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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엄은희 지리학박사·서울대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아세안시민들과 함께한 특별한 기차여행

지난 주 ‘한-아세안 열차’를 타고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열차는 한국과 아세안의 시민 200명을 태우고 3일 간 한국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방문했다. 이 행사는 외교부 주최, 한-아세안센터(사무총장 이혁)의 주관으로 11월 25~27일에 부산에서 열릴 한-아세안정상회의와 한-메콩정상회의의 성공을 기원하는 장이었다.

첫 방문지 경주에서는 신라의복을 갖춰 입은 주낙영 시장과 전통악단의 환영을 받으며 국화꽃 가득한 불국사의 가을 절경을 즐겼다. 천년고찰의 은은한 품격이 불교문화권 참가자들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부산에서는 ‘번영의 밤’을 주제로 기자회견과 환영만찬이 열렸다. 오거돈 시장과 부산시민들은 부산을 출발한 열차가 평양을 거쳐 아세안과 세계로 달릴 날을 기대한다며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다짐했다.

이튿날 열차는 삼랑진을 거쳐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만습지공원에서는 광활한 갈대밭을 배경삼아 태국 유학생의 재능기부 공연이 펼쳐졌다. 세계적인 자연유산에 바이올린 선율이 어우러지며 참가자들 간의 공감대도 한층 깊어졌다. 오후일정은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이어졌다. 빛고을 광주는 특별기획 전시 〈아세안의 빛, 하나의 공동체〉로 아세안 손님들을 환영했다. 아시아의 문화적 공통분모인 풍등, 백열등, 물을 소재로 한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는 신비롭고 따뜻했다.

마지막 방문지 서울은 수도답게 한국의 맛과 멋을 만끽할 기회를 제공했다. 아세안 참가자들은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전통음식을 맛보거나 한국드라마 촬영장소에서 셀카를 찍으며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경험했다. 열차는 그 자체로 문화예술 교류의 장이되었고 다채로운 공연은 첫만남의 어색함을 쉽게 무장해제시켰다. 동남아 민속음악을 준비한 한국의 가야금 연주자, 팝송과 베트남 히트곡을 멋지게 소화한 다문화가정의 10대 소녀, 만국공통가요인 BTS의 노래를 색소폰과 아카펠라로 색다르게 들려준 태국과 싱가포르 예술인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실 이 열차의 종착역은 서울이 아니라 DMZ이었다. 안타깝게도 분단의 경계에서 아세안시민들과 더불어 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노래하려던 애초의 계획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취소되었다. 이 급작스런 재난 앞에서 한반도 문제는 우리국민의 의지만으로 풀기는 정말 어려운 숙제임을 다시금 절감했다. 한반도처럼 아세안지역도 2차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 뜨거운 열전을 겪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아세안은 지역공동체 안에서 경제통합을 추구하며 평화가 곧 번영임을 증명해왔다.

이번 정상회의 슬로건이 “평화를 향한 동행, 모두를 위한 번영”이다. 이제는 이 땅에서 ‘평화경제’를 빚어야 할 차례다. 이를 위해 아세안 10개국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한-아세안 열차는 앞장 서 아세안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한 달 뒤 한국과 아세안의 정상이 손 맞잡고, 부산이 한반도의 끝도시가 아니라 평화번영의 아시아를 향한 미래열차의 출발지임을 선언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북녘의 ‘깜짝손님’까지 온다면 금상첨화겠다. 한반도의 역동성 위에 아세안의 지지를 더해지면 함께 누릴 평화번영의 미래도 가까워지겠지. 한-아세안정상회의를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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