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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금리, 불안한 투자…금융의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5000년 인류문명 금융의 변천사
복리개념이 등장한 바빌로니아 원뿔비
영토 다스리기 위해 발전한 中 금융기술
서기 33년 로마의 금융위기는 흥미진진

“금융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게 목적”
글로벌 복잡사회 걸맞은 금융구조 필요
“금융기술이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타임머신이다. 다만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돈을 시간여행시킬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현재 처한 경제 상황과 미래에 처할 경제 상황을 바꾸어 놓는다. 또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도 바꾼다. 인간은 금융 덕분에 미래를 상상하고 계산하는 능력을 키웠다” (‘금융의 역사’에서)

1929년 독일 고고학자 율리우스 요르단은 서남아시아 우르크의 보물창고라 불린 ‘이아나 사원’을 발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풍요의 여신 이난나를 숭배하던 이곳은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자 대중에게 재화와 상품을 분배하는 장소이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인류 최초의 문자, 쐐기문자 점토판이 발굴된다. 점토판에는 양, 소, 개, 빵, 기름항아리, 맥주, 옷 등이 기록돼 있는데, 학자들은 이를 신전의 보물창고에 저장된 물건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초의 문자, 쐐기문자는 바로 회계와 계약 용도로 처음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나온다.

윌리엄 N.괴츠만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역저 ‘금융의 역사’에서 문자의 등장을 금융의 필요성에서 비롯된 부산물로 규정한다. 도시의 출현과 함께 금융이 생겨났으며, 금융은 문명을 추동하고 지식과 부를 확장, 성장과 진보를 거듭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금융은 일반인에게 친숙하면서도 멀다. 대출과 보험, 저축, 투자 등은 잘 알지만 정작 금융이란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고 진화해가는지에 대해선 이해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괴츠만은 이 책에서 5천년 인류문명과 함께 해온 금융의 흥미로운 변천사를 통해 그 역할과 속성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에 따르면, 금융은 한마디로 무언가를 미래에 돌려주겠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 일이 일어난 시점을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이 처음 탄생한 쐐기문자의 중심, 우르크에서 출토된 그림문자서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쐐기문자 서판에는 곡식을 3년동안 매우 일정하게 즉 매일 2.5리터 또는 5리터씩 배급한다고 적혀있는데, 서른날을 한 달로 열두 달을 1년으로 삼아 곡식을 지급했다. 자연의 주기에 따른 시간이 아니라 인위적인 경제적 시간으로 다룬 것이다. 1년을 360일로 쳐서 계산한 이자는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금융이 출현한 배경으로 우르크의 경제체계·사회구조에 주목한다. 당시 우르크 인구는 1만명으로 추정되며, 노동력은 전문화되고 생산물은 약정대로 신전에 바쳐져 재분배되는 구조였다.

예일대가 소장한 바빌로니아 점토제 원뿔비도 흥미로운 사실을 증언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있던 두 대도시 라가시와 움마가 영토분쟁을 벌였는데, 후에 빼앗긴 영토를 수복한 라가시가 움마에 부당하게 빌려간 보리와 발생한 이자를 30% 넘게 매겨 요구하는 내용이다. 복리개념이 등장한 최초의 증거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제3천년기 후반, 우르 제3왕조 시대에는 엄청나게 많은 금융자료가 출현했다. 미천한 농부에서 고귀한 정부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에서 대출이 널리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상인은 은과 양털을 선금으로 받아 양파, 병아리콩, 건포도 밀, 염소 등의 상품과 사치품을 구입하고 전달했으며, 선금으로 받은 은을 다른 이에게 대출하기도 했다.

그리스와 로마문명은 경제규모가 커져 해외무역에 의지하게 됨에따라 새로운 금융구조가 요구됐다. 아테네 금융체계에 관한 기록은 법정 기록에 주로 나오는데, 기원전 386년 아테네 곡식 거래인이 담함 혐의로 사형위기에 처한 얘기가 나온다. 아테네는 도시규모가 커지면서 인구의 3분의1은 수입곡식에 의존해야 했다. 이에 따라 아테네는 곡식 수입과 이윤을 법으로 제한했는데, 거래인들이 담함해 싸게 사서 쌓아두고 조금씩 팔아 매점매석 금지법을 위반한 것이다. 당시 검사측의 논고 내용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에 대한 이해를 잘 보여준다. 곡식을 거래인에게 넘기는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지면 투자자는 자금을 대출하지 않을 것이고, 화물을 팔아 이익을 보지못하면 선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나갈 유인을 잃어버려 결국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직 시장만이 사업가가 곡식 무역에 뛰어들도록 유혹할 수 있다는데 방점이 놓인다.

