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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 치울 여유 없는 2030 ‘청소 도우미’ 찾는다
-5평미만 방 기본 살림살이만 넣기도 벅차
-각종 시험준비, 취업준비에 집에 오면 녹초…”며칠 안치우면 쓰레기장”
-주거난ㆍ취업난에 지친 2030대, 가심비 중시해 청소대행 늘어날 것 

지난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원룸에서 공시족 이보영(28) 씨가 옷장을 청소하고 있다. [박자연 인턴기자/nature68@heraldcorp.com]
방 한켠에 놓인 공무원 서적. [박자연 인턴기자/nature68@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정세희ㆍ박자연 인턴기자]“방이 많이 더러울텐데 괜찮겠어요?”

지난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원룸촌. 9급 공무원 준비생 이보영(가명ㆍ28) 씨가 현관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오는 6월 시험을 앞두고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를 하면 청소할 시간이 안 난다는 그는 민망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었다. 5평 남짓한 방은 각종 인스턴트 식품, 먹다 남은 음식, 수험서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은 이 씨가 한달 만에 대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밤늦은 시간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는 그는 청소대행 어플리케이션을 알게 돼 한 달에 한번 꼴로 청소도우미에게 방을 맡긴다. 어플에서 마음에 드는 청소도우미를 선택하고 날짜와 시간을 정하면 청소도우미가 와서 집을 치워준다. 비용은 2시간에 3만원.

약속시간인 4시가 되자 ‘청소 집사’로 불리는 청소도우미 양문숙(67) 씨가 도착했다. 앞치마를 두른 청소도우미 양 씨는 방을 스윽 둘러보더니 “짠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청소도우미 경력 4년째는 그는 비좁은 집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방을 청소할 때면 가장 마음이 아프다. 양 씨는 “작은 방에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채우려면 쉽게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다”며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치울 여유도 없이 바삐 사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다”고 전했다.

원룸에 냉장고 둘 곳이 없어 이 씨가 스티로폼 상자에 얼음팩을 넣어 임시로 만든 간이냉장고. [박자연 인턴기자/nature68@heraldcorp.com]

양 씨는 능수능란하게 책상, 냉장고, 옷장, 바닥, 화장실 등을 구석구석 쓸고 닦았다. 난관은 음식쓰레기였다. 주방조차 없는 방에는 각종 인스턴트 음식, 시골에서 어머니가 보내준 음식들이 곳곳에 쌓여져 있었다. 냉장고 옆에 있던 스티로폴 상자를 열어보니 얼음팩 3개와 과일, 반찬 등이 보였다. 냉장고가 부족해 집주인이 임시로 만든 ‘간이냉장고’였다. 음식은 모두 상해있었다. 차마 버리지 못한 집에서 어머니가 보낸 음식들이었다.

약 2시간 뒤 쓰레기더미에 가까웠던 방은 엄마가 다녀간 듯 말끔해졌다. 집에 도착한 이 씨의 표정도 개운해보였다. 그는 “한달 용돈 40만원인 고시생에게 비용이 부담되지만 시험 준비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깝지 않다”고 했다.

청소도우미 양문숙(67) 씨가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 [박자연 인턴기자/nature68@heraldcorp.com]
청소도우미 양문숙(67) 씨가 깨끗해진 방을 쳐다보고 있다. [박자연 인턴기자/nature68@heraldcorp.com]

▶“게으르다고?”…치워도 치워도 끝없는 좁은 방=최근 청소 대행 어플을 이용하는 2030대가 늘고 있다. 특히 5평미만 작은 원룸에서 생활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나 야근을 자주 하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인기다. 청소대행 서비스 ‘당신의집사’에 따르면 서비스 이용 전체 연령대중 20대 사용자는 지난 2016년 7월 40.3%에서 올해 1월 50%로 늘었다. 현재 2030대 이용자도 전체 이용자 중 60%에 달한다.

청년들이 청소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단지 귀찮아서만은 아니었다. 주방도 없는 작은 원룸에 사는 청년들은 좁은 곳일수록 조금만 치우지 않아도 방이 금세 더러워진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취업준비나 각종 시험공부에 시달리다 보면 시간적으로도, 심리적으로 방 치울 엄두조차 안난다고 했다. 청소 대행 서비스 이용자인 취업준비생 박모(27) 씨는 “돈이 없어 가장 싼 방을 구했는데 옷장, 책상, 냉장고를 넣으면 꽉 찬다”며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하겠지만 아침 일찍 나가서 인턴 일을 하고 주말에는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주방이 없어 인스턴트를 주로 먹다 보니 며칠만 지나도 쓰레기가 쌓인다”고 말했다. 청소대행 서비스인 청소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들어 원룸 평수 서비스 신청률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1인 가구의 경우 가사를 분담할 수 없고 잠시만 방치해도 집이 쉽게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서비스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어머니같은 청소도우미로부터 심리적 안정을 찾게된다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모(25) 씨는 “청소도우미 이모가 ‘배달 음식물 쓰레기가 평소보다 많다’며 ‘건강 챙기라’는 문자를 보내거나, 걸레가 부족하다며 직접 가져다 준 적이 있다“며 “외롭고 지친 자취 생활에 의지가 된다”고 전했다.

2시간 대청소를 마친 뒤 깨끗해진 방.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팍팍한 생활 속 ‘가심(心)비’ 중시하는 2030세대= 전문가들은 젊은층 사이에서 청소대행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 계속되는 취업난 속에 마음의 여유가 없는 청년들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게으르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원룸에 사는 1인 가구 20대들이 청소 서비스를 받는 비율이 늘었다면 유의미한 움직임”이라며 “집안일에 쓸 시간과 에너지조차 없는 상황에서 효율을 따지는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가격대비 심리적 만족도인 ‘가심비’를 중시하는 젊은층의 성향도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20대는 일상생활을 쪼개서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인식하며 사는 세대”라며 “스스로 일상을 관리하기 힘들 정도로 팍팍하게 살고 있는 20대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고 분석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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