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만 잘 지키는 ‘꼼수’ 52시간제…대기업 풍경도 천차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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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지난해 7월 도입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9개월간의 처벌 유예 기간을 끝내고 4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주 52시간제 안착을 향한 길목은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제도가 시행된 대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일부는 근로시간 준수를 위한 기업의 ‘꼼수’에 시달린다. 대부분 요식업에 집중된 자영업 생태계는 칼퇴근 하는 직장문화가 확산되며 매출이 급감했다.
▶엇갈리는 자영업 운명…식당은 울고 헬스장은 웃고=주 52시간제 안착 길목에서 요식업에 집중된 자영업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마포구에서 고기집을 운영해온 이모(56) 씨는 올해부터 영업시간을 새벽 12시 30분 당일 밤 11시 30분으로 1시간 줄였다. 장사가 안돼 인건비와 전기세라도 줄여보자는 심산으로 내린 결정이다. 이 씨는 “요즘엔 다섯시만 돼도 근처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몰려온다. 대부분 회식이 아니라 식사하러 오는 사람들이다. ’해가 길어 술이 안 당긴다며 밥만 먹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술장사가 매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늦저녁부터 새벽까지 눌러앉아 마시던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삼성카드가 지난해 8월~11월 식당에서 사용된 신용카드 시간대를 분석한 결과, 오후 9시 이후 법인카드 이용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6.7% 줄었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호황을 맞은 업체도 있다. 칼퇴근한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헬스장 등 운동 관련 업체들이 그들이다. 52시간 제도 시행 후 오후 4~5시대 이용객이 오히려 늘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이들이 자영업 생태계 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 않다.
여의도의 유명 헬스클럽 관계자는 “주52시간제가 도입된 최근 1년새 저녁시간 개인트레이닝(PT) 신청건수가 20% 이상 늘었다. 인근 기업체에 다니는 직장 고객들이 4시, 5시부터 스케줄을 잡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까진 영업이 잘 되지만 인근에 개업하는 헬스클럽들이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져간다. 반짝 특수로 끝나지 않기 위해선 할인 이벤트를 늘리고 홍보 전단도 더 뿌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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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신고는 적지만…현장선 곡소리=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접수된 노동시간 위반 신고는 전국 대상 사업장을 통틀어 각 13건, 21건이다. 3526곳에 달하는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대상인 직원 300명 이상 기업 수를 감안하면 신고건수는 불과 0.5%도 되지 않을 정도로 눈에 띄게 적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근로시간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연차를 강제로 사용하게 하는 등 편법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주52시간제를 도입한 대기업 일부에서도 시간만 지킨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맞추기 위해 ‘무급 휴가’를 강제하는 회사들도 생겨나고있다.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인 것은 고용 된 사람들에게는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이고, 고용되지 못한 사람들에겐 추가 일자리가 생기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정작 기업들에선 업무량을 아예 줄이거나 추가 채용 대신 직원 개인 연차 소진으로 주 52시간을 맞추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 A(31) 씨는 “주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게 되니 회사에서 강제로 휴가를 보내더라”며 “반납한 연차만큼 월급으로 되돌려 받기 때문에, 이런 경우 주당 52시간을 다 일하고도 월급이 깎이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경기도의 300인 규모 생산업체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모(29) 씨는 전국에서 집계한 근로시간 위반 신고 건수가 몇십건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황당해했다. 김 씨는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는 대기업 안에서도 직원 300명 규모와 수천명 규모 기업들의 상황은 천차만별일 것”이라며 “우리 회사 동료들만 추려봐도 근무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열손가락 가득인데, 전국에서 열 몇건 신고했다면 숨은 사례가 얼마나 많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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