당시 아테네 일반적 중산층 사업가는 다양한 대상에 투자했으며 금융을 잘 아는 사람들이 넘쳐났다는 사실이 놀랍다.

유럽의 절반을 차지한 로마제국을 뒷받침하는 금융체계는 필수였다. 로마는 세금징수, 군대보급, 건설 등 국가가 수행했던 다양한 기능을 민영화했다. 엄격한 계급사회에 재산에 따라 정치적 서열이 결정된 로마에서 원로원 의원이 되려면 25만 데나리우스가, 기사계급은 10만 데나리우스가 있어야 했다. 원로원 의원은 부유해야 했지만 자본을 굴리는 데는 심한 제약을 받았다. 이에 따라 사업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발뺌하기 위해 금융 행위를 위임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능력이 중요했고,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가 로마 금융체계에서 발달하게 된다. 특히 대부업은 원로원 의원들의 재산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반면 기사계급은 굵직한 사업활동을 수행하고 주요 관직을 차지했는데 오늘날 주식회사와 비슷한 일종의 금융조직을 개발했다.

로마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발전해 가던 시기, 서기33년 로마에서 부동산담보대출과 채무불이행이 촉발한 금융위기가 몰아닥쳤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중국은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정교한 관료제를 바탕으로 특유의 금융기술을 발전시켰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지방에서 수도로, 또는 수도에서 지방으로 돈을 옮기는 금융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그 중심에 지폐라는 금융혁신이 있다. 화폐를 중앙정부가 세심하게 규제하고 경제정책 도구로 삼은 것이다. 황제는 귀한 물건을 지폐와 교환하도록 강제해 결과적으로 민간 상업에 개입했다, 지폐는 순환하는 교환수단일 뿐 아니라 중국에서 영업하는 외국 상인의 자본을 확인하고 인증하는 수단이었다, 또한 상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수단이었다.

책은 베네치아의 공채 발행, 연금과 확률, 옵션, 증권화 등 금융의 발전과정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결들여 흥미롭게 전개시켜 나가는데, 사회가 고도로 발전해나가면 그에 걸맞는 금융구조가 자연 생겨나게 된다는 걸 보여준다. 글로벌화된 복잡한 현 사회 역시 금융도구가 추세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또한 금융은 부도덕성과 부의 꿈 사이에서 역사적 변증법적 과정을 겪는다. 그 교훈은 위험분담과 시점 간 가치 이동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했는지 시장의 역사에 있다.

저자는 이런 금융이 역사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전-지체의 과정을 반복해왔다는 데 주목한다. 또한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위하여, 인간의 삶으로부터, 인간의 삶과 연관되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금융은 현재의 경제적 가치와 미래의 경제적 가치의 ‘시점간 소비 조정’이다. 시간을 넘어 경제적 가치나 위험·자본을 재할당하는 게 금융이란 얘기다. 투자는 현재로 옮기려는 사람과 가치를 미래로 옮기려는 사람을 매개하는 것으로, 투자를 일으키는 건 미래에 더 많이 소비할 것이란 기대다. 여기서 변수는 인구다. 전 세계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소비자 대 생산자 비율이 낮아지면서 현재와 미래 사이의 등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공산이 커진 것이다.

“현재와 미래 사이의 등식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경제가 진정 성장”해야 하는데, 최근 상황은 성장률 둔화, 성장의 한계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결국 “현재와 미래의 경제적 가치 단절”을 초래하게 된다.

금융이 안은 과제는 시대마다 다르지만 현재의 수요와 미래의 수요 사이의 균형,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가는 금융 혜택 등은 지속적으로 해결해야할 사안으로 지적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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