제규격 인증을 받더라도 정부의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한다”라며 “정부는 ‘유효성을 검증하는 해외 논문이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이런 식의 접근에선 새로운 시장 개척 자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채민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본부장은 “신의료기술평가 외에 유망한 기술을 조기에 판단하는 사전 스크리닝을 진행하는 등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