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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봄, 낮에 꾸는 꿈
나폴리의 베수비오 산에 올라갔다가 그곳에서 느꼈던 흥분감이 밤에 다른 식으로 나타났다. 화산이 폭발해서 넘실거리는 불길이 어둠 속에서 상상 속의 터무니없는 존재들과 뒤섞여 있는 꿈을 꾼 것이다.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어 버릴 것만 같았던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것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처럼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직 확인하지 못한 한 가지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꿈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르미엔토의 꿈의 한 부분이다. 이 책에는 동서고금을 통해 꿈에 관해 읽을 만한 텍스트들이 망라되어 있는데, 성경의 요셉과 야곱의 꿈, ‘일리아드’ 속의 페넬로페의 꿈, 장자의 꿈, 악몽, 예지몽, 동시에 꾸는 꿈, 그리고 보르헤스 자신의 꿈까지 들어 있다. 그런데 사르미엔토의 저서 ‘시골에 대한 기억들’((1851년)의 발췌본이 다른 텍스트들에 비해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다음 문장들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 그러나 다행히 어머니는 내 곁에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과거의 사물들을, 그러니까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꿈에서 깨고 나서, 사르미엔토는 자신은 물론 꿈속에서 죽었던 어머니가 살아 있음에 안도하였고, 어머니의 한 가지 인상 깊은 행동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일흔여섯의 나이임에도 죽기 전에 아들과 이별을 나누겠다는 일념으로 안데스 산맥을 넘어왔던 것이다. 사르미엔토가 꾸었던 악몽 속의 화산 분진처럼, 지금 유리창문 밖으로 보이는 서울은 미세먼지와 황사가 뒤덮여 뿌옇게 흐려져 있다. 마치 나쁜 꿈속에 앉아 있는 듯하다. 그래서 깨기만 하면, 이 몹쓸 꿈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황사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악몽은 끝없이 지속되어 깨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운동도 제대로 나갈 수가 없어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듯 집안을 맴돈다. 봄의 투명하고 신선한 공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려던 손길은 멈칫거리다가, 결국 되돌아오고 만다.

이 뿌연 공기와 미세먼지의 악몽에서 깨고 나면, 필자도 잊고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내거나 실행하게 될지도 모른다. 맑고 따스한 하늘 아래서 겨울 커튼과 겨울옷을 빨래 줄에 내걸어 말리고, 겨우내 실내에 들여놓았던 화분들을 햇살이 잘 드는 베란다로 옮겨주고,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빨강색 운동화를 신고 산책을 나가고, 뒷산에서 푸릇푸릇한 냉이 몇 포기를 뜯어 넣은 국으로 미각을 깨우고, 엄동설한을 견디고 초봄에 싹을 내민 어린 쑥을 뜯느라고 얼굴을 그을린 어머니가 쑥떡을 한 바구니 만들어 서울까지 가지고 오실지도 모른다. 아니 따스한 햇살에 조는 고양이처럼, 이렇게 봄의 한낮에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꿈이 매우 사소하고, 그 내용조차 뒤섞이고 나중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르는 상태일지라도, 한 번쯤 꾸기라도 해보자. 그래야 깨고 나면, 이 갑갑하고 숨 막히는 회색의 도시가 사라지고, 어린 시절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청정하고 푸른 하늘이 머리 위에 있을 것이고, 시원한 바람줄기가 우리를 만지고 지나가지 않을까.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 꿈이라도 꾸자.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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