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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순발력 떨어지고 안들려서… 또다른 부끄러운 ‘1위’ 노인 보행자 교통 사망사고
작년 전체 보행자 사망 30%가 노인
시장골목 오토바이 쌩쌩 달리는데 “잘 안들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오장동 사거리 인근에서 노인이 걷고 있는 모습. 이곳은 행정안전부가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다발지역으로 지정한 곳 중 하나다. 기자가 그를 바라보는 수분동안에도 오토바이 여러대가 노인 보행자 옆을 쌩쌩 지나갔다. [정세희 기자]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지난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횡단보도. 70대 할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폐지를 줍고 있었다. 차들은 할머니 근처를 쌩하고 지나갔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자동차들은 브레이크를 밟지도 않고 스치듯 아찔하게 할머니를 비껴갔다. 할머니는 차로를 등뒤로한 채 인도 쪽을 바라보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난 26일 오후 방문한 서울 중구 건어물시장 인근에는 시장 물품을 나르는 오토바이가 시장 골목 구석구석을 달렸다. 그 옆을 김유복(79) 씨가 천천히 지나갔다. 김 씨에게 위험하다고 기자가 외쳐도 김 씨는 계속 앞만 보고 걸었다. 김 씨는 “사람이 먼저인데 알아서 피해줄 것”이라며 괜찮다고 했다. 김 씨가 건어물시장에서 오장동사거리까지 걷는 동안 그 옆을 쌩쌩 지나간 오토바이는 열대가 넘었다.

오장동 사거리도 위험했다. 이곳은 행정안전부가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다발지역으로 지정한 곳 중 하나다. 사거리 한 모퉁이에서 60대 여성이 택시를 잡겠다며 보행자 표지선을 넘어 차도로 나와 서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라 어두웠다. 여성이 입은 어두운 옷 탓에 운전자 눈에 잘 띄지 않을 것 같았다. 사거리에 연결된 다른 길목에서 대형 관광버스가 갑자기 튀어 나와 여성이 있는 쪽으로 우회전했다. 만약 관광버스가 여성을 못봤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몇분째 그 자리를 지켰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178명이며 이 중 약 30%인 53명이 노인 보행자로 집계됐다. 2014년만 해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399명) 중 노인 보행 사망자(100명) 비율은 25.1%였지만 지난해에는 32.3%(300명 중 97명)까지 상승한 상황이다.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당국의 노력 덕에 전체 보행자 사망사고는 줄었지만, 그 때문에 역으로 노인 보행자 사망 사고 비율은 더 높아진 셈이다.

노인보행자는 순발력이 떨어지고 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더 높다. 청력이 떨어져 주변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거리에서 만난 이득주(83) 씨는 귀가 잘 안들려 차의 경적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좁은 골목에서 오토바이가 큰 소리를 내고 지나가도 잘 모를 때가 많다”면서 “조심한다고 하는데 늙으면 몸이 고장나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운전자들은 긴장 상태다. 오장동 사거리에서 만난 택시기사 하모(53) 씨는 “거리에서 폐지 줍거나 은행 줍는 노인들은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좁은 골목을 지나갈 때는 갑자기 튀어 나올 경우도 있어서 항상 조심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경찰청, 지자체, 도로교통공단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특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점검단은 현장점검을 실시하고 교통안전시설진단, 위험 요인 등을 분석해 현장별로 맞춤형 개선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개선방안은 해당 지자체에 전달되고 연말까지 개선토록 권고한다. 예산이 부족할 경우 예산 지원도 할 계획이다.

이세원 도로교통공단 선임연구원은 “일단은 고령자 본인이 신체능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도로를 건널 때 늘 주의해야한다. 구조적으로는 노인이 많이 다니거나 위험할 수 있는 ‘노인 보호구역’에서는 횡단 신호 시간을 길게 주는 등 고령자 신체 능력에 맞게 노인들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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