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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골 오락실 소녀 ‘글로벌 게임엔진’ 대표가 되다
유니티코리아 김인숙 대표 “본사서 한국시장 중요성 인식 직원 크게 늘어…최첨단 시각화기술 모든 산업으로 쓰임새 확장”

유니티(Unity)라는 기업이 있다. 보통 사람에게는 낯설지만, 게임 좀 해본 사람이라면 ‘분명히 어디서 들어봤는데…’라고 말 할 회사다.

유니티는 전세계 15개국에 27개 오피스를 보유한 세계 최고 ‘게임엔진’ 회사다. 게임엔진은 쉽게 말해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전세계 모바일게임의 50%가 유니티의 엔진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지난 2년간 유니티의 엔진으로 만들어진 모바일 게임이 벌어들인 돈만 약 13조4000억원이 넘을 정도다. 그만큼 유니티는 게임산업을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회사다.

그런 유니티의 한국법인을 맡고 있는 김인숙 유니티코리아 대표는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 ICT 업계에서도 여러가지로 눈에 띄는 인물이다. 40대 여성에, 워킹맘이자, 흔한 유학한 번 다녀온 적 없는 순수 토종 출신 CEO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벌써 5년째 대표를 맡고 있다.

유니티는 최근 세계 어느곳보다 빠르게 한국 법인의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경영진이 김 대표의 능력을 믿고 성과를 인정해서다. 지난달 28일 강남의 유니티 사옥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오락실 소녀’가 글로벌 게임 엔진 회사의 한국 대표로=1980년대 경북 영주의 작은 오락실, 소녀는 매일같이 오락실을 드나들었다. 너구리부터 테트리스,트윈 코브라까지 섭렵한 그에게 웬만한 동네 오빠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몇몇 어른들은 오락실을 일탈의 장소 쯤으로 취급했지만 소녀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꿈을 키웠다.

김 대표가 말하는 ‘소녀 김인숙’의 모습이다. 김 대표는 부친의 회사일 때문에 학창시절을 경북의 영주에서 보냈다.

“어렵게 자란건 아니었지만, 곱게 자라지도 않았다(웃음)”는 김대표에 따르면, 그에게 게임업계 DNA(?)를 심어준 것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딸이 오락실 가는걸 막지 않으셨다. 당시 영주에 아이들이 놀게 없다보니 도시에 살다 갑자기 시골에 온 딸이 자칫 집에만 있을까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만 아니라면 오락실에서 게임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어머니가 저를 잘 믿어주셨다. 오락실을 매일 다니는 저를 말리지 않고 늘 200원을 쥐어주곤 했다. 그 돈이면 2시간 많게는 4시간을 오락실에서 보낼 수 있었다. 너구리, 테트리스도 잘했고 트윈 코브라 같은 게임도 잘했다(웃음). 대신 어머니가 하면 안된다고 한 것은 절 대 안했다. 그런 경험들 덕분에 자제력이랄까 하는 부분이 길러 진 것 같다 ”

어머니의 믿음 덕분인지 김 대표는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 하고 싶은 것들을 두려움없이, 대신 열심히 했다.

‘친구들에게 인기 있고 싶어서’ 학창시절 육상 선수로 활약했던 경험이나, 대학에서 영문을 전공한 후에 느닷없이 식품 회사에 마케터로 취업하거나, 다시 연고없는 IT 업계로 호기롭게 전직을 하거나 한 모든 것들이 김대표의 이런 도전 정신 때문이다.

게임업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김대표는 세계 게임 산업계의 ‘히트상품’ 가운데 하나인 EA의 ‘피파온라인’을 탄생시킨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김대표는 모두가 ‘이게 되겠냐’던 2000년대 중반에, 1년을 넘게 미국 본사와 국내 개발사 사이를 뛰어 다니고 양쪽을 설득하면서 피파온라인이 태어나고 성공하는 데 큰 역할 을 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글로벌 기업의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데는 분명히 법칙이 있다. 추진 과정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그 과정을 인내있게 기다리면서 추진하고 설득하고 하면 된다는 걸 확실히알게됐다”

▶여성·토종·워킹맘·CEO=김 대표는 글로벌 기업의 국내 지사장으로는 드문 케이스다. 여성인데다, 워킹맘이고, 무엇보다도 ‘토종’ 출신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나, 혹은 외국물 좀 먹은 해외파 한국인에게 법인장을 맡기는 게 글로벌 기업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면 김 대표의 모습은 이례적이다.

