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2019년 오늘, 당신의 광장은…
4년에 한번꼴 매 정권마다 거리정치 등장
“광장 점령하라” 박前대통령 탄핵 학습효과
진보진영 전유물서 보수 무대로도 확장
與·野 합의점 찾기보다 ‘세력’만 주시
정치가 오히려 광장에 종속되는 양상
‘거리정치’ 멈출 방법 사실상 없어
합리적 시민사회운동 복원만이 ‘희망’
지난 9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범보수단체 주최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윗쪽).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역 사거리에서 열린 ‘제8차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 손팻말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아래쪽). 조국 반대 vs 조국 수호. 2019년 분열의 광장 정치를 각각 대표하는 팻말이 실종된 대의민주주의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연합]

누구에겐 ‘극한 대결’이고 ‘대의민주주의의 실종’이고, 다른 누구에겐 ‘진화’이고 ‘시민혁명’일 수 있겠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조국 수호’, ‘조국 반대’의 거리의 세력대결을 바라보는 눈은 이처럼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능한 국회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대신 거리에서의 집회 대결을 마다않는 시민들의 ‘광장정치’는 분명 2019년 대한민국의 ‘분열’을 상징한다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이처럼 진영간 대립이 극에 달한 ‘2019 광장정치’는 우리 사회에 대화와 타협, 소통, 그리고 공생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거리정치(광장정치)는 떼놓을 수 없는 정치적 결사수단 중 하나였다.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는 주요한 동력이 되기도 했다.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이들 집회에는 공감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국민 절대 다수가 명분에 한 목소리로 동의했다는 것이다.

최근 대한민국 정치에서도 거리정치가 다시 중심에 섰다. 서초동과 광화문에는 조 장관 관련 집회가 열리면서 수많은 인파가 자리했다.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열린 대규모 집회엔 정반대의 구호가 울렸다. ‘조국 수호와 퇴진’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약 3년만에 다시 국민들이 광장에 모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처음이다.

▶매 정권마다 광장 찾는 대한민국 정치=거리로 뛰쳐나온 시민은 민주화 투쟁 이후 꾸준히 있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등 최근 4개 정부 모두 대규모 집회를 맞아 힘을 얻거나 골머리를 앓았다. 평균적으로 약 4년 꼴이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일정 주기 마다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을 거리로 부른 셈이다.

최근 서초동과 광화문에서도 대규모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 퇴진운동 이후 약 3년만이고, 촛불집회가 정권창출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문재인 정부가 맞는 첫 대규모 집회다. 그러나 대규모 집회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양상은 달랐다. 국민의 분노가 하나로 뭉쳐 분출했던 앞선 집회와는 다르게 광장은 각각 조국 장관 수호와 사퇴로 양분됐다.

