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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영길의 법조 레프트훅] 박근혜 정부와 구로농지 사건, 어느 검사의 변신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구로농지 강탈사건을 아십니까. 박정희 정부는 1960년대 서울 구로구에 공단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약 30만평의 땅을 강제로 수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쫓겨날 처지에 놓이자 집단으로 소송을냈고, 1심에서 승소합니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택한 방법은 검찰을 동원하는 것이었습니다. 1968년부터 강제수용에 반발하는 농민들과 관련 업무를 처리한 공무원들에게 소송사기 혐의를 적용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농민들이 낸 소송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구로동 주민들이 애초에 토지 소유권을 취득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결합니다. 부당하게 얻은 땅이니 국가가 회수해 가도 된다는 논리를 만들어준 셈입니다.

이 사건은 결국 노무현 정부인 2008년에 와서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국가 공권력 남용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판명됩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토지를 빼앗기고도 사기범이라는 오명을 썼던 구로동 주민들은 2011년에서야 비로소 재심을 통해 범죄혐의를 벗을 수 있었습니다. 구로농지 강탈사건은 정부가 부당하게 토지를 빼앗았고, 반발이 일자 검찰을 동원해 소송을 낸 주민들을 괴롭혀 소송을 취하하게 만든 대표적인 국가 권력 남용 사건입니다.
1970년대 구로공단 항공사진 [연합]


▶부친 때와 똑같이... 박근혜 정부에서도 검찰이 '해결사' 역할 

구로농지 강탈 사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사건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은 수십년 후 대통령이 됐고, 박근혜 정부는 부친때 벌인 잘못으로 인해 국가배상 책임을 질 상황에 놓입니다. 과거사 진상규명이 된 이후 구로농지 강탈사건 피해자 유족들은 차례로 소송을 내 승소했고, 정부는 소송이 이어질 경우 수천억 원이 넘는 돈을 물어줄 상황이 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와 똑같이 이 사건에 개입합니다. 2015년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구로농지 관련 소송을 벌이던 ‘군용지명예회복추진위원회’ 회장과 간사를 수사했습니다. 당사자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돕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2명도 수사대상이었습니다. 위원회 회장과 간사에게는 ‘변호사가 아닌데도 사건을 불법 알선했다’는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이 사건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정부의 하명수사가 아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유족들이 낸 소송을 ‘불법’으로 규정하면 천문학적인 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을 뿐더러,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대통령의 잘못이라는 점도 어느정도 희석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입니다.

▶부천지청장 진경준과 ‘하명수사’ 의혹

인천지검 부천지청에서 수사를 벌인 이 사건은 서울남부지검으로 이송됩니다. 결국 검찰은 피해자 유족 대표와 간사, 소송을 도운 민변 변호사 2명을 모두 기소합니다. 죄명은 변호사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주민등록법 위반이었습니다. 피해자 유족들은 1960년대와 똑같이 졸지에 범법자로 몰려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습니다. 당시 공판을 지켜봤던 한 법조인은 “고령의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눈물을 쏟았다”고 전했습니다.

왜 하필 이 사건을 인천지검 부천지청에서 수사를 했을까요. 검찰은 사건 관할을 정할 때 피의자의 주소지를 기준삼을 수 있습니다. 입건한 사람이 여럿인 만큼 복수의 검찰청 중 한 곳을 관할로 삼을 수 있는 셈입니다. 이 때 부천지청장은 진경준 검사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특히 우병우 검사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되면서 승승장구했던 검사입니다. 잘 알려졌듯, IT업체 넥슨으로부터 거액의 주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직 검사장으로는 처음으로 구속기소되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진경준 지청장이 있던 곳에 수사를 맡긴 게 검찰의 자체적인 판단이었는지 외부에서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구로농지 수사 맡았던 이규원 검사의 변신

부천지청에서 구로농지 사건을 수사할 때 피의자 조사를 맡았던 이규원 검사의 이력은 다소 의외인 면이 있습니다. 이규원 검사는 원래 민변에서 활동했던 변호사 출신으로, 2009년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민변 회원이었던 변호사가, 검사로 임관한 뒤에는 과거사 피해자들과 소송을 도운 민변 변호사들을 상대로 ‘불법소송을 벌인 책임을 묻겠다’며 수사를 벌인 셈입니다. 이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당사자들은 이례적으로 자주 검찰에 불려갔고, 진술조서를 받아내는 과정에서도 혹독하게 추궁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평가가 온당한 것인지를 듣기 위해 이규원 검사에게 수차례 연락을 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 ‘구로농지 사건에 관해 질의할 게 있다’고도 했지만,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전언이 매우 주관적인 평가라 하더라도, 적어도 이규원 검사가 소극적으로 일을 처리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이규원 검사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꾸려진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파견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구로농지 사건 피해자들을 압박했던 검사가 이번에는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과 용산참사 사건, 장자연 씨 사망사건 등 검찰의 과오를 바로잡는 실무를 담당하게 된 셈입니다. 민변 회원에서 구로농지 사건 수사검사로, 다시 과거사 진상조사단 실무자로. 이규원 검사의 변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법원의 무죄 판결, 항소심은 여전히 진행 중

구로농지 피해자 유족과 변호사들을 기소한 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됩니다. 기소된 변호사들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 배경을 강하게 의심하는 주장을 폅니다. 사실상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 영향을 주기 위해 검찰이 자의적인 수사를 벌였다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1심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이 사건 수사 개시 시점, 수사 방식 등에 비춰볼 때 검사가 구로농지 관련 민사소송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공소를 제기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소송 위임 과정에서 비용이 언급된 상황이 있는 만큼, 검찰이 공권력을 남용한 게 명백하지는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소됐던 당사자 중 한 명은 “할 말은 많지만 재판이 진행 중인 지금은 적절치 않다”고 했습니다. 국가는 토지를 강탈하고도 소송에서 패소하자 검찰을 동원해 부당하게 배상청구를 방해했는데, 정작 수사를 받은 이들은 항소심 판단을 기다릴 뿐입니다.

이규원 검사의 이력이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 정당성과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평검사가 위에서 시키는 일을 거부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민변 회원이었던 변호사에서, 과거사 사건 피해자를 압박하는 수사를 담당한 검사로, 정권이 바뀌자 국가 권력 남용 사건 진상규명을 하는 업무를 맡으며 변신을 거듭한 행보가 적절한가는 의문입니다.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라는 논리가 정당화된다면 정권이 요구하는 대로, 법무부 외청인 검찰이 하명수사를 하는 것도 흠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형사소송법에 나와있듯, 검사는 하나의 독립 관청이고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할 의무가 있다. 일반공무원과는 다른 지위를 인정하고, 검사들 스스로도 준사법기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검사가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게 변명이 되느냐.” 이 사건 내역을 알게 된 한 변호사가 남긴 말입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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