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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기]임신한 여고생인척, 가출ㆍ성매매 유인하는 남성을 만나봤다

- ‘청소년 낙태 리포트: 임신 여고생 유인하는 검은손길’ 뒷이야기



[헤럴드경제=정세희ㆍ성기윤 기자]누군가의 장난이길 바랐습니다. 얼마전 ‘청소년 낙태 리포트’를 취재하면서 인터넷에 임신한 여고생인 척 상담글을 올렸더니 수상한 남성이 접근했습니다. 오픈 채팅방에 들어온 그는 처음엔 걱정하는 듯하더니 계속 기자에게 “집을 나오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부모님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면 집에서 내쫓길 거라면서 겁을 줬습니다. 그러면서 임신중절 수술비를 마련할 고액 알바를 알려준다고도 했습니다. 검은 속삭임이, 차라리 짖궂은 누군가의 장난이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미성년자가 임신중절 수술을 해주는 병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잘 아는 병원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습니다.보호자가 없으면 수술이 안된다고 자신이 직접 보호자 노릇을 해주겠다고도 꾀었습니다. 쉽게 돈 벌 수 있다며 성매매 얘기도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임신사실을 말할 수 없어 인터넷에라도 고민을 상담한 이 절박한 여고생의 마음을 이렇게 이용할 수 있을까.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꾹 참았습니다. 남성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런 수법으로 얼마나 많은 여고생을 이용했는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반나절 동안 이 남성과 카톡을 하다 보니 처음엔 여고생 말투도 어색했던 30대 기자 둘은 제법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임신 여고생이라면 어땠을까 감정이입을 하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남성은 자신의 집 사진을 보냈고, 함께 산다는 여성들의 사진도 보내왔습니다. 안심하고 집을 나오라는 의미였습니다. 취재진은 직접 그를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여년이 훌쩍 지난 30대 기자가 여고생인 척이라니. 남성을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기자는 ‘여고생 화장법’을 검색해 최대한 비슷하게 변장을 해봤습니다. 옆에 있던 기자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렵게 시도한 남성과의 만남이 1초만에 실패로 끝날까 걱정이 됐습니다. 결국 ‘최대한 가리기’로 전략을 바꿔 약국에 가서 ‘가장 큰 마스크’를 구했습니다. 

책가방을 매고 모자와 마스크까지 썼지만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남성은 계속해서 차를 타고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몇 분간의 기싸움 끝에 결국 한 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그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일단 만나서 남성을 차에 내리게 할 작정이었습니다.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기자는 남성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남성은 두리번 거리더니 길을 건너왔습니다. ‘들통나면 어쩌지’ 심장이 마구 뛰었습니다. 눈만 빼고 다 가린 덕분에 그는 속아넘어갔습니다. 

남성은 만나자마자 당장 차에 타자고 했습니다. 차에 타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기자는 ‘속이 안좋다’며 근처 카페로 무턱대고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남성이 뒤따라왔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드디어 임신 여고생에게 가출을 유인하는 남성과 마주 앉았습니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그의 갈색 눈동자가 보였습니다. 그는 긴장한 듯 계속해서 주위를 살폈습니다. 기자는 겉으로는 여고생인 척 연기를 하면서 속으로는 취재할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30여분간 충격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그는 임신 여고생을 집에서 나오게 한 뒤 자신의 집에 살게 했습니다. 30분의 15만원의 고액 알바는 ‘성매매’였습니다. 그렇게 이미 3명의 청소년을 ‘도왔다’고 그는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이제 집에 가자”며 남성이 다그치는 바람에 취재진은 결국 신분을 밝혔습니다. 모자와 마스크를 벗으니 그는 당황한 기력이 역력했습니다. 건너편에서 몰래 영상을 찍고 있던 다른 기자가 등장하자 남성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를 붙잡고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횡설수설 했습니다. “미성년자를 가출을 유인하는 건 약취유인죄”라고 따지자 그는 “미성년자가 아니잖아요” 맞받아쳤습니다. 질문이 계속되자 그는 도망치듯 나가버렸습니다.

남성이 떠나고 취재진은 한동안 바닥에 주저 앉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임신한 여고생을 이용하는 파렴치한이 실제로 있고,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임신 ‘청소년’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들에 대해 더욱 샅샅이 취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직접 임신 청소년이 되어봄으로써 느꼈던 이 막막함, 불안감을 잊지 말고 취재에 임해야겠다고 말입니다. 

해당 기사 링크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90409000129&ACE_SEARCH=1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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