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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는 척 만해도 편향성은 극복된다
시민의 감정 북돋우고 끌어 안았을때
품위있는 자유민주주의로 발돋움
“국가와 법에 감정 스며들어야” 강조
‘피가로의 결혼’ ‘필록테테스’ 작품통해
타인의 마음 어루만지는 법 제시
“혐오나 시기, 타인에게 수치심을 주려는 욕망 등은 모든 사회에, 좀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인간의 삶 속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는다면, 커다란 피해가 발생한다. 특히 이런 것이 입법과정이나 사회 형성 과정에서 하나의 지표로 작동한다면 그 피해는 더 커진다.”‘(정치적 감정’에서)

문학의 효용은 흔히 리얼리즘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얘기되면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파편화, 개인화, 다양성의 사회 속에서 계층의 현실을 재현하거나 변혁을 전망하는 시도는 공감을 끌어내는 데 한계로 지적된다.

수명을 다한 것처럼 여겨져온 문학의 효용론이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에 의해 다른 차원으로 부활한 건 흥미롭다.

누스바움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흔히 이성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국가와 법에 감정이 스며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온 학자다. 누스바움은 최고의 역작으로 꼽히는 저서 ‘정치적 감정’(원제;Political Emotions)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시민들의 감정을 북돋우고 끌어안아 품위있는 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는지 깊이있게 살핀다. 그 중심에 문학, 예술의 역할이 있다.

저자는 인간본성에 타인을 배제하거나 낙인찍는 경향, 즉 혐오와 시기심의 감정이 본능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흔히 사람들은 불행에 처한 사람을 봤을 때 그에게 벌어진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으며, 자신도 그 만큼 취약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특히 계급, 인종, 성별 등으로 자신과 타인을 구별짓는 태도는 쉽게 혐오나 낙인을 만들어낸다.

누스바움은 주변의 타인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게 문학과 예술이라고 본다. 상징과 은유의 텍스트나 예술을 감상하며 딱딱해진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그런 효용성을 보여주는 예시로 든 작품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소포클레스의 비극 ‘필록테테스’다.

프랑스 혁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선구자 보마르셰의 연극에 기반을 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누스바움이 읽어낸 것은 봉건주의에서 민주주의 시대로의 전환이다. 누스바움은 이 오페라를 공적 문화의 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철학 텍스트로 평가한다. 남성 중심의 앙시앵레짐이 갖는 규범을 깨트리는 동시에 박애, 평등, 자애 등 새로운 시민 개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가령 백작부인은 새로운 시민의 표상으로 읽힌다. 앙시앵레짐의 권위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는 백작 남편과 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동정을 구하면서 무릎꿇는 남편에 ‘좋아요’라며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백작부인의 연민에 바탕한 유연함과 포용이야말로 공적 문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백작부인이 남편의 개과천선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누스바움은 인간 존재의 허약함, 불완전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하는데 시민사회의 미덕이 있다고 본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누스바움의 또 다른 탁월한 발견은 새로운 남성성이다. 누스바움은 10대 소년 케루비노를 통해 기존의 여성을 가르치려 드는 남성성 대신 자신의 허약함을 감추지 않고 여성들에게서 배우고 애쓰는 모습에서 새로운 전망을 읽어낸다

정치적 감정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글항아리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는 타인의 불행에 눈감지 않고 손을 내미는 공적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재발견된다.

필록테테스는 의도치 않은 불행의 상징이다. 그리스와 싸우기 위해 트로이로 가던 중 랜노스 섬에서 뱀에게 발을 물려 극심한 통증과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홀로 버려진 그는 신체적 고통과 굶주림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해간다. 10년 후 필록테테스의 마법의 활 없이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그리스인들은 그를 찾으러 돌아간다. 지휘관들에게 인간 필록테테스는 도구에 불과했지만 병사들은 그의 굶주림, 육체적 고통, 고립에 공감하며 전화위복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필록테테스의 고통이 보살핌 없이 버려둔 사람들의 냉담함 때문임을 지적하며, 필록테테스에게 필요한 치료와 보살핌, 먹을 것 등이 오늘날의 비극을 없앨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애국심을 다룬 별도의 장도 눈길을 끌 만하다. 흔히 애국심은 민족주의, 국수주의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누스바움은 애국심을 무시하거나 저버린다면 역사적 사상가들이 굳건한 토대를 놓았던 통찰력을 놓칠 우려가 크다고 말한다.

애국심은 타인에 대한 희생을 포함해 가난의 구제, 소수자를 위한 정의, 정치적 자유와 종교적 자유 등을 위한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 워싱턴, 간디, 킹 같은 인물은 이를 잘 활용한 경우다.

심리학을 이용한 사랑의 방식은 설득력이 있다. 비록 타인에 대한 진짜 사랑이 없을지라도 사랑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다 보면 덜 편향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저자가 추구하는 건. 어떻게 하면 정치적 원칙과 제도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다. 연민과 동정, 관용 등의 감정들이 자유민주주의 시민사회를 든든히 자리잡게 할 뿐만 아니라 성숙한 개인으로의 성장과 행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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