2015년 당시 다른 회사에 있던 김 대표를 이자리에 앉힌 것은 존 리치텔로 유니티 현 CEO다. 그는 EA코리아 시절 김 대표의 상사였다. 처음 한국법인장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는 김 대표도 망설였다. 흔히 말하는 해외파도 아니고, 유니티의 글로벌 조직에서 중요한 자리를 거치지도 않은 그에게 한국대표 자리는 느닷없고, 또 부담스러웠다. 그런 그를 리치텔로가 등떠밀었다.

“ 내가 당신말 다 알아듣고, 당신이 내 말 다 알아듣고, 무엇보다 내가 당신을 높게 평가하는 데 무엇이 문제냐고 존이 이야기하더라. 아시아라는 특수 마켓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어만 잘하는 미국인은 오히려 필요없다고도 했다. 그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대표를 맡고 나서 김대표는 특유의 적극성과 추진력으로 금방 글로벌 조직의 인정을 받았다.

이를 테면, 취임하자마자 단 1주일 만에 국내의 모든 클라이언트들을 개별적으로 만났다. 서비스의 아쉬운 점을 청취했고, 그걸 분석해서 글로벌 조직에 개선을 요구했다. 판매·마케팅 조직으로 역할만 하던 작은 한국법인에서 여러가지 생산적인 제안과 분석이 올라오는 것을 본사에서도 눈여겨 봤다. 그리고 그것이 몇년만에 성과로 이어지자 점점 더 지지하고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글로벌 조직에서 다양성이 점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봤다. 각 시장의 특수성을 빠르게 파악해 본사와 상호작용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꼭 해외파나 영어가 네이티브 수준이여야만 글로벌 기업의 법인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김대표는 “오히려 이정도면 되겠지 하는 마음을 버리고 조직과 시장이 원하는 것들을 파악하고 만족시키려고 했던 것들이 높게 평가 받은 것 같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물론 성과에 대한 강한 책임감도 가지고 있다. “내가 실수하거나 성과를 못내면, 앞으로 본사에서 나같은 로컬 출신의 관리자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상당히 신경을 쓴다. 나와 비슷한 조건의 로컬 출신 인재들이 계속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고 싶다”는게 김 대표의 속내다

그는 스스로 인복이 많다고 했다. 존 리치텔로 뿐만 아니라, 게임 업계 초년병 시절 함께 일했고 어려울때 조언을 구했던 ‘선배’들이 이제는 국내 ICT 업계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그런 멘토들을 젊은 시절에 만날 수 있었던 게 행운”이라면서 “젊은 직원들에게 나 역시도 그런 멘토가 되고 싶다”고 했다.

▶“모든 산업 에서 ‘시각화’ 수요 늘어날 것”=유니티코리아는 지난 7월 강남의 역삼동에 새로운 사무실로 오피스를 확장 이전했다. 멋지게 꾸며진 유니티의 새 사무실에는 아직 주인 없는 자리가 많다. 정확히 말하면 ‘주인을 아직 못 찾은 ’자리다.

유니티코리아는 유니티의 각국 법인 가운데 가장 빠르게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김대표가 취임하던 5년전 불과 20여명이던 인력이 현재 70명 여명이 됐다. 김 대표는 올해 20명을 채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약 20명의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그만큼 인력이 빠르게 느는 것은 본사가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5G, AI, AR, VR 등의 ICT 기술이 거의 모든 산업으로 이식되면서, 유니티가 가진 ‘시각화 기술’이 쓰일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고성능의 컴퓨터 그래픽이 주로 게임에서 쓰였다면 이제는 영화, 유통, 의료 등 뿐만 아니라 제조업에서도 ‘시각화’에 대한 요구가 많다. 이를테면 건조 비용만 수천억원 하는 거대한 선박을 건조하는 데 그 공정과 진척 정도를 ‘시각화’해서 선주에게 보여주는 것이 가능해졌다. 예전 같으면 선주가 별도의 비용을 들여 ‘생산관리 전문회사’를 고용해 일일이 체크하고 보고받고 했을 일이 이제는 시스템안에서 훨씬 손쉽게 가능해질 수 있다. 유통에서 가상의 쇼핑공간을 구성하거나, 환자의 상태를 그래픽으로 알기쉽게 보여주거나, 영화배우 없이도 영화를 찍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첨단의 시각화 기술로 가능해지는 추세다. 바로 그런 부분에 유니티의 새 시장이 있다.

김 대표는 “자동차, 중공업, 금융, 유통. 교육, 광고, 영화, 방송 등 정말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문의가 들어온다”면서 “내부적으로도 5년뒤에도 유니티가 게임 관련 사업만 하고 있는 회사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개발의 민주화’라는 창업 가치 아래, 여러 산업 분야에서 유니티가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강점과 편의성에 대해 집중할 계획이다”이라고 밝혔다.

채상우 기자/123@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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