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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잇는 ‘성명권’ 침해분쟁 ②] 퍼블리시티권 도입 방향은 어떻게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이미 퍼블리시티권 인정
일본에서는 명문 규정 없지만 법원 판례로 폭넓게 보호
우리나라는 법무부에서 2년째 입법 검토중, 대법원 판례도 전무
대법원 전경 [좌영길 기자 jyg97@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유명인의 초상이나 성명을 재산권으로 인정하는 ‘퍼블리시티권’은 미국에서는 1950년부터 일찌감치 판결을 통해 인정되고 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이름, 얼굴을 무단 도용하더라도 소액의 위자료만 물어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실제 손해액을 산정해 거액의 배상금을 인정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관한 법적 보호막이 존재하는 셈이다.

인하대 산학협력단이 2012년 발간한 ‘퍼블리시티권에 관한 국내 실태 조사’에 따르면 유명인의 성명이나 초상에 기초한 퍼블리시티권 산업 규모는 2011년 기준 32조7390 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포털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광고 산업의 경우 2010~2011년 연평균 32%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방송과 광고산업 역시 15% 전후의 성장률을 보였다. 신문이나 잡지, 출판물 시장의 성장은 연평균 5% 정도였다. 스포츠게임에서 선수의 실명을 쓰거나, 애니메이션에서 특정인의 얼굴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도 모두 퍼블리시티권 인정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퍼블리시티권 문제를 법원 판결이 아닌 입법으로 해결하자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2016년 퍼블리시티권 입법화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해외 입법 사례를 수집했고, 2년간 법제화를 검토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퍼블리시티권이 처음 언급된 사건은 1995년 ‘이휘소 사건’ 때였다. 저명 핵물리학자 고(故) 이휘소 박사의 유족들은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작가 김진명 씨를 상대로 ‘이름을 무단 도용했다’며 법적 분쟁에 나섰지만, 법원은 성명과 초상은 인격권이라며 재산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산권은 양도와 상속이 되지만, 인격권은 당사자 본인에게만 인정된다.

반면 미국은 1953년부터 유명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이 권리를 인정한다. 유명인의 실제 이름 외에 널리 알려진 별명도 특정인을 지칭하는 게 확실한 경우에는 퍼블리시티권 보호 대상이 된다. 성명이나 이름이 아닌 ‘목소리’의 경우에는 각 주마다 권리 인정 여부가 갈린다. 상속권도 대체적으로 인정된다. 명문 규정으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주에서는 짧게는 사후 20년까지, 길게는 사후 100면까지도 상속권을 인정한다. 다만 법인이나 단체 이름에 관해서는 퍼블리시티권을 따로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기업이 사용하는 이름은 상표권으로 보호받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법원 판결로 1960년대부터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고 있다. 관련 법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단 도용 분쟁이 생길 경우 법원이 나서 적극적으로 보호를 해주기 때문에 입법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특히 2012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아이돌 그룹 ‘핑크레이디’가 낸 소송에서 퍼블리시티권을 폭넓게 인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송을 당한 출판사는 핑크레이디의 허락을 받고 촬영했는데도 불구하고, 미리 계약한 ‘출판물 촉진’이 아닌 ‘다이어트 기사’ 게재용으로 사진을 썼다는 이유로 배상책임을 졌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명인의 실명 뿐만 아니라 음악그룹의 명칭도 퍼블리시티권 보호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고작 100만원, 200만원 배상을 받는 걸 알면서도 소송을 내는 것도 일본처럼 대법원 판결에 의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아직까지 명확한 판결을 내린 적이 없다. ‘소액사건심판법’은 청구액수가 작은 소액소송은 대법원에 상고할 수 없는 것으로 정하고 있는데, 퍼블리시티권 침해 사건은 거액이 걸린 경우가 드물어 제대로 된 대법원 판결을 받을 여지가 줄어든다. 만일 대법원이 이 권리를 인정할지에 관해 선례를 남긴다면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함께 심리해 결론을 내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거칠 가능성이 높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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