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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키피디아에 ‘여성 과학자’를 올려라
‘위키프로젝트’ 중심 웨이드 박사
작년 여성 과학자 500페이지 편집
웨스트 박사·쇼네시 연구원 등재

백인남성 ‘슈퍼 편집자’의 놀이터
자발적 참여활동이 ‘유리천장’ 깨


지난해 10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가 선정됐다. 여성으로서는 55년 만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첫 과학자였다.

그런데 발표 다음날, 세계 최대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그의 정보는 ‘1959년생, 캐나다 물리학자, 워털루대 물리천문학과 교수’ 한 줄이 전부였다. 사진도 없었다.

간단한 인물 정보부터 시작해 생애, 주요 연구 업적, 저서 등이 나열돼 있던 다른 수상자들의 페이지와는 크게 비교됐다.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웹사이트 5위인 위키피디아는 구글 검색 최상단에 노출된다. 특히 구글에서 인명 검색을 할 때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노출도가 굉장히 높다. ‘집단지성’으로 만들어지는 위키피디아가 가진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스트리클런트 교수에 대한 정보는 왜 이렇게 빈약했던 걸까. 위키피디아는 결국 백인 남성이 보는 세상이라는 지적이 크다.

▶우리가 ‘유리 천장’ 깬다…여성 과학자를 위한 위키프로젝트=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 과학자를 위한 위키프로젝트(WikiProject Women in Red)’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그 동안 ‘유리 천장’에 가려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여성 과학자의 정보와 그의 연구 업적을 위키피디아에 등재하는 캠페인이다.

캠페인의 중심에 제스 웨이드 임페리얼 컬리지 런던 박사후 연구원이 있다. 그는 지난해에만 위키피디아에서 여성 과학자 관련 500페이지가 넘는 문서를 편집했다. 웨이드 박사는 지난달 11일 영국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여성이 과학계로 나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그들에 대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라며 “위키피디아에서 단 17.8%만이 여성에 관한 페이지이며, 여성 과학자에 대해서는 특히 잘못된 내용이 많다”고 설명했다.

웨이드 박사가 위키피디아 페이지 편집을 통해 재조명된 여성 과학자는 수도 없이 많다. 1930년에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 수학자인 글래디스 웨스트 박사가 대표적이다.

웨스트 박사는 미국의 위치 기반 위성측량 GPS를 개발한 수학자팀의 팀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단 한 줄도 없었고 웨이드 박사가 그의 논문을 발췌해 연구 내용을 위키피디아에 기입했다. 이후 웨스트 박사의 업적이 재조명되면서 미국 공군은 뒤늦게 웨스트 박사의 이름을 명예의 전당에 올렸다.

114번에서 118번까지 원소를 발견하는데 공을 세운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의 다운 쇼네시 연구원의 연구 성과도 지난해 웨이드 박사에 의해 위키피디아 문서에 등재됐다.

이후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중심으로 여성 과학자를 위한 위키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기 시작했다. ‘#WomeninSTEAM’, ‘#VisibleWikiWomen’ 해시태그를 달고 여성 과학자의 사진과 함께 그의 업적과 성과를 정리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인스타그램에는 해당 해시태그로 올라온 최근 사진만 30만여장에 달한다. 웨이드 박사는 “정보를 찾다 보면 특히 여성 과학자 사진이 매우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많은 사람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인 남성’ 슈퍼 편집자의 놀이터, 위키피디아=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경남과학기술대, 카이스트(KAIST) 연구진이 위키피디아의 진화 양상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페이지를 편집할 수 있어 자유롭게 정보가 게재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소수의 힘으로 여론이 독점되고 있었다.

이는 지식이 축적될수록 지식 생성의 불평등 지수가 높아졌다는 데 근거한다. 소수의 독점적 영향력이 증가해 편집자의 행동을 대부분 지배하는 ‘독점화 현상’이 발견된 것인데, 이런 독점 집단은 집단지성 생성 초기에 나타나 지속적으로 독점적 영향력을 미쳤다. 신규 편집자가 이런 독점 계층에 진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위키피디아 편집인의 구성은 2001년 위키피디아 설립 초기와 비교해 지금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설립 초반 주도권을 쥔 편집자 구성이 20여년간 넘게 유지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버 관리자인 위키미디어재단에 따르면 위키피디아 편집인 91%가 남성이다. 여성 편집자는 9%에 불과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니다. 위키피디아는 ‘서구 중심’이라는 편향도 자주 거론된다. 위키피디아의 편집인의 50%가 서유럽인이다. 아시아는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프리카는 5%도 채 안 된다. 흔히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학력의 백인 남성’이 위키피디아 편집을 주도한다고 해석되는 이유다.

위키미디어재단 조차 “완전히 독립된 자발적 편집 참여자들이 위키백과를 편집한다”면서도 “위키피디아 문서에서도 관심의 편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편집자 개개인이 관심을 두는 주제는 자세히 다뤄지지만 이들의 관심 밖에 있는 주제는 소홀하게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여기 있었지만, 늘 무시당하거나 늘 기록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웨이드 박사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오늘도 위키피디아 문서를 편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정아 기자/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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