첫 시발점은 서초동 집회였다. 조국 수호를 외치며 나온 지난달 28일 집회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여권은 고무됐다. 200만명 이상이 모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을 연상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때 국민이 그를 지키기 위해 모여 나왔던 것처럼 서초동 촛불도 자발적인 위기감으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조국 퇴진을 문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봤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진보진영 주도의 집회였다. 집회, 특히 최근 4개 정권에 있어 촛불집회는 모두 진보진영에게 유리한 반향으로 전개됐다. 노무현 정부 때는 2004년 탄핵 국면에서 국민이 힘을 실어줬다. ‘내가 뽑은 대통령’에 대한 당시 보수야권의 공격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광화문은 촛불을 든 시민으로 가득찼고 노 전 대통령 탄핵은 불발로 끝났다. 심지어 보수텃밭이라고 평가받는 대구·경북(TK)에서도 반감 여론이 상당했다. 동성로에는 당시 보수야권을 비판하는 집회가 열렸다. 열린우리당은 이에 17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는 광우병 논란으로 말미암아 대규모 집회가 시작됐다. 촛불집회를 이어받는다는 의미에서 촛불문화제로 명명됐다. 서울시청 앞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이 전 대통령 지지율은 집권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하락세를 그렸다. 이 전 대통령은 결국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나아가 “청와대 비서진은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대폭 개편하겠다”, “내각도 개편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백기투항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회로 파멸을 맞았다. 2016년말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촛불집회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달성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해당 집회는 광화문 등에서 23차까지 진행됐으며 집회 측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00만명 이상의 시민이 한날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구호는 “이게 나라냐”였고, 평화시위를 모토로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집회가 진행되면서 하락했고, 마지막엔 국민의 90% 이상이 박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당하기만 했던 보수, 광장을 학습하다=그런데 이번 촛불집회는 일반적인 촛불정국 양상과는 다른 모양새를 띠기 시작했다. 보수야권이 서초동 집회 맞불격으로 광화문 집회 참여를 독려하면서다. 노동투쟁에 있어 자주 쓰이던 삭발투쟁도 함께였다. 불과 5일 뒤 일어난 조국 퇴진 광화문 집회에는 이에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이번엔 자유한국당 쪽에서 서초동 집회를 겨냥해 광화문 집회는 300만명 이상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정치 전문가들은 여기서 특이점을 찾는다. 진보의 전유물이었던 거리정치를 보수가 학습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게 된 잠재적 이유로 이들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말한다. 탄핵이 거리정치의 효능감(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전국민적으로 느끼게 했고, 때문에 좌우 모두가 거리, 거리로 나온다는 것이다. 방어적 측면이었던 노 전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 탄핵까지는 가지 못한 광우병 집회를 거치면서 차츰 올라간 정치 효능감은 국민이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데 성공한 박 전 대통령 퇴진 집회서 정점을 찍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정치평론가인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거리의 정치는 진보진영의 아젠다와 이슈였다. 그런데 여기에 보수정권의 몰락이라는 큰 변화가 생겼다”며 “효순, 미선양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등이 일어났고,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던 거리집회가 연이어 영향을 미치는 것을 학습했다”고 했다. 그는 “정치권마저 (집회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고, 그걸 보수는 그동안 활용하지 않다가 이제는 방어기제를 잡기 시작했다”며 “한꺼번에 학습효과를 쏟아낸 것”이라고 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을 바꿔봤기 때문에 광장정치·거리정치가 일상화될 수 있다”며 “이는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그 결과로 나온 거리정치의 학습효과 내지 성공신화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 집권 내내 나올 수 있고, 아마 다음 정권에서도 거리정치는 성행할 것”이라며 “지금은 집권 3년차에 나왔지만 앞으론 더 빠른 시점에 거리정치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최 원장은 “대중자아가 (전국민적으로) 확대됐다”며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 그리고 직접 광장정치”라고 했다. 그는 “국민자아 확대와 함께 국민의 요구가 커졌지만, 정치권은 그것에 부합을 하지 못하니 광장정치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며 “어떻게보면 광장정치는 대중자아 확대에 따른 시대적인 흐름이 됐다. 다만 대한민국은 (탄핵을 거치면서) 선진국들과는 다르게 광장정치가 정책이 아닌 이념으로 물들었고, 결국 좌우가 극단적으로 나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탄핵을 통해 진영의 골이 깊어졌다”며 “17대 국회부터 이런 경향이 짙어졌다”고 했다. 17대 국회는 노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있는 뒤 열린 총선의 결과다. 그는 “이번에도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있었다. 탄핵이 얼마만큼 정치사회적 균열을 만드는지 알 수 있다”며 “이건 불행한 일이다. 이번 거리투쟁의 양상도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연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열된 광장, 보이지 않는 해법=좌우 동시에 터져나온 광장정치에는 우려가 따른다. 극심한 분열과 사회적 비용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 광장정치의 특징은 권력을 가진 적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일치된 모습이라면, 이번에는 시민들 사이 분열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해결책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몇몇은 시민사회의 탈진영화 그리고 대통령의 통합노력을 매개로 대안을 내놨다.

해결책이 사실상 없다고 주장한 신 교수는 현재의 정치권 반응을 증거로 내놨다. 정치권은 집회양상이 진행되면서 오히려 합의점을 찾기보다 광장의 세를 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당도 야당도 광장에 기대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를 “정치가 광장에 종속되는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굉장한 문제가 사실 일어난 것이다”며 “정치는 갈등제어 수단인데 지금은 갈등에 종속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탄핵 이슈, 브렉시트 이슈 등 외국도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문제가 있지만 이렇게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며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투쟁을 정치적 압력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신 교수는 “광장정치를 이제 멈추기가 어렵다. 해결방법이 없다”며 “사회현상은 관성이 있어 일정기간 계속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국민이 이미 거리정치를 학습했고, 표를 먹고사는 정치권이 이를 멈출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다른 전문가들 반응도 비슷하다. 박 교수는 “이제 대통령제 아래에서 광장정치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최 원장도 “(거리정치의 성행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쉽지 않다”며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이고 막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이들 전문가들은 낮은 가능성을 전제하면서도 몇가지 대책을 내놨다. 우선 박 교수는 시민사회 운동을 거론했다. 그는 “시민사회 운동은 좌우와 상관없이 정권과 거리를 뒀는데 현재는 좌측 시민사회는 진보진영으로 우측 시민사회는 보수진영으로 흡수된 상태”라며 “시민사회가 중간에서 지금은 양극화가 돼 중심을 잡아 견제할 주체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위 말하는 건전한 여론을 이끌 세력이 없는 상태가 됐는데, 합리적 시민사회 운동이 과거와 같이 복원된다면 희망이 있다”며 “1, 2당이 바뀌어도 양극화 판이 바뀔 것이라고 보지 않는데, 결국 국민 에너지가 합리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재건된 시민사회와 만나야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시민, 공지영, 홍준표 같은 한 쪽으로 선 시민사회 원로가 아닌 진정한 나라, 국민의 어른들이 철저히 이성과 논리를 가지고 양쪽 모두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새로운 길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 원장은 “결국 대통령이 정말 큰 폭의 통합정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며 “보수, 진보라는 정치노선을 초월해서 뼈아플 정도로 포용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고집은 바로 거리정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입장에서야 통치권 상실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국민은 편안하게 간다”며 “이건 무능의 문제가 아니다. 유능하고, 또 자신이 유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나오는 문제”라고 했다. 특정 진영, 정당원 또는 대표가 아닌 진짜 국민의 대표로서의 대통령 역활을 주문한 것이다.

홍태화 기자/th